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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누리과정예산, 지방에 떠넘기고 정부는 나 몰라라


세계에서 가장 늦게 첫아이를 출산하고(30.9세)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1.21명) 대한민국은 2018년이면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최근 정부가 3~5세 어린이를 위한 누리과정예산을 지방자치단체로 떠넘기면서 정부와 지자체간의 갈등이 ‘보육대란’으로 번질 기미를 보이고 있어 아이를 가진, 그리고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인 부모들의 걱정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누리과정예산 논란을 취재했다.


저출산·고령화가 대한민국의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21명으로 전 세계 190여 개국 가운데 꼴등 수준이다. 낮은 출산율과 더불어 높은 노인 인구 비중으로 앞으로 2년 후인 2018년이면 고령인구 비율이 14%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늦게 첫아이를 출산하고(30.9세)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대한민국은 2018년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청년들은 세쌍둥이를 보며 열광하지만 내가 기르기에는 경제적으로 상황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천문학적 양육비와 교육비는 예비부부들의 가장 큰 부담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제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 시안’을 발표했다. 국가적 문제를 국민과 함께 해결한다는 취지에서 대국민 공청회도 열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국내 현실과 맞지 않은 출산과 양육 정책 때문이었다. 현행 학제를 1년씩 줄여 초등 5년, 중등 5년으로 바꿔 결혼을 앞당기고 국가 차원의 단체 미팅을 통해 국가가 결혼을 주선하겠다는 제안에는 실소마저 터져 나왔다.


또 일·가정 양립 제도를 보완 발전시킨다고 했으나 이는 몇 몇 대기업과 공기업에서나 가능할 법한 대책으로 이를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연말에도 저출산·고령화 긴급좌담회를 열어 대책 마련의 의지를 보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을 앞둔 청년들이 가장 고민하는 양육과 자녀 교육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정부가 약속한 ‘누리과정’


지난해 12월2일 가까스로 통과된 정부 예산을 살펴보면 정부가 진정 출산을 장려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래전부터 논란이 됐던 누리과정 예산 때문이다. 누리과정이란 만 3~5세를 대상으로 모든 어린이의 학비와 보육료를 국가에서 지원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누리과정은 3~5세 어린이들의 공평한 교육과 보육 기회 보장을 위해 2012년3월부터 5세 누리과정을 시작으로 국가가 공통으로 시행하도록 만든 표준 교육 내용으로 2013년3월부터는 3세부터로 확대되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구분 없이 동일한 내용을 배우고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22만원의 동일한 보육료 또는 유아학비를 지원했다. 정부는 이후 정부 지원액을 점차 늘려 2016년에는 학부모 지원금을 30만원으로 인상하여 부모의 부담을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누리과정 정부 예산 ‘0원’, 지자체 의무지출항목으로 떠넘겨


2012년12월, 18대 대선 당시 현 정권은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아이 기르기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실제로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대선 공약으로 보육과 같은 전국 단위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말을 바꿨다.


지난해 9월초 정부가 제출한 2016년도 새해 예산안에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이 교육부에도 복지부에도 전혀 편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12월2일 통과된 2016년도 예산안 386조 4천억원에는 박근혜 정부가 약속했던 2016년도 누리과정 30만원 지원약속은 언급조차 되지않았다.


다만 지방교육청의 학교 환경 개선 사업 시설비 지원 명목으로 예비비 3,000억원을 편성해 이를 누리과정 예산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항목으로 규정함으로써, 시도교육감이 책임지고 편성토록 강제했다. 내년도 누리과정에 필요한 예산은 모두 4조239억원. 하지만 지방의회 심의를 통과해 확보된 예산은 1조1322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28%이다. 어린이집만 따지면 16.5%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자체 “정부의 책임전가, 하고 싶어도 할 여력 없어”


문제는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겨진 누리과정이 실제로 제대로 편성될 수 있는가 여부이다. 정부의 누리과정 우회 편성이 책임 전가와 약속 미이행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12월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시·도 교육청 누리과정 예산 점검 및 대책협의를 위한 관계부처 긴급 차관회의를 열고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선 시·도교육청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정부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시·도 교육청이 계속해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시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한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시·도의회와 교육청 간 이견이 깊어지면서 서울과 광주, 세종, 경기, 강원, 전북, 전남 등 7곳이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고 충북은 수정예산안을 제출, 본회의가 연기됐다. 나머지 9곳은 최소 2개월에서 최대 9개월까지만 한시적으로만 편성, 실질적으로 어린이집 예산을 전액 편성한 곳은 단 1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예산 편성은 유치원으로도 확산돼 광주와 전남, 서울, 경기도가 어린이집 외 유치원 예산도 전액 삭감했고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강원, 충북은 시도별로 4개월에서 8개월 동안 한시적으로만 지원키로 했다. 이 같은 예산안도 교육감이 동의하지 않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과 충남외 어린이집 예산안에 수정을 요구한 충북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내년도 예산안에서 유치원 누리과정 지원용으로 편성된 2525억원을 전액 삭감하면서 당장 내년 1월부터 어린이집뿐 아니라 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가정의 유아 학비 지원이 중단된다. 경기도의회 역시 여야가 팽팽히 맞서며 예산안 심사가 파행되었고 18일에는 경기도의회 새정치민주연합이 '누리과정 국가편성' 결의대회를 열어 팽팽히 맞섰다. 전국 시·도 교육청은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선언한 상태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전국 교육청의 누적 지방채가 18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강제하고 있다”며 “이미 한계를 넘어선 지방 교육청은 초중고의 다른 예산을 줄이거나 교육청 인건비를 삭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누리과정예산 의무지출경비 지정 강행 추진 반대와 함께, 이러한 강제가 시도교육감의 예산 편성권과 자율권을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는 결의를 발표하면서 맞서고 있는상황이다.


정부와 지자체 갈등…피해는 우리 아이가



당장 올해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야하는 학부모들은 막막한 상황이다. 지난 10월15일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3,000여명의 보육교사, 학부모들이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어 정부의 누리과정 떠넘기기와 보육예산 줄이기 정책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며 정부의 약속 미이행시 휴원까지도 불사하겠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꾸준히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던 보육·교육·시민단체들은 믿는 정부에 발등을 찍혔다. 애초에 대통령이 직접 건 공약이기에 믿고 있던 이들은 이제 ‘박근혜 정권 규탄’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서고 있다.


지난 12월18일 세종시 교육부 청사 앞에는 보육·교육·유관시민단체들이 총집결하여 2016년 누리과정 예산 사태와 관련하여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해결책 마련을 위한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한민련 장진환 회장은 “지금이라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각성하고 보육학부모와 보육교직원이 불안과 근심 걱정을 떨쳐 버리고 오직 보육과 교육 본연의 일에만 전념 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 점차 심해지며 보육대란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누리과정 예산파동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불법시비가 제기되고 있는 관련 법률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추경을 편성하여 누리과정 예산미편성 사태를 조기에 해결해 달라는 것 그리고 보육대란과 교육재정파탄 해결을 위한 사회적 협의기구 구성 마련 등을 주장했다.


이처럼 전국의 300만 보육학부모와 31만 보육교직원들 그리고 누리과정 예산을 떠맡게 된 지방자치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지만 12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정부 들어 무상보육 전면 실시, 사교육비 대책, 일·가정 양립 정책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는데 현재 출산율 1.2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해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저출산 코리아의 우울한 뉴스는 아이를 가진 그리고 앞으로 아이를 가질 부모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정부는 ‘우리는 잘 했는데, 네 탓’이라고 끝까지 책임회피를 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에게 실망감을안겼다.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순 우리말로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과 보육을 통해 만 5세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열어가고 꿈과 희망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여야 대표와 교육부·기재부 장관과 함께 12월21일 5자 긴급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무산됐다. 정부 여당은 교육감들이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편성토록한 시행령을 어기면 불이익을 주겠다며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가슴 졸이며 이를 지켜보는 부모들은 애가 탈 지경이다.


MeCONOMY Magazine January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