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신조선 발주량과 발주액이 감소하면서 국내 조선소들의 수주 역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와 같이 해운시황이 좋지 않으면 선박금융 역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요구했지만 해양수산부와 기획재정부 간 의견 차이로 무산되고 말았다. 대신 한국해양보증보험(주)이 출범하게 됐다. 해양보증보험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국내 해운산업의 자금 흐름에 있어서 위험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일부에서는 자금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 해운산업의 금융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자료를 토대로 해운시황부터 살펴보면 2015년도 상반기 전 세계 신조선 발주량과 발주액(5월까지 누계 기준)은 전년 동기대비 각각 57.8%와 67.4% 감소했다. 전 세계 3대 중형선종의 발주량은 척수기준으로 약 8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조선소들의 상반기 수주는 전년 동기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는데 5월까지 수주량은 433만 CGT (전년 동기대비 25.0%↓), 동 기간 수주액은 93.1억달러 (전년 동기대비 35.5%↓)이다.
컨테이너선, 유조선, LNG선 등이 양호한 수주기록을 보였으나 해양플랜트와 나머지 선종이 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벌크선 시장은 중국수요 부진 등의 영향으로 사상 최저수준의 운임지수를 보이고 있으며 금년 중 어려운 시황이 지속될 전망이다. 용선료 역시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데 하반기에 건조량이 증가하게 되면 조선, 해운 모두 어려운 시황이 예상되고 있다. 탱커는 전반적으로 용선료와 운임이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불안 요인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유조선은 운임, 용선료 모두 빠른 개선을 나타내고 있으며 조선시황도 양호하다. 제품운반선은 완만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하반기 선박의 대량 인도가 이뤄지면 내년까지 일시적 시황 하락 가능성이 있고 유조선, 제품운반선 모두 하반기 발주량은 상반기 대비 소폭 감소할 전망이다. 컨테이너선은 운임이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신조선 발주 지속으로 해운 시황 개선은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의 2015년도 신조선 수주량은 전년대비 약 24% 감소한 950만CGT, 수주액은 약 30% 감소한 230억달러로 전망된다. 중형 신조선 시황은 2017년부터 제품운반선과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다소 어려울 전망이다.
맞춤형 전략적 금융지원 필요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1일 한국수출입은행은 삼성중공업과 ‘성동조선 경영정상화 지원을 위한 경영협력협약’을 체결했다. 성동조선은 7월말 기준 수주량 세계 9위인 중형 조선소인데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규 수주 부진, 수주가 하락, 파생상품 손실 등으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해 2010년 4월 채권단 자율협약을 개시한 바 있다. 수출입은행이 3천억원을 긴급 지원한 데 이은 이번 경영협력협약은 개별 조선사에 대한 단순 지원을 뛰어넘어 국가 전략산업이자 기간산업인 조선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중·대형 조선사 간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게 수출입은행의 설명이다. 성동조선은 중형상선 분야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조선업 시황의 부진, 유동성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대형 조선사와 중형조선사의 경영협력협약은 대형조선사는 기술경쟁력을 지원하고, 채권단은 원활한 금융지원을 도모하게 되어 성동조선의 조기정상화 및 한국 조선 산업 전체의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수은과 삼성중공업이 ‘성동조선의 조속한 경영정상화’를 위해 맺은 경영협력협약의 주요 내용은 ▲협약기간 4년+3년 ▲삼성중공업이 영업, 구매, 생산, 기술부문 지원 ▲수은이 인사, 노무, 재무 등 전반적인 경영관리 담당 등이다. 삼성중공업은 영업망을 활용하여 성동조선의 신규 선박 수주를 발굴·주선하는 동시에 성동조선과의 외주계약을 통해 선박 블록등 일감을 제공함으로써 성동조선의 안정적 건조 물량 확보를 지원할 예정이다.
성동조선은 180K급벌크선, 75K PC선, 158K 탱커선 등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기술력 및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조선산업의 패러다임은 저운임 기조 하에서수익 창출이 가능한 연비경쟁, 국제해사기구(IMO) 주도하의 기술·환경규제 강화에 따라 원가경쟁에서 기술력경쟁으로 전환되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삼성중공업은 고연비·친환경 선박에 대한 기술력과 경험도 성동조선에 적극 전수할 계획이다.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채권금융기관은 이번 경영협력에 의한 조속한 성동조선 경영정상화를 통해 채권회수율과 여신 건전성 제고, 익스포저 축소 등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9월9일 현대그룹과 ‘전략적 금융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수출입은행은 국제물류, 수출입·해외투자사업 및 남북경제협력사업 등 현대그룹의 핵심전략사업에 대해 사업추진 초기단계부터 포괄적·효율적 협의를 거친 후 신속히 금융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두 기관은 유망사업 공동 발굴 및 사전 협의, 금융자문 제공, 재무구조 개선 지원 등 보다 적극적인 상호 협력체제를 만들어나갈 방침이다. 또 업무협약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정례적 협의채널을 구축하고, 필요시 사업별 태스크포스도 설치할 예정이다.
한국해양보증보험(주) 출범
선박금융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국적 선사들의 선박발주를 지원하는 한국해양보증보험(주)이 출범했다. 총 자본금 5천500억원(공공부문2천700억원, 민간부문 2천800억원)의 규모로 조성될 한국해양보증보험은 국적 선사들이 선박을 매입할 때 후순위 투자에 대한 보증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를 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작년 말 각각 300억원을 출자했고 올해까지추가로 총 400억원을 출자할 예정이다. 또한, 민간에서도 국적 선사들을 중심으로 8월까지 150억원, 올해 말까지 100억원을 출자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한국해양보증보험의 총 자본금은 연말까지 총 1천250억원 규모로 조성 될 전망이다. 한국해양보증보험은 당초 국적 선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의 일환으로 추진되던 ‘선박금융공사 설립’에서 출발하였으나, 장기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적선사들의 지원을 위해 관계부처 논의를 거쳐 현행법령에 따라 조속히 조치가 가능한 보증보험회사 설립으로 방향이 선회됐다.
한국해양보증보험의 설립으로 경기 침체기에도 선박 발주가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그간 해운시황 장기 침체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선박금융에 참여하기를 기피했지만, 해운보증기구의 후순위 보증제공으로 경기 역행적 투자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당초 계획한 대로 5천500억원의 자본금이 조성될 경우 향후 20년간 총 744척(선가 44.7조원, 연평균 2.2조원 규모)의 선박 확보를 지원해서 해운 경쟁력 제고와 조선 및 조선기자재 산업 등 연관 산업의 동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은 “해운 선진국으로서 도약을 위해 해운과 금융이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국적선사들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해양보증보험 관계자는 “한국해양보증보험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공동 출자해 설립된 보증보험사로 해운 및 경기민감 업종을 대상으로 보증보험을 제공해서 사업주가 원활히 자금조달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설립됐다”고 말했다. 선박 외에도 항공, 발전, 각종 인프라를 지원하는데 설립 초기에는 해운사의 선박건조 및 구매 관련 금융에 보증보험을 제공하며, 점진적으로 경기민감 업종인 항공기, SOC, 발전 등으로 지원분야를 확대할 계획이다. 해양·항공운송, 산업·발전 플랜트 건설, 기타 SOC 및 해외자원개발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이면 해양보증보험을 이용할 수 있다.
보험계약자(해운사 등)가 보증보험상품에 청약을하면 내부 심사과정을 거쳐 보증보험 증권을 발급받게 된다. 보험가입 금액은 주 계약(대출계약 등)에서 정해진 대출 원금 및 이자를 합한 금액 이내이며, 보험사고 발생 시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게 된다.
해외의 선박펀드와 국내의 선박펀드는 세제혜택의 방식 및 규모에서 차이가 나는 것 이외에 기본적인 구조는 유사하다. 다만, 해외의 선박펀드는 주로 고수익 고위험을 추구하는 구조가 주를 이루는 반면, 국내의 선박펀드는 안전성을 추구하는 구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해양보증보험은 선박펀드를 활용한 선박금융 등에 보증보험을 제공함으로써 프로젝트의 안전성을 보강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관계자는 “국내 선박금융은 금융구조의 다양성 결여로 인해 해운사 및 투자자의 니즈를 동시에 충족시키지 못하는 아쉬움이 존재해 왔다”고 말하면서 한국해양보증보험은 보증보험이라는 새로운 금융상품 제공을 통해 해운사에게는 신용보강을 통한 저리의 자금조달, 투자자에게는 투자금 회수에 대한 안전성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해서 국내 선박금융 시장을 리드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세계 10대 규모의 선박금융의 허와 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양종서 선임연구원은 “선박금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국내 조선소에 발주하는 외국선주에 대한 금융, 다른 한 가지는 국내 해운사에서 외항선박을 구매하는 금융”이라고 말하면서 한국의 선박금융은 전 세계 10대 금융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고 설명했다. 선박금융은 선박 담보부 대출을 의미하는데 해운회사가 선박을 담보로 선박확보자금을 마련하는 장기융자이다. 해운회사는 편의 치적국에 특별목적 법인(SPV)을 출자설립하고, SPV는 선박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으로 선박을 건조 또는 매입한 후 해운회사와 체결한 장기용선계약을 통해 수취하는 용선료로 대출채권의 원리금을 상환한다.
따라서 선박금융을 기초로 한 유동화증권의 상환확실성은 기본적으로 해운회사의 용선료 지급능력과 연결된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양기업금융실 해운금융팀 정경석 팀장은 “물동량이 감소하는 반면 선박은 많아서 해운시황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하면서 금리는 대체로 한 자리 수이지만 신용도에 따라서 드물게 두 자리 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선박금융과 관련 “과거에는 산업은행의 대출금액이나 대출건수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수출입은행의 대출금액과 건수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박금융의 대출금리는 해운사나 차주의 신용도, 선박운영계획에서의 안정성에 따라 결정되는데 고정금리와 변동금리가 있어서 최저, 최고를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는 저금리가 오래 되어서 대출금리가 두 자리 수인 경우는 많지 않고 리파이낸싱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금리가 두 자리 수여서 부담이 되는 경우에는 최근 저금리 기조를 활용해서 리파이낸스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래 리파이낸스는 대출만기가 되었을 때 리파이낸스 수요가 발생하면 자금을 지원하는 시스템인데 리파이낸스 시점에서 선사의 신용도와 당시 금융상황에 따라 금리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해운업계의 연쇄부도를 막기 위해서는 채무유예, 상환유예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데 원금회수를 유예하고 10%가 넘는 두 자리 수의 이자율을 시중금리수준으로 조정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해운산업이 향후 회생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은 2년 이상 3년쯤이 적절하다는 설명이다.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국제시장에서도 선박금융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양보증보험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대체로 선순위금융은 다른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대출받아서 할 수 있는 반면 후순위금융은 그렇게 안 되니까 후순위를 보증해주려고 만든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기존의 시중은행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예를 든다면 컨테이너는 수요예측이 없어서 대출을 안 해주고 대출 여부와 금리 결정은 회사의 신용등급을 보고 해주겠다는 식이므로 원점에서 다시 판을 짜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금융권도 정부도 대기업의 상황을 해결해주는 데에 있어서 대규모의 자금을 끌어다주는 방법에 고심하고 있는 동안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은 어려운 상황에 대해 말할 곳을 찾기도 어렵다.
대기업이 부실해지는 상황에서는 업계 전반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는 해운 대국은 아니지만 조선강국이다. 많은 국민들이 해양스포츠를 즐길 정도로 해운산업이 친숙한 산업은 아니지만 조선업은 그동안 수출동력으로 그 저력을 인정받아 왔다. 그런데도 해운산업과 조선업이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선박수출국으로 그동안 승승장구했던 좋은 시절은 이제 갔다는 얘기다. 이제 남은 과제가 있다면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업계가 회생가능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정부의 대책이 업계의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다른 대안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MeCONOMY Magazine Octobe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