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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크라이나 사태와 우리의 생활경제

◇ 파종이 어려운 우크라이나 들녘, 겨울 밀 선물(先物)가격 올려

 

한반도의 2.7배, 전 국토의 70%가 인산·인·암모니아 등의 천연비료 성분으로 구성된 전 세계 흑토의 28%를 가진 우크라이나. 2020년 기준으로 밀 수확량이 전 세계 생산량의 8%인 2,400만 톤이다. 이 가운데 1,800만 톤, 그러니까 생산량의 4분의 3을 수출한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에 이어 밀수출 세계 5위, 해바라기씨유는 세계 1위 수출국이다.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달달 외웠던 세계적인 곡창지대가 이 나라다. 하지만 이 나라는 1223년 몽골의 지배를 받기 시작해서 소비에트로부터 독립한 1991년까지 무려 780년간 자기 땅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해 보지 못한 불행한 역사를 가졌다. 2008년 WTO에 가입해 본격적인 농업 국가로의 도약을 시도하려 했지만,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부농의 꿈은 고사하고, 전쟁 통에 당장 겨울 밀 파종 시기까지 놓치고 있다. 농민도 농토를 버리고 싸우러 나갔고, 러시아의 장갑차와 탱크가 헤집고 다니는 휑한 넓은 들판에는 씨뿌리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씨뿌리지 않은 농토가 많으면 많을수록 곡물의 생산량이 줄어들고, 가격이 폭등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겨울 밀의 선물가격이 올해 들어서 50% 가까이 급등한 건 그런 까닭이다.

◇ 원유 공급이 자유로웠던 러시아,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에 국제유가 급상승

 

화제를 원유로 돌려보자. 세계는 Big Three, 즉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순으로 원유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는 기름을 증산하고 싶어도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반대에 막혀있다. 미국은 셰일(돌 안에 포함된 기름과 가스를 뽑아내는 신기술) 오일로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 되긴 했지만, 2050년 탄소배출 ‘제로’를 만들기 위한 에너지 관련 투자를 줄이는 중이다.

 

세계적으로 에너지 공급을 둘러싼 갈등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완충(緩衝) 국가는 Big three 중 러시아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이 금지됐으니, 국제 원유 선물(先物)시장에서 “원유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더구나, 러시아가 대부분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관의 밸브를 잠가버릴 경우, 그 대안은 유럽에 새로운 원유를 추가로 공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유를 미리 사두자는 “세력”이 늘어나게 되었고, 이 바람에 원유가격은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는 중이다.

 

◇ 수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글로벌 물가와 국내 물가의 동조화 불가피

 

문제는 이런 국제 농산물과 원유가격이 오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입 비중이 30%인 우리나라의 경제에 그만큼 물가 상승의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도 세계 각국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물가가 유례없이 오르고 있었다. 지난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10년 만에 가장 높은 2.5%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고, 체감 물가는 3.2%나 올랐다. 겨우 그것까지고 하실 분이 있을 듯한데, 평균적인 통계수치가 그렇다는 것이지 집값이나 외식비 등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끔찍하다.

 

짜장면을 예로 들어 미안하지만, 한 그릇에 4천 원이던 것이 1년 새에 7천 원~만원까지 올랐다. 코로나-19 때문에 풀린 돈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철강재, 시멘트 등 건설원자재는 물론 라면, 빵, 농수축산물, 식품 재료 등등 내가 자고 입고 사는데 필요한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요금은 안 오른 게 없다. 여기에 금리까지 올라서 살기가 더 팍팍해지고 있다. 원자재의 값이 올랐으니, 생산업체도 힘들긴 마찬가지여서 상품에 재료인상분 등을 전가해야 하니 그만큼 물가가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다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소비가 위축돼 자영업자들은 숨이 턱까지 찼다. 이런 위태로운 경제 상황인데도 이번 전쟁으로 국제유가와 국제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으니,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심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생겼다. 많은 경제 연구기관마다 글로벌 물가 인상에 따른 국내 물가가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 소수점 아래까지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체감 물가가 제대로 반영될지 미지수다. 더구나 과거와 달리 물가를 잡을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확실한 한 가지는 일단 오른 물가는 절대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 물가 상승에서 비롯한 부동산 투기, 거품 경제 우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은 주요 선진국들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경제 운용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물가 안정에 주력했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물가의 안정세가 유지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높은 성장세까지 지속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이를 신경제(New Economy) 혹은 골디락스(Goldilocks)라고 부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시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커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중앙은행들이 위기 대응책으로 통화량을 늘린 게 원인이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돈을 푸는, 즉 양적 완화 정책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이 밖에도 북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과 기상이변 등으로 촉발된 국제 원유 및 농산물 가격의 급등, 그리고 중국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됨으로써 국제 원자재 및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커진 게 글로벌 물가를 끌어 올린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물가가 오르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의 양이 줄어드니까, 그만큼 서민 생활이 어려워지고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 은행은 땅을 이길 수 없다,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부동산 투기가 성행하고,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다. 이렇게 되면 투자가 위축되고 경제 전반에 거품이 형성된다.

 

◇ 대책 없는 물가 대책, 인수위가 최 우선해야 할 경제과제

 

몇 년 전, 남산에 올랐다가 서울 전경을 보면서 천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어떻게 농사를 짓지 않고서도 굶는 사람 없이 다들 살아갈 수 있는지 너무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 하면 다 아는 철학 교수에게 인사도 할 겸 전화해서 질문한 적이 있었다. 역시, 달랐다. 그는 어리석은 내 질문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탈무드의 랍비 같은 현답(賢答)으로 단칼에 정리했다. “으음~ 서로 속고 속이면서 살아가는 거지요,”

 

대선 기간에도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10년 만에 최대·최장 고공행진을 하며 내 소득을 빼고 다 올랐다. 그렇지만, 문 정부는 명실상부한 물가 안정 대책이나 기술 진보를 통한 경제성장과 소득향상보다는 선심성 재정정책으로 돈을 푸는 데만 몰두해 온 듯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통령 인수위는 어떤가? 국민 생활경제의 핵심인 물가 안정을 경제정책의 최우선에 두려고 하기는 하는가? 있다면 인수위의 현답(賢答)이 무엇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