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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인류의 근대사에서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와 같은 여러 질병은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된 전염병들이다. 역설적이지만 유행병을 일으키는 이 세균들은 대부분 오늘날 거의 인간들에게만 감염되고 있다. 질병은 인간을 죽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므로 역사를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시에 사망한 사람 중에는 전투 중 부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으로 발생한 전염병에 희생된 사람이 더 많았다.

 


 

“무기류, 기술, 정치 조직 등의 우월성만으로 유럽인들이 비 유럽인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유럽이 다른 여러 대륙에 사악한 선물(유라시아인들이 오랫동안 가축과 밀접하게 살았기 때문에 진화된 각종 병원균)을 주지 않았다면 그러한 정복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인류가 많아지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성 질병은 진화되고 존속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 Jared Diamond(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2019년) 에서 발췌 -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 보건위원회에서 첫 사례가 보고된 COVID-19는 여전히 감염 확산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 속에서 병원균이 맡았던 역할을 보여주는 가장 무시무시한 사례는 바로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 와 함께 시작되었던 유럽인들의 남북아메리카 정복이었다. 스페인의 잔혹한 정복자들에게 희생된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많았으나 그보다는 스페인의 잔혹한 세균에 희생된 원주민들이 훨씬 많았다. 그렇다면 후세들은 이번 COVID-19에 대하여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

 

대중성 질병의 공통된 감염 특성

 

인류 역사상 가장 지독했던 유행병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2,1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플루엔자였다. 흑사병(선페스트)은 1346~1352년에 유럽 인구의 4 분의 1을 희생시켰다. 일부 도시에서는 이 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70%에 달했다. 캐나다 태평양 철도(벤쿠버-몬트 리올 간 대륙 횡단 철도)가 서스캐처원주에 건설되고 있던 1880년대 초, 백인이나 그들의 병원균에 노출된 적이 별로 없었던 이 지역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결핵 때문에 연평균 9%라는 어마어마한 비율로 죽어갔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저서 『총·균·쇠』 (2019년)에 의하면 유행병으로 찾아오는 전염병들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이 질병들은 감염된 환자 한 사람으로부터 그 부근의 건강한 사람들에게로 비교적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전파되어서 단기간에 전체 인구가 질병에 노출된다. 둘째, ‘급성병’이므로 단기간에 죽거나 완치된다. 셋째, 운 좋게 회복되는 사람들에게는 항체가 형성되어 면역성이 생기므로 그때부터 꽤 오랫동안, 때에 따라서는 평생 그 질병이 재발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질병들은 대체로 인간에게만 발생한다. 유행병을 일으키는 세균들은 대개 토양이나 다른 동물의 몸속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소아기의 급성 유행병으로 우리에게 낯익은 홍역, 풍진, 볼거리, 천연두 등도 이 네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농경과 도시의 발생이 가져온 전염병

 

농업의 발생이 왜 대중성 전염병의 진화를 촉발했을까? 한 가지 이유로 농업은 수렵 채집 생활보다 훨씬 더 높은 인구 밀도(대략 10배에서 100배)를 뒷받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렵 채집민들은 야영지를 자주 옮기므로 그때까지 세균이나 기생충 유충들이 잔뜩 축적되어 있던 분뇨 더미를 남겨두고 훌훌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농경민들은 정주형 생활을 하면서 오물 속에서 살기 때문에 각종 세균이 한 사람의 몸속에서 다른 사람의 식수 속으로 옮겨 가기도 쉽다.

 

이렇게 농경의 발생이 세균들에게 큰 행운이었다면, 도시의 발생은 더 큰 행운이었다고 재레미 다이아몬드는 말한다. 전보다 더욱 조밀한 인구가 전보다 더욱 열악한 위생 환경 속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도시 인구는 20세기 초에 들어와서야 마침내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대중성 질병으로 끊임 없이 죽어가는 도시 거주자들을 보충하기 위해 시골의 건강한 농부들이 끊임없이 밀려 들어와야 했다.

 

세균들에게 또 하나의 행운은 세계 교역로의 발달이었다. 그로 인해 로마 시대에는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가 효과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세균 번식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에 천연두가 ‘안토니우스 병(안토니우스는 로마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에 도달했다. 그 결과 A.D. 165년~180년에는 수백만 명의 로마 시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번 COVID-19의 확산은 비행기와 항만 등 발달된 교통 및 운송 수단의 영향으로 더욱 급속히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사례로 1991년 어느 날 아르헨티나 항 공 소속의 여객기 한 대가 페루 리마에 기착했다가 콜레라에 감염된 수십 명의 승객을 싣고 거기서 4,800km 넘는 거리에 있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같은 날 도착했다. 예전에는 머나먼 이국의 질병일 뿐이라고 생각하던 온갖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들이 마구 뒤섞인 채 전 세계에 흩어지게 된 것이다.

 

새로운 질병들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최근 세균에 관한 연구를 통해 여러 가지 그 원인과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많은 세균에 대해 분자생물학자들은 유행병이 대체로 대규모 집단을 이루고 있는 사회적 동물들에 국한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나 돼지 같은 사회적 동물을 가축화시켰을 때 이 동물들은 이미 그러한 유행병에 걸려 있었으므로 그 세균이 우리에게로 옮겨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인간의 질병 관계가 가장 가까운 병원체를 보유한 동물

홍역

결핵

천연두

인플루엔자

백일해

열대말라리아

소(우역)

소또는 관련된 두진 바이러스를 보유한 기타 가축

돼지, 오리

돼지, 개

조류(닭과 오리)

 <표1> 동물 친구들의 치명적 선물(재레드 다이어몬드 '총균쇠'2019,302)

 

재레드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 낯익은 다른 전염병들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동물들의 질병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홍역 바이러스에 가장 가까운 것은 우역(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소의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우역이라는 지독한 유행병은 소를 비롯하여 많은 야생 반추 포유류를 감염시키지만, 인간은 우역에 걸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소도 홍역에 걸리지 않는다. 홍역 바이러스와 우역 바이러스는 매우 유사한데, 이 말은 곧 우역 바이러스가 소에게서 인간에게로 옮긴 후 우리 몸에 맞도록 특성을 변화시켜 홍역 바이러스로 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류 역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세균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3월 11일 COVID-19에 대하여 범유행(팬데믹)을 선언하였다. 현재도 진행 중인 팬데믹은 인류 역사에 상상을 초월하는 영향을 주고 있고, 예방을 위한 백신과 치료제들이 개발되고는 있으나 그 누구도 팬데믹이 언제 종료될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인류 역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바이러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의하면 올 8월 20일 기준 COVID-19 누적 감염자 수는 약 2억 9백만 명, 누적 사망자 수는 약 4백 4십만 명에 이른다.

 

인류의 역사에서 치명적인 세균들이 갖는 중요성은 유럽인들이 신세계를 정복하고 원주민들을 말살시킨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유럽의 총과 칼에 의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아메리카 원주민보다 유럽의 병원균에 의해 병상에서 목숨을 잃은 원주민 수가 훨씬 더 많았다. 이 같은 병원균들은 대부분 인디언과 그 지도자들을 죽이고 생존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림으로써 인디언들의 저항을 약화시켰다.

 

1519년 스페인 출신의 정복자 코르테스는 지독하게 군사 중심적인 인구 수천 만의 아스텍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600명의 스페인 사람을 이끌고 멕시코 해안에 상륙했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아스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하여 병력의 3분의 2를 잃고 무사히 탈출했다. 싸움을 거듭한 끝에 결국 해안까지 돌아갈 수 있었으나 여기에는 스페인의 군사적 이점과 아스텍족의 어리숙함이 함께 작용했다.

 

그러나 코르테스가 다시 쳐들어왔을 때 아스텍인들은 더 이상 어리숙하지 않았고, 몹시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도 스페인 사람들이 유리했던 것은 바로 ‘천연두’ 때문이었다. 이 병은 1520년에 스페인령의 쿠바에서 감염된 한 노예와 더불어 멕시코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유행병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아스텍족을 몰살시켰으며 그 속에는 쿠이틀라우악 아스텍 황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페인 사람은 내버려 두고 인디언만 골라 죽이는 이 수수께끼의 질병 때문에 아스텍의 생존자들은 사기가 크게 저하되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약 2,000만에 달했던 멕시코 인구가 1618년에 이르렀을 때는 약 160만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COVID-19가 인류에게 준 영향

 

 

동물에서 유래된 질병들의 역사적 영향과 중요성은 여전히 COVID-19라는 바이러스에 의해 진행 중이며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방향을 바꾸고 있다. 위의 사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집계한 COVID-19의 국가별 감염 상황도이다. 가장 짙은 파란색이 감염자가 500만 명이 넘은 국가(지역)이다. 국가와 지역별 차이가 있겠지만 집계가 되지 않는 북한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전 세계적 범유행(팬데믹)이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국가 및 지역별 감염 상황이다. 아메리카 지역이 약 8천만 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를 보이고 있으며, 이어 유럽이 약 6천만 명, 동남 아시아지역이 약 4천만 명, 지중해 동쪽 지역이 약 1천만 명, 서태평양 지역이 약 5백만 명, 아프리카 지역이 약 5백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과 유럽지역에서 감염자 수가 급속히 확산하였고, 국가별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구 밀도를 그 이유로 보았다. 그러나 세계 인구 밀도는 1위 모나코, 2위 싱가포르, 3위 바레인, 8위 대한민국 등 유럽과 아시아지역이 대부분으로 그의 주장 일부와는 맞지 않게 된다. 

 

 

지난 3월 유럽연합(EU)이 발간한 Impacts of the COVID-19 Pandemic on EU industries(2021, European Parliament) 보고서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감염 확산과 예방의 중요한 변수로 들고 있다. 위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지역은 전 세계의 감염자 평균수를 훨씬 웃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인에 대하여 감염 예방 등 보건영역과 관련된 정부(국가)의 역할이 중요함을 제시한다. 특히 중국과의 감염자 수 비교를 분석하며 COVID-19 감염과 예방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결정과 집행이 중요한 변수임을 제시하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전염병을 ‘구세계와 신세계의 충돌’로 표현하고 있다. 유럽의 소수 이주민이 남북아메리카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토록 많은 원주민을 점령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전염병(세균)으로 보고 본다. 이 책이 전염병을 ‘진화’의 관점으로 보는 것은 창조과학회 등 학계의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인류가 정착하며 동물을 가축화한 이해관계로부터 전염병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인간의 이기적 욕망으로 진화되었다는 부분은 우리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인간과 동물의 관계적 측면이 될 것이다. 더불어 후세대가 기억할 COVID-19에 대하여 현세대가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단순히 임시 변통식의 문제해결은 아니었는지 지금부터 되짚어 보아야 한다.

 

미봉(彌縫)이란 옷감의 터진 부분을 깁고 꿰매는 것을 말한다. 즉, 터진 부분을 꿰매 원래대로 합쳐 놓는 것이다. 오늘날 미봉책이라는 말은 본질적인 문제를 덮어둔 채 그때그때 눈가림식의 해결로 대충 넘어가는 태도를 나무라는 말로 쓰인다. 이와 반대로 고육책(苦肉策)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육체를 괴롭게 하는 계책’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황개라는 장수는 제 몸의 괴로움이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조조하게 항복하여 신임을 얻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은 거리 두기, 일본은 긴급사태, 베트남은 락다운(이동제한령) 등 국가(지역)별 ‘고육책’을 실시하고 있다. 국가의 고육책에 대한 불투명한 효과, 생업상의 어려움 등 국민의 우려와 불편을 초래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의 고육책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집단의 구성원 각자가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하듯 공동체의 조화로운 삶을 위한 공동체 의식일 것이다.

 

MeCONOMY magazine September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