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가 변하고 있다. 과감하게 거대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본닛 끝까지 올라올 것 같은 헤드라이트를 부각시켜 흡사 고양이의 얼굴을 닮은 일명 ‘펠린룩’도 버린 지 오래다. 대신 과감했던 선을 가다듬고 정숙함을 덧씌웠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주목받고 있지 못하지만 사실 벤츠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회사 가운데 하나인 푸조의 변신. 거기에는 푸조 508이 있다. 푸조의 뉴508 2.0 럭셔리 모델을 시승했다.
PEUGEOT(이하 푸조)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인기를 끈 영화 ‘택시’ 덕분이다. 당시 엄청난 성능을 보이며, 도로와 골목골목을 질주하는 푸조는 인상 깊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하지만 푸조의 차들은 영화만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우리에게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던 프랑스식 감성과 과감하게 보이는 디자인 때문이었다. 고양이과 동물의 얼굴을 닮은 일명 ‘펠린룩’이라 불리는 푸조의 디자인은 처음 보는 순간 ‘와’ 하는 감탄을 불러일으키다가도 특유의 디자인으로 호불호가 나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푸조는 독특했지만 생소했던 펠린룩을 배제하고, ‘플로팅 디자인’으로 다시 찾아왔다. 이 ‘플로팅 디자인’의 시작이 508이다. 푸조의 플래그십 모델인 508. 푸조의 최고급 세단이지만 타사의 프리미엄급 모델이랑 비교하면 확실히 부족한 느낌이다. 하지만 크기가 비슷한 중형차량보다는 확실히 위에 있다. 508은 407과 607의 중간지점을 선택해 407과 607을 모두 흡수했다. 푸조가 제시하는 프리미엄 세단이 궁금해 졌다. 푸조의 뉴508 2.0 럭셔리를 만나봤다.
못 알아본 푸조 뉴508
여의도에서 푸조 뉴508을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 2시. 사장님 차량이 유독 많이 돌아다니는 여의도에서 멀리서 함께 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한참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뒤에서 클락션 소리가 들린다. “방금 지나갔었는데 못 보셨어요?” “네?”, 처음부터 푸조 508을 알아보지 못했다. 기존에 알던 푸조는 과감하게 거대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보닛 끝까지 올라올 것 같은 헤드라이트가 부각된 차였다. 하지만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 푸조는 첫인상이 깔끔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젊은 신사?’ 그런 정숙한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었다.
뒷 자석까지 공조장치 자리해
자세한 디자인은 시승을 마치고 보기로 하고 바로 시승을 진행했다. 시승도로는 여의도에서 인천 영종도 미단시티까지 진행했는데 뒷 자석까지 총 4명이 차량에 탑승했다. 운전석에 앉아본 뉴508은 우려했던 프랑스식 감성이 어색할 정도로 크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적응에 조금 시간이 걸린다는 항간의 소문과는 달랐다. 시동버튼이 운전자 왼쪽에 있다는 것 말고는 타 차량과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7인치 터치스크린과 그 아래 간결하게 버튼을 가로로 나열한 센테페시아는 복잡하지 않고 깔끔하게 다가왔다. 사실 센터페시아의 버튼 가운데 실제로 사용하는 버튼은 얼마 안 된다. 과감한 버튼 정리가 돋보였다. 공조장치는 앞쪽 말고도 뒤쪽에도 자리하고 있었다.
4명 모두 바람의 세기·온도 등을 각각 조정할 수 있었다. 스티어링 휠은 D컷으로 장착해 스포티한 느낌을 살렸고 휠 뒤쪽에는 패들시프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불모터스 강북지점김용환 주임은 “뉴508은 각종 편의장치뿐만 아니라 전면, 측면, 커튼식 총6개의 3세대 스마트 에어백이 장착돼 유로앤캡 안전도 검사에서 별5개로 최고 점수를 받을 만큼 안전도에서도 검증된 모델”이
라고 설명했다.
퍼포먼스보다는 안정감
본격적으로 도심주행에 나섰다. 차량은 부족함 없이 미끄러지듯 달려 나갔다. 사실 재원을 보면 가속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넓은 토크밴드로 중고속 영역에서 꾸준한 가속력을 보여줬다. 한불모터스 강북지점 김용환 주임은 “뉴508 2.0럭셔리 모델은 180마력 40.8토크로 기존 163마력, 34.6토크인 2015모델보다 마력과 토크 모두 크게 향상됐다”고 전했다.
푸조 뉴508은 플레그십 모델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1.6과 2.0 디젤엔진을 얹었다. 샤넬·디올·루이비통 등 화려한 명품으로 대표되는 프랑스가 자동차만은 소박하고 실용성을 추구한다. 반대로 떼제베(프랑스 고속열차) 등을 만들어내는 프랑스의 기계공학 수준과 100년이 넘은 푸조라는 브랜드를 생각하면 자동차의 엔진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김용환 주임은 “뉴508의 블루 HDI엔진은 유로6 기준을 충족하는 디젤엔진으로 13킬로의 복합연비를 나타내고, PSA와 일본의 AISIN이 공동 개발한 EAT6 자동변속기를 채택해 부드러운 승차감과 주행감각을 개선했다”고 전했다. 푸조가 특유의 변속장치인 MCP를 버리면서 장점인 연비도 잃어버렸다는 지적도 있지만, 동급에서 여전히 푸조의 연비는 매력적이다.
도심을 주행하면서 눈에 띄는 부분은 시인성이었다. 사이드 미러가 A필러가 아닌 도어에 위치해 좀 더 운전자와 가까이에 위치했다. 또한 사이드 미러에는 가끔씩 붉은점처럼 불이 들어왔다. 김용환 주임은 블라인드 스팟 모니터링 시스템(Blind Spot Monitoring System) 차량 전면과 후면에 장착된 4개의 센서를 통해 장애물을 감지하고 알려주는 시스템이라고 소개했다.
도심을 벗어나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시속 100km를 넘어서도 꾸준한 가속력을 보였다. 90km 정도로 도는 코너도 안정감으로 큰 쏠림이나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민첩하거나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끊이지 않는 가속이 돋보였다. 150km/h를 넘어서도 불안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불투명한 블랙 헤드업디스플레이는 옥에 티처럼 시선에 거슬렸다.
단정하게 정돈된 전면, 스포티한 후면
인천 미단시티에 도착해 푸조 뉴508의 외관디자인을 꼼꼼히 살펴봤다. 확실히 첫 만남에서 못 알아 볼 정도로 단정하게 정돈된 느낌이다. 헤드램프는 풀LED라이트를 적용했고, 직선형으로 곧게 뻗은 라이에이터 그릴은 날렵하고 묵직한 느낌을 동시에 줬다. 푸조 로고와 그릴 주변은 크롭 장식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측면부는 전면부터 뒤쪽까지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이 차량의 다이나믹한 감각을 줬다. 운전할 때 느낀 것처럼 사이드 미러는 A필러가 아닌 도어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이드미러에는 방향 지시등이 탑재돼 있고, 특이하게도 키리스기능이 프론트도어 뿐만 아니라 리어도어에도 적용돼 있다.
후면부는 전면의 단정한 모습과는 달리 스포티한 느낌을 받았다. 푸조 특유의 사자가 할퀴고 간 모습을 형상화한 리어램프가 LED로 장착돼 있고, 트렁크의 오픈버튼이 숫자508의 가운데 0에 숨어있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또 트렁크리드가 살짝 올려져 리어스포일러 역할을 함으로써 좀 더 스포티한 느낌을 더했다.
트렁크를 열자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었는데, 김용환 주임은 “골프백 3개가 들어간다”며 트렁크 용량은 545L이며, 2열 시트를 접을 경우 1244L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이어는 235 45R 18인치 미쉐린 4계절 타이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1.6모델의 17인치 휠과 크기나 디자인 부분에서 훨씬 고급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서스펜션은 전방 맥퍼슨스트럿 후방 멀티링크를 선택했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실용적인 럭셔리 세단
반나절만 가지고 차를 평가한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나본 푸조는 이전과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프랑스식 감성만 내세우는 고집스러움이 아니라 변화하는 모습과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제시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508은 407과 607의 중간지점을 선택해 407과 607을 모두 흡수했다. 이 부분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비교대상인 동급차량을 찾기가 힘들다.
푸조의 최고급 프리미엄 세단이지만 타사의 프리미엄급 모델이랑 비교하면 확실히 부족한 느낌이다. 하지만 크기만 비슷한 그냥 중형차량보다는 확실히 위에 있다. 가격도 푸조 뉴508 2.0 럭셔리는 현재 4천690만원으로 어중간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가 푸조 508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아서 일까.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푸조 508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럭셔리하지만 사치스럽지는 않고, 단순하지만 실용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동급차량 보다는 저렴하지만, 좀 더 실용적이고 개성적인 세단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푸조 뉴508이 더욱 매력적일 수 있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