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2.0℃
  • 맑음강릉 9.5℃
  • 박무서울 5.2℃
  • 맑음대전 2.8℃
  • 맑음대구 6.3℃
  • 맑음울산 10.5℃
  • 맑음광주 4.5℃
  • 맑음부산 11.5℃
  • 맑음고창 -0.9℃
  • 맑음제주 8.8℃
  • 맑음강화 1.0℃
  • 맑음보은 -0.3℃
  • 맑음금산 -1.5℃
  • 맑음강진군 0.5℃
  • 맑음경주시 7.3℃
  • 맑음거제 6.3℃
기상청 제공

교육

【김상규 박사】 누가 교육을 할 것인가?

2023년 교육(2)

“교원을 목표로 하는 자는 고도의 교육 수준을 보유하여야 하며, 교원으로서 적성과 대학에서의 학업이 우수함을 증명하여야 한다. 교원양성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 단과대학이나 대학은 졸업생이 이러한 기준에 어느 정도 적합한지를 평가하여야 한다. 전문적 지도를 위하여 교원의 급여를 높이고 다른 직업에 뒤처지지 않고 시장에 민감하도록 성과에 근거하여야 한다”(1983년의 ‘A Nation at Risk’에서 발췌).

 

교육의 목적과 가치


다중지능이론의 창시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교육이란 본질적으로 그리고 필
연적으로 인간의 목표와 인간의 가치에 관한 문제”라고 했다.  그의 정의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래도 인간의 목표와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좋은 사람, 교양있는 시민, 지식의 스필오버(spill over)가 가능한 사람, 사회에 기여할 인재 등과 같이 교육이 목표로 하는 가치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과거 국민의 세금으로 학교를 경영하기 전에 교육은 성경을 읽는 것이 가치이자 목표였다.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공립학교 운동의 결과로 공교육이 제도화된 후에 학교는 교양 있는 시민과 사회에서 유용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가치이자 중요한 목표였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전제주의 시대와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는 군주에게 충실한 신민의 왜곡된 이념이 교육의 목표이자 가치가 됐다. 최근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등 교육의 경제적 성과에 더 관심이 많은 국제기구나 싱크탱크의 입장이라면 교육의 가치는 더 달라질 수도 있다.

 

교육을 받는 목적이 돈을 많이 벌고 사회의 권력을 차지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신의 지위를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자기중심적 사회 풍조로 변하고 있는 것도 사회 변화의 산물일 것이다.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지는 시대 상황이나 각 국가의 문화, 학교 교육을 받는 사람의 이상에 따라 무수하게 해석될 수 있으며, 인간의 목표는 출신 배경이나 삶의 행로에 의해 굴절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자율적 인지작용이 발달하여 자신의 환경을 직시했을 때,
운이 좋아 재벌의 자녀로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환경을 인지했을 때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비록 지능이나 능력의 차이가 없고 어떤 경우에는 빈곤 가정의 아이들이 천재와 같은 명석한 두뇌를 가졌더라도 인간의 목표는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환경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 미약한 인간이 출신 배경을 그대로 대물림하는 것이 정의인가? 우리가 학교 교육을 생각할 때의 원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태어나 인지 의존적인 시기인 유치원부터 초중등 학교로 이어지는 제도화된 교육에서 목표가 만들어지고 가치관이 형성되는 인간의 성장에 모델이 되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가드너의 말처럼 사람들이 새 일을 시작할 때 과거에 유용했던 습관과 신념을 그 일에 끌어들이는 관성을 통제하고, 쉽게 없어지지 않은 오랜 습관을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교정하는 기능은 교육이 갖고 있으며 그 정점에 교사가 있다.

 


교사라는 직업

 

가드너가 정의한 교육의 목적과 가치를 학교교육에 한정해 정의하면 ‘학교교육은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획득하도록 하는 것이며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형성자가 되는 데에 필요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처럼 중요한 사회적 서비스에 인생을 투자하기 위해 매년 상당수의 청년들이 교원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재작년 대학에서 1만9000명 이상의 청년들이 중등학교 교사자격증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대학에서의 교원양성이 그다지 엄격하다고까지 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이지만 교원자격증을 취득한 청년들에게 교사가 되는 것은 중요한 목표일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우수한 청년들이 다른 산업군으로 빨려 들어가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교사가 부족하여 군대를 제대한 직업군인 출신들이나 일반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게까지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며, 학교 현장에서의 교원양성까지 그 방법을 다각화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교사가 되기 위해 재수, 삼수는 기본이다.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교사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교사인 부모로부터 감화를 받아 교사가 되려는 청년도 있고,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교사를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국가공무원이라는 신분상의 매력도 작용할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교원이 학교구나 학교가 고용한 공무직원이며, 일본과 핀란드는 교사는 지방공무원이지만, 우리나라 교사는 국가공무원이다.


또한, 오래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부러워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교사는 급여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직업이다. 그리고 공립학교는 다른 업종과 달리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사실상 독점상태이므로 아무리 혁신적인 능력과 모델을 가진 개인이나 법인도 학교와 경쟁하는 것이 불가능한 제도적 온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사가 준 전문직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도 따라 변하고 있다. 핵가족화가 되면서 아이의 성장에 가장 기초가 되는 심신의 기반을 형성하는 가정의 교육 기능이 급속히 약화하고, 과거 공동체 교육의 장이 됐던 지역사회의 가치가 왜소화하면서 학교와 교사에게 지워지는 무거운 책임에 견디지 못하는 교사가 많아지고 있다.

 

국가 간의 경계가 점점 낮아지는 글로벌화와 그 물결로 인한 변화를 읽고 학생들에게 감화와 담력을 줄 수 있는 교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20년 전의 교사와 지금의 교사가 느끼는 학교와 사회의 모습은 너무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런데 교사들도 그만큼 달라져 있을까? 교육의 기회균등 연구로 유명한 콜먼은(James Samuel Coleman) 교육에서 불평등을 다섯 단계로 구분했다. 그의 구분에 의하면 제1의 불평등은 학교에 대한 투입의 격차고 제2의 불평등은 학교에서 인종 구성의 격차다.

 

그리고 제3의 불평등은 무형의 학교 특성인데, 여기에는 교사의 의욕, 교사의 학생에 대한 기대, 학습에 대한 관심 수준 등 무형의 가치재가 해당된다. 교사라는 직업은 단순히 학생을 지도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학생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역할까지도 기대되는 것이다.

 

해묵은 논제, 교육전문대학원


최근 교원양성 정책 중 교육전문대학원 도입 여부를 놓고 학생과 교원단체, 대학이 쏟아내는 레토릭(수사)이 점입가경이다. 해묵은 교육전문대학원 논의가 저출산으로 학령 인구가 줄고 교대나 사대를 졸업해도 교사되기가 어려운 시기에 재점화되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아지고 증폭되고 있는 것 같다.


교원양성을 대학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은 1996년 교육개혁위원회에서 제기된 후 2000년 김대중 정부의 새교육공동체위원회에서도 교원전문대학원 도입방안 방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정권이 바뀌면 단골 메뉴처럼 개혁방안으로 얼굴을 내민 정책과제였다. 처음 논의가 시작된 이후 3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지만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무거운 과제가 돼 있다.


교육이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그리고 교원이 아이들의 성장에 있어 중요하다는 사실을 존중한다면, 그간 잠잠하던 해묵은 과제가 이번 정부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논쟁을 만들기 이전에 해묵은 교육전문대학원 논의가 왜 정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 메뉴가 됐던 정책 과제가 누구의 책임으로 정책화되지 않았는지 등을 역사적·귀납적 방법으로 냉철히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교육전문대학원과 유사한 제도로는 일본이 2007년에 시작한 교직대학원이 있다. 2006년 문부과학대신 자문기관인 중앙교육심의회는 답신에서 다양한 교육 과제에 대응할 수 있으며, 보다 고도의 전문성과 풍부한 인간성 및 사회성을 갖춘 역량 있는 교원이 요구되고 있으며, 대학의 교직과정이 교원 양성의 본래 기능을 충분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등이 지적됐다.

 

현직 교원의 재교육도 포함한 특정 분야에 관한 깊이 있는 학문적 지식과 능력을 가진 교원, 고도의 실천력과 응용력을 갖춘 교원을 폭넓게 양성하기 위해 특화된 전문직 대학원으로 교직대학원을 만든 것이다. 교직대학원의 수업 연한은 현직 교사인 경우 1년(35단위), 교사가 아닌 입학생은 2년(45단위)이다. 1년 차는 주로 이론 수업 중심이며, 2년 차는 교육실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직 교원의 경우 교육에서 핵심적인 역할이 기대되거나 교육관리직 선발시험 합격자를 선발하여 파견하고 있다.


교직대학원에는 교과교육, 생활지도, 학급경영 등 각 15단위 정도의 코스가 있으며, 공통과목(기본과목)은 20단위 정도로 다섯 개 영역이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실습은 10단위 정도인데 현직 교원은 실습이 면제된다. 단순하기도 하고 교육문제를 잘 모르는 국민이 들으면 교육전문대학원 설치가 매력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럴듯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간을 늘리면 좋은 교사가 양성될 것인가, 교사가 담당하는 교과목의 전문성이 5년이나 6년을 배워야 가능할 정도로 난해한가, 기간만 늘린다고 우수한 교사가 양성될 것인가, 일부 국가의 경우 석사학위로 상향하는 사례는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교원양성은 주로 4년인데 그들의 교육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등등 여러 가지 해명해야 할 의문이 생긴다. 

 

오히려 가슴이 뜨겁고 공감 능력이 풍부한 청년들을 교사로 유인하기 위한 기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수능 9등급의 역설

 

얼마 전 뉴스에서 2023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수학능력시험 9등급이 교육대학에 합격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회자했다.

 

9등급이 교육대학이 가지 못할 것도 없고 시험 성적이 좋아야 교육대학에 진학해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9등급의 교대 진학은 여러 사람을 의아하게 하는 소식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간 직업으로서 인기가 있었으며, 아이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교사라는 직업이 젊은 층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전문가들도 많아지고 있다.


요사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다. 학교폭력, 학생·학부모와의 갈등 등과 같이 학교나 교사들에게 도전적인 상황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산업경제의 변화로 매력적이고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직업이 많은 사회 환경에게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소신만으로 교사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교원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한창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전문성을 기반으로 교육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본업이며, 이를 위해서는 학술 및 이론의 기초에 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원에게는 피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상황에서 유연한 결정 등 민첩성을 필요로 한다.

 

현대와 같이 지식의 융합이 일어나는 상황을 성찰하고 이에 대응하는 학습 프로세스를 기획하고 개인 학습자의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학생의 잠재 능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형성적이고 총괄적인 평가를 통합하는 능력도 요구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동료 교원들과 학습조직을 만들어 교육활동의 시너지를 창출하고, ICT를 활용하는 기술까지 배워야 하는 등 한 마디로 맥가이버가 되어야 한다. 학생의 지도자, 동료 교원의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녀가 한 명이 대부분이고 많아 봐야 두 명인 핵가족 사회에서 사회 공동체나 사회제도보다 자녀를 우선시하는 헬리콥터 맘이나 몬스터 패런트와도 타협해야 한다. 그들의 부족한 가정교육을 대신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은 오롯이 교사의 책임이 되는 한 마디로 번아
웃 상태다.


사회적 중책을 담당하는 교사는 우수한 청년을 많이 필요로 한다. 본래 교사라는 직업에서 따뜻한 가슴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이므로 수능 상위 등급에다 따뜻한 가슴 상위 등급을 가진 청년들이라면 교사로서 더할 나위가 없다. 다만 수학능력시험 점수를 불변점수처럼 신성시하여 인간을 등급 매기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대부분이 교사를 통해 최초로 하나의 직업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일은 개인의 가슴에서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일터로, 국가로, 지구 공동체로 확대되는 사회적 승수(Social multiplier effect)는 교사의 따뜻한 가슴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음편에서 계속)

 

 

 

김상규 박사

 

와세다대학에서 기초교육학을 전공했으며 연구 분야는 학교제도개혁, 비교교육정책, 재일한국인 교육이다. 저서로는 『민족교육―일본의 외국인 교육정책과 재일한국인의 교육적 지위』(2017), 『교육의 대화』(2017), 『교육의 폴리틱스·이코노믹스』(2022,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가 있다. 주요 논문은 「세계의 학교제도 연구」(2019), 「대학법인 경영구조 개선과 재정건전성 확보방안 연구」(2021) 등이 있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