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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동나비엔 근로시간 조정안은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

무급 휴게시간 삽입은 불이익 변경, 근로자 동의 없이 진행하면 무효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전격 시행된 가운데, 보일러 생산·판매업체 경동나비엔이 내놓은 근로시간 조정방침이 직원들의 원성을 사고있다. 익명을 원한 경동나비엔 직원 A씨는 4일 M이코노미뉴스에 제보를 통해 “이번 근로시간 조정방침에는 회사가 무급 강제 휴식시간과 포괄임금제를 이용해 직원을 최대한 부려먹겠다는 심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며 “주 52시간을 지켰으니 법적으론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 근로시간 조정방침, 무급 휴게시간 추가되면서 하루 12시간 회사에

 

경동나비엔 인사(HR)팀이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에 발맞춰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근로시간 운영 및 유연근무제 도입’(이하 방침)이라는 자료를 보면 직원들의 기본 근로시간 및 고정OT(고정야근)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8시30분(수요일은 6시)까지다.

 

직원들이 하루 회사에 있는 시간은 수요일을 제외하면 총 12시간으로, 중간에는 오전·오후 각 15분씩의 무급 휴게시간과 중식(1시간), 석식시간(30분)이 포함돼있다.

 

 

방침에 따르면 사측은 직원들에게 하루 12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중간에 휴게시간 2시간을 넣어 실제 하루 10시간, 주 50시간만 근로시간으로 인정한다. 더군다나 하루 두 차례 30분 제공되는 무급 휴게시간은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 기존에는 10분씩 하루 세 차례 총 30분의 유급 휴게시간이 있었다.

 

주 52시간을 지켜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없도록 만들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공짜야근’을 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이유다. 

 

앞서 지난 1일 시행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 연장근로를 포함하더라도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기면 안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루 2시간 고정야근...“최대한의 기준” vs “무조건 하라고 했다”

 

사측은 이번 방침이 법 개정 취지에 맞도록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임금 감소 등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복안’이라는 입장이다.

  

M이코노미뉴스와 만난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우선 하루 2시간 고정야근에 대해 “경동나비엔은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고 2시간에 대한 OT수당이 포함돼있다”며 “OT수당은 회사와 직원이 협의한 것이기 때문에 극단적 예로 모든 직원이 6시에 퇴근한다고 해도 지급되는 임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방침에는 기존 월 43시간 수준이던 야근 시간을 월 35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이 포함됐다”며 “이는 야근이 35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는 얘기고 불가피하게 넘어가는 경우 초과 OT수당이 나간다는 뜻이지, (직원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그 시간을 못 채웠다고 다음 달에 더 일하라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직원 A씨는 “기존에는 OT시간을 유동적으로 활용해 일찍 퇴근하는 팀도 있었는데, 이번 방침이 전달되면서 ‘이제부터 퇴근은 무조건 8시 반’이라고 발표한 팀이 많다”며 “더군다나 그동안 OT시간을 넘어 퇴근하는데도 추가수당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야근을 부추기는 포괄임금제 자체가 문제 많은 제도”라고 한탄했다.

 

무급 휴게시간 30분...“생산직의 임금보전 방안” vs “그냥 30분 늦게 퇴근하라는 얘기”

 

무급 휴게시간에 대해서도 회사와 직원들은 크게 엇갈린 반응을 나타냈다. 회사는 근로시간 감축으로 인한 생산직 근로자의 임금보전 방안이 필요했다는 입장인 반면, 직원들은 퇴근시간만 늦추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경동 관계자는 “경동나비엔이 제조업 회사다보니 생산직 종사자가 많은데, 그들은 연장 근로수당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기본 근로시간 내) 쉬는 시간을 무급으로 바꾸면 연장근로를 원하는 직원들은 기본급여 수준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하루 30분씩 더 근무해 연장근로 수당을 받을 수 있게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생산직, 관리직 등의 업무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있어 일부 직군에만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며 “모든 직원이 동일한 기준 하에서 함께 일하면 업무시간에 자리를 비워 통화가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등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것이 회사의 제안”이라고 부연했다.

 

반면 이에 관해 직원 A씨는 “회사는 마치 생산직 종사자들이 잔업을 30분 더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퇴근시간만 30분 늘어났지 받는 돈은 똑같다”며 분개했다. 

 

그는 “원래 생산직은 기본 근로시간이 오후 5시30분까지라 30분 동안 밥 먹고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연장근무를 하는데, 회사가 무급 휴게시간을 강제로 넣으면서 기본 근로시간을 6시까지로 늘려버려 기존과 똑같은 돈을 받으려면 9시30분까지 30분 더 일해야 된다”며 “기존만큼 돈 받으려면 30분 늦게 퇴근하라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고용부 “무급 휴게시간 삽입은 불이익 변경...동의 없이 진행하면 무효”

 

고용노동부는 무급 휴게시간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근로자들의 동의를 받아야 없던 무급 휴게시간이 새로 삽입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M이코노미뉴스와의 통화에서 “근로기준법 제54조 2항에 따라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간은 원래 무급”이라면서도 “종전에 근로시간이었던 것을 휴게시간으로 바꾸는 건, 임금이 감소하면서 사업장에 머무는 시간은 그대로 있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되기 때문에 근로자들에게 불이익한 변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 근무형태를 근로자에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근기법 제94조에 따라 노조대표 혹은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동의를 받지 않고 진행하면 당연 무효로 종전 근로조건이 적용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社 “아직 확정된 사항 아니야...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조금만 양보해달라는 제스쳐”

 

경동나비엔 직원들이 하나둘씩 불만을 표출하면서 파장이 커지는 모양새다. 4일 기준 모바일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근로시간에 대한 내용 외에도 “(오후 6시가 지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는) 강제 PC 오프제를 시행한다고 홍보해놓고 곧바로 폐지했다”거나 “일정 시간동안 키보드나 마우스 사용이 없으면 근로시간에서 제외한다”는 등의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편 사측은 제시된 방침이 아직 확정된 사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전달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다는 입장이다. 인사팀이 1차(지난달 28일)로 본부장 등 간부들을 통해 직원들에게 방침을 알린 후 2차로 직접 설명하려고 했는데, 1차 과정에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되다보니 2차 설명이 있기도 전에 직원들의 불만이 쌓였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동 관계자는 “근로시간 변경은 취업규칙을 개정해 고용노동부에 신고해야 하는 사항이라 회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며 “노사협의회 협의를 거쳐 근로자 50%의 동의를 얻어야하기 때문에 향후 노사 간 충분한 합의를 통해 확정안을 만들고, 그 안을 가지고 직원들에게 동의를 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운영방안은 회사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이만큼 양보할 테니 직원도 어느 정도 양보해달라는 제스쳐”라며 “인사팀에서 직접 설명 드리면 우리 회사의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는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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