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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근로복지공단, 묻지마(?) 항소·상고로 두 번 우는 산재환자들

 

우리나라에 산재보험이 도입된 지는 올해로 51년째가 된다. 지난해 정부는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아 국제심포지엄, 학술세미나 등을 열며 자축했지만 같은 시각 정부의 공식 행사장 앞에서 노동자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보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수년째 현장에서는 근로복지공단이 항소, 상고를 무분별하게 제기해 환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 9월 심상정 국회의원은 공단이 1심 패소한 사건에 대해 지난 4년간 항소 제기한 비윤리 행위가 80.5%에 달한다며 자료를 공개했다. 이러한 수치는 서울행정법원 연평균 항소율보다 20%이상 높다. 산재보험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진폐근로자 김상의(가명) 씨는 올해 10월29일 대법원에서 상고기각 판결을 받아 소송을 시작한지 4년여 만에 최종적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승소했다. 장해3급인 김 씨는 ‘평균임금 × 257일분’을 12개월로 나눠서 장해연금을 매달 지급받고 있었다. 하지만 2011년 초 평균임금 산정이 잘못돼 있어 원래 받아야 할 금액보다 적은 상태임을 확인하고 근로복지공단에 평균임금정정신청을 했지만, 공단측의 부지급 결정으로 2011년 12월28일 행정소송에 나섰다.


이후 2012년 7월2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바로 고등법원에 항소를 했고 2012년 12월11일 항소는 기각됐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3년 1월8일 대법원에 또다시 상고했다. 2011년에 시작된 평균임금정정신청은 약 4년이 지나게 되는 올해 2015년 10월29일 김 씨의 승리로 끝났다. 고령의 진폐근로자인 김 씨는 “진폐급수도 3급이라 심폐기능이 고도로 제한된 상태고 언제 사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며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의 항소·상고로 최종 결정까지 4년을 넘는 시간동안 재판장에서 싸워야 했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근로복지공단 항소제기, 4년간 80.5%에 달해


최근 무분별한 공단의 항소, 상고로 판결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 급여가 지급되지 않아 고통 받는 근로자들이 많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위 사례의 김상의 씨는 일단 장해연금을 지급받고 있기는 하나, 처음부터 부지급 결정을 받고 대법원까지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가 90% 이상이라는 게 노무사 업계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의 다수의 항소·상고는 생계보호가 목적인 산재보험의 원칙을 흔들고 있다”면서 “그 과정에서 다쳐서 일할 수도 없는 근로자는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사실 근로복지공단의 항소, 상고 남용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거의 매년 단골메뉴로 등장하지만 이에 대한 제도개선의 움직임, 시정 노력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올해 9월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은 “근로복지공단의 행정소송 사건에 대해 1심에서 패소한 사건에 대한 항소를 제기한 비율을 살펴보면 지난 4년간 80.5%에 달하며 이는 서울행정법원 연평균 항소율(12~13년 평균 58.5%)보다 20% 이상 높다”면서 해당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4년간 1심에서 패소한 사건에 대한 공단 측 항소제기율은 80.5%에 달하고 반면, 재해자측 항소제기율은 44%에 불과해 공단의 항소 제기율이 재해자 측보다 월등히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항소, 상고한 사건의 승소여부는 어떨까?

 

심상정 의원은 “공단의 1심 패소사건은 대부분 증거가 명확하고, 의학적 근거에 의한 판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단의 항소남용으로 산재환자는 수년에 걸쳐 치료도 제대로 못 받아 병세는 악화되고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느라 경제적 고통을 받는 등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면서 “통계에서 확인되듯 소송 중 공단의 처분변경으로 인한 소 취하가 32%에 달하는데 이는 ‘공단이 재해자에게 조정을 요청해, 산재 불인정 처분을 취소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종결시키는 것’으로 앞서 패소율과 합치면 공단이 항소한 소송 사건의 ‘실질적인 공단의 패소 비율’은 무려 87%”라고 지적했다.

 

이어 심 의원은 “공단은 이기지도 못할 소송에 대해서 일단 항소를 하고 나서, 패소율을 낮추기 위해 원처분을 취소하는 방식으로 원고 취하를 유도하고 있다”면서 “이미 경제적·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산재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항소 남발 행위를 공단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재보험제도의 ‘신속한 보상’ 취지 무색

 

전문가들은 근로복지공단의 불필요한 항소, 상고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 상황은 산재보험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산재보험은 산업재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1964년에 도입됐다.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인해 부상 또는 사망한 경우 피해 근로자나 가족을 보호 내지 보상해 주기 위해서 산재보험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산재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책임을 지는 의무보험으로 원사용자의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 책임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사업주로부터 소정의 보험료를 징수해 그 기금(재원)으로 사업주를 대신해 산재 근로자에게 보상해 준다.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에게 신속한 보상을 하고 사업주에게는 재해발생시 보상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 국가가 직접 관장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도 이 같은 법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지급하는 보험급여는 요양급여, 휴업급여, 상병보상연금, 장해급여, 장의비, 유족급여, 간병급여 등이다. 하지만 이를 관장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소송을 남발하면서 법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지연이자제도 도입, 승소포상금 규정 삭제해야

 

취재원이 만나본 산재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항소와 상고에 대해 공통적으로 지연이자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피플 유정은 변호사는 “공단의 관례적인 항소와 상고에 대해 지연이자 제도를 도입해 어느 정도 항소, 상고의 부담을 지워야 한다”며 “현재는 공단이 패소해도 그동안 지급하지 못한 금액만 계산해서 주면 된다”고 지적했다.

 

1심에서 패소판정이 확정되나 대법원까지 가면서 4년 가량 시간이 흘러가도 지급하는 돈은 똑같다는 얘기다. 이원희 중앙경제HR교육원장(노무법인 가교 공인노무사)도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소송에 있어
문제점은 공단이 아무런 부담을 가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면서 “지연이자제도의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고, 담당자의 잘못된 항소·상고에는 불이익을 가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노무사는 “공단의 소송사무처리 규정에 승소포상금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소송사무처리 규정 제39조는 공단 직원이 민사소송을 직접 수행해 승소(일부승소 및 조정은 승소가액을 기준으로 60% 이상 승소)한 경우에 포상금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상 단순 과로사까지 법률심인 대법원에 상고를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면서 “이에 공단 관계자는 ‘상소는 검사의 지휘에 따르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행정소송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검사가 단독적으로 항소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핑계가 아니겠냐”며 의문을 남겼다.

 

근로복지공단 설립목적 되새겨야

 

올해로 우리나라에 산재보험이 도입된 지 벌써 51년이다. 지난해 정부는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아 국제심포지엄, 학술세미나, 유공자 포상식 등을 열며 자축했지만 정부의 공식 행사장 앞에서 노동자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보험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제도는 산업화가 가속화되던 시절 도입된 최초의 사회보험으로 산재근로자의 안정적인 치료와 생계보장을 통한 실질적인 보호, 사업주의 위험 분산을 통한 고도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기준 445만명의 산재근로자와 그 가족에게 치료·보상·재활 및 복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생활안정과 조속한 사회복귀를 통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해 왔다. 이재갑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의 질문에 “공단도 법원에 항소를 남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인식 하고 있다”면서 “공단의 항소에 대해서 통제를 하기 위해서 항소와 상고 사건에 대해 본부의 지위를 받도록 9월초 소송사무처리규정을 개정했다”고 전했다.

 

이어 “지침에 상소를 제기할 수 있는 요건을 구체적으로 한정했다”면서 “내부 경영평가 기준에서도 상소심 승소율을 넣어 패소가 분명한 사건도 상소를 하는 경우를 자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직 승소포상금 규정은 삭제되지 않고 있다. 개정된 소송사무처리규정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근로자가 산재를 인정받고 보상을 받으려면 근로복지공단으로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사전승인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공단은 최근 5년 동안 산재보험으로 수조원의 흑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아닌 근로복지공단이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근로자의 보건향상과 근로자의 복지증진에 기여’라는 공단의 설립목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MeCONOMY Magazine Decembe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