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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일본 수출 규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 日의 반도체·DSP 핵심 소재 볼모로 한 수출 규제
- 위기를 기회로, 국산화 적극 추진하며 위기 넘겨
- 산업 생태계·인력·안보전략 차원 과제 여전
- 소재·부품·장비 산업 협력 생태계 구축 필요

 

<문장원 기자> 지난 7월 1일은 일본이 우리나라에 경제 전쟁을 선언한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사전협의나 구체적인 사유제시 없이 반도체·디스플레이관련 핵심소재 3종(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 트)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실행했다. 이후 8월 28일부터는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며 노골적으로 경제 보복을 진행했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의 생산 차질이 사실상 전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다. 고착화된 대일 산업·무역 의존도를 고려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반도체·DSP 핵심소재 국산화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에 우리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7월 24일 수출규제 강화조치에 대해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반박하는 의견서를 일본 측에 공식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사전협의 없는 결정과정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일본측 주장이 사실과 다르며 WTO나 바세나르 기본지침 등 국제규범에 위배되므로 이번 조치의 철회를 촉구하는 것 담겼다.

 

그 외에도 정부는 브리핑, 보도해명, SNS 등을 통해 수시로 일본 측 주장에 반박하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해 일본을 한국의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했으며 WTO, RCEP(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 국제수출통제기구 등 다양한 양자 및 다자채널을 활용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9월에는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특히 정부는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을 극도로 높은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핵심부품의 대일의존도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았다. 정부는 8월 2일 범부처 단위로 수출규제대응 관련 추경 예산 2,732억원을 확보해 신뢰성 평가 및 기술개발 등을 지원토록 했다. 또 10개 정부부처 및 16개 유관기관을 연 계해 민관합동으로 ‘소재·부품 수급 대응 지원센터’를 가동했다.

 

관계부처합동으로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 표해 핵심전략품목을 선정하고 이에 대한 조기 공급안정성 확보와 산업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일본의 전략물자와 소재·부품·장비 전체품목을 대상으로 100개의 핵심 전략품목을 선정해 지원할 계획이다. 선정기준은 국가 안보적·산업적 중요성, 대체가능성, 기술 수준, 특정국가 의존도, 주력산업과 신산업 생산에 미치는 영향 등이다. 기업들 역시 적극적으로 일부 핵심 소재의 국산화에 나서며 리스크를 줄여나갔다. 이러한 우리 정부와 기업체의 노력으로 일본의 경제 보복의 효과가 감소하자 정작 우리에게 핵심소재를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코야마 히데히코 일본종합연구소(JRI) 수석 주임연구원은 ‘일본의 수출 통제 강화를 계기로 한국의 탈일본은 진행되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일본의 수출 관리 강화를 계기로 한국에서는 핵심소재의 국산화와 제3국의 수입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며 “일본 기업이 이를 수수방관하면 점유율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코야마 연구원은 “일본기업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분야 (기술, 생산 노하우 면)에서는 일본 기업이 거래에 있어 우위에 설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면서도 “세계적으로 일본의 완제품 제조업의 위상이 낮아졌지만, 한국 완제품제조업의 위상이 커졌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의 사례가 그 사실을 보여 준다”고 했다. 이어 “세계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공급 판매력을 배경으로 한국 기업의 공급분야에 대한 협상력도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무코야마 연구원은 “한국의 소재 국산화에는 기술, 인력, 비용 등의 장벽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가 강화 된 후에도 일본으로부터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는 점이 확인되면 국산화 움직임에 많은 약간의 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일본 기업에는 한국 의 소재 국산화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가 여전히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경제 보복 위기는 넘겼지만 …과제도 남아


이번 일본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 핵심소재를 볼모로 한 경제보복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과제도 남겼다. 먼저 산업 생태계 조성 측면을 보면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의 대일 의존도를 극복하고자 2001년 ‘소재· 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된 이후로 소재·부품·장비 생산은 3배(2001년 240조 원, 2017년 786 조 원), 수출은 5배(2001년 646억 달러, 2018년 3,709억달러) 증가하는 외형적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낮은 기술자립도와 만성적 대일적자(2001년 128억 달러에서 2018년 224억 달러 로 증가) 등 구조적 취약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전은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산업 생태계 간의 차이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며 “소재·부품·장비는 가공조립형 산업 생태계의 구성 요소인데 이러한 산업에서는 대기업인 조립업체와 중소기업인 소재·부품·장비 공급기업 간 발전적 공생관계가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조립업체와 하도급기업 간 공동 이익 극대화를 위해 기술이전과 정보공유 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한국의 조립업체는 수요독점자로서 하도급 기업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하거나 하도급 기업을 경기변동 대응책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전 조사관은 “정부도 협력 생태계 구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개별사업 단위로 접근했던 과거 대책과 달리 이번 대책에서는 수요·공급 기업 관계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 협력모델에 대한 예산·세제·입지·규제완화 등 패키지 지원을 표방하고 있다”며 “그러나 수십 년간 해결되지 못한 구조적 문제이니만큼 건전한 산업생태계의 조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지속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일본종합연구소 무코야마 연구원이 지적한 국산화 기술과 인력 조달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재·부품·장비 산업과 같은 기술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의 경우에는 특화된 전문 인력의 확보가 산업경쟁력을 좌우한다. 이 때문에 정부도 이번 대책에서 기업인력의 기술경영 전문성제고, 지역별 산학 협력을 위해 거점대학혁신 랩(Lab) 설치, 퇴직인력활용, 대기 업 및 중소기업 협업형 계약학과 신설 등을 지원할 계획임을 밝혔다.

 

그러나 전 조사관은 “산학협력 활성화나 우수한 인력이 중소 기업 기술력 및 생산성 제고에 기여하는 것을 유도하기 위해 서는 대상인력의 필요사항과 이들 목표가 밀접하게 연계되도록 더욱 섬세하고 유연한 경력 관리시스템을 고안할 필요 가 있다”며 “예를 들면 현재 대학교수의 정년보장 요건을 보면 논문실적 중심으로 돼 있어 중소기업 기술사업화에 기여한 성과와는 관련성이 낮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소재·부품·장비 등 정책적 우선순위가 있는 부문기업의 기술력 제고에 기여한 이력사항은 정부가 공신력을 제공하는 경력관리 시스템에 기록해 교수 정년심사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편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부, 안보·전략적 측면 과제 대응책 부족 


특히 정부의 대책을 보면 안보·전략적 측면의 과제에 대한 대응책은 부족하다. 정부가 발표한 핵심전략품목 선정기준에 안보적 중요성이 포함된 것은 이전 소재·부품·장비 산업 성장 지원정책과 차별화된 점이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지만,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에서 안보·산업적 중요성의 내용을 ‘외부 수급충격에 따른 국내 산업생산에 미치는 영향’ 정도로 표현한 것은 우리나라가 처한 안보·산업적 상황에 적 합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 조사관은 지적했다.

 

전 조사관은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진행 속에서 미·중간 기술패권경쟁이 장기화되고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곧 기술·안보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국가 간 중간재 교역이 강화되는 등 세계는 산업·기술·외교·안보를 모두 고려하며 몇 개의 블록으로 나뉘어 갈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는 인공지능(AI) 기술은 산업기 술뿐 아니라 군사기술에도 적용되므로 AI에 집약적으로 투입되는 핵심 부품은 한 국가의 산업·안보적 입지의 핵심 요소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출시를 앞둔 메모리반도체인 D램의 신제품은 AI에 투입돼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라며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생산의 주도국은 4차산업혁명시대의 산업강국이 될 수 있으므로 현재 미국에서도 마이크론 및 인텔 등이 경쟁적으로 이를 개발 중이다. 그런데 이번 3개 품목 중 하나인 EUV(극자외선) 포토 레지스트의 조달불확실성은 차기 D램의 테스트와 양산 계획에 심각한 차질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 조사관은 “일본의 수출규제를 단순히 양국 간 문제나 주력산업 생산의 불확실성 상승 정도로 보는 것은 과거 자유무역주의 확산 시대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일한 시각 일 수 있다”며 “소재·부품·장비의 국가 간 시장점유율 경쟁이나 기술협력 방안을 조망할 때에는 경제·산업적 비효율이 다소 발생하더라도 외교·안보적 요소까지 포괄하는 복합적인 시각에서 정책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전 조사관은 “불확실성은 여전히 상존하지만 우리나라는 소재·부품·장비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경쟁력 강화를 도모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그러나 소재·부 품·장비산업 경쟁력 제고는 40여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정 책과제이며 질적 성과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았던 부문이다. 이를 고려하면 단기 성과를 독촉하기보다는 근본적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아울러 “향후 기 술·산업·외교·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입지선택의 지혜를 필요 로 하는 상황인 우리나라는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 산업재편과정에서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 총력 대응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MeCONOMY magazine December 2019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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