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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녹십초 알로에 나호준 부장 “봉사라니요! 오히려 제가 행복하죠”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거리에 주머니 속의 후한 인심을 담아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기다.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봉사활동을 하고 작은 월급봉투를 쪼개어 힘든 이들의 어깨를 다독이는 이들에게 부끄러워지는 때도 이맘때이다. ‘봉사하는 삶을 행복’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녹십초 알로에 나호준 부장. 잔잔한 감동을 담아가고 있는 그의 나눔 인생을 들여다봤다.


어김없이 새벽 4시면 울려대는 알람시계. 곤한 잠을 깨우는 지금이 나호준 부장의 빠듯한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살아생전 아버지께서 ‘몸이라도 부지런해야 굶지 않는다’고 강조하신 그 말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그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연말이 되면서 할 일이 더 많아져서 주어진 24시간을 쪼개어 쓴다는 그는, 평일은 회사업무를 하고 주말과 휴일이면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그런 남편을 조용히 따라 나서는 아내에게 불만은 없냐고 묻자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뭐!”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사실 나호준 부장의 아내는 봉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날개 없는 천사다. 복지관에서 미용봉사를 해오고 있는 그녀는 쉬는 날이면 남편과 함께 어려운 이웃을 찾아 미용봉사를 해오며 남편의 나눔 파트너로 행복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처가댁이 목사님만 14분이 계시는 목회자집안입니다. 처가 식구들은 만나면 모든 대화는 봉사에서 시작해 봉사로 끝납니다. 그러다 보니 봉사하는 삶이 몸에 밴 거죠. 저희 부부는 결혼하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자고 맹세했어요. 비록 가진 건 없지만 우리의 작은 손길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살아가자고요. 결국은 그게 행복 아닐까요?”


나호준 부장에게 연말은 더욱 바쁜 시기다. 매년 해오고 있는 ‘연탄 나르기’와 ‘김장담그기’ 외에도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안부인사도 나눠야 하고 챙겨야 할 아이들도 많다. 이런 나 부장에게 얼마 전에는 진도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가 고춧가루를 40근이나 보내왔다. “제가 봉사하는 걸 보고 자기도 동참하고 싶다면서 보내 온 겁니다. 올 연말에는 이 친구의 훈훈한 정을 듬뿍 담은 김장을 맛깔나게 버무려서 어르신들에게 나눠드릴 겁니다. 힘든 분들이 그 친구의 마음만큼 풍족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룹홈’ 후원회장도 맡아


나호준 부장은 현재 ‘모양은 달라도 함께 해서 행복한 곳’인 대전 대덕구에 위치한 ‘밝은 내일의 집(원장 문연희)’ 후원회장도 맡고 있다. 그의 초등학교 친구가 원장으로 있는 이곳은 부모가 생존해 있으면서 학대, 방임. 유기, 부모와의 이별, 수감, 질병, 가출 등으로 인하여 양육을 할 수 없는 아동과 청소년(만 0~18세)들이 가정공동생활(그룹홈)을 하고 있다. 규모가 작다 보니 기업들의 후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해서 몇 년 전 초등학교 동창들과 후원회를 결성했다는 그는 “이 아이들에게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어서였다”며 조용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난봄에는 아이들을 초청해서 광명시에 있는 광명동굴 체험을 시켰다고 했다.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면서 우리역사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는데 너무 좋아해서 감사했다고 했다. 또 파주에 있는 통일 전망대를 관람하면서 북한이 우리와 가까운 곳인데도 갈 수가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한다.


“사실 문연희 원장과 저는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그 친구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부모가 있지만 방임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너무나 행복해 하는 걸 보니까 존경스럽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친구들에게 그랬습니다. 학교에 다닐때 반장을 한 번도 못해 봤으니 후원회 만들어서 내가 회장할 테니 함께 하자고. 이 제안에 여러 친구들이 함께 해줬습니다.


현재 후원회 부회장은 김선근, 김재규, 김성덕, 양인종, 임기섭 등 5명이, 그리고 후원회장은 제가 맡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전남 장성군 삼서중학교 6회 졸업생이면서 삼서중앙초등학교 51회 친구들인데 아이들로 인해서 더욱 끈끈하고 돈독한 사이가 됐습니다. 이번 연말에는 한 번 초청해서 연말분위기를 내보자고 해서 지난주에 인천구경을 시켰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어 보고 강화도에 들려 시원한 바닷가에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시간도 가졌고요. 돌아오는 길에는 월미도에 들려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기구도 태우고 연말 분위기도 낼 겸 한강 유람선관광도 했습니다. 한강을 다니는 유람선이 토요일 저녁이면 불꽃놀이를 하더라고요. 배 안에서 불꽃을 보면서 아이들이 너무나 행복해했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이번 아이들 초청에 인천에 사시는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께서도 함께 동행해준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22년간의 인연 ‘광명 사랑의 집’


그의 손길이 닿는 곳은 또 있다. ‘광명사랑의 집’이다. 비가 셀 정도로 허름한 이곳과의 인연은 22년전이라고 했다. “제가 광명 ‘사랑의 집’과 인연이 된 것은 22년 전입니다. 그 집은 맨 처음 제가 만났을 때 무허가 건물로 아주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다 간판도 없고 비가 새는 집을 발견하고 뭐하는 곳인데 이런데 있나 해서 들어갔는데 목사님(최진길 목사)과 사모님이 나와서 오갈 데 없는 아이들과 노인 분들이 생활하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당시에 22명이 생활한다고 했는데 초등학생부터 82세까지라고 했습니다.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뭐냐니까 생필품(치약, 비누, 샴푸 등)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 인연이 지금껏 이어온 것이죠. 시간이 될 때 마다 찾아가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사서 택배로 보내드립니다. 가끔 사모님께 전화도 드리는데 필요하신 건 없냐고 하면 “화장품이 필요하긴 한데...” 그러시면서 수줍게 웃으십니다. 늘 고맙다고 하시면서 작은 도움에도 눈물 나도록 감사해하고요.”


연말을 맞아 녹십초 알로에 박형문 회장과 요양병원 의사 한분도 함께 이곳을 찾아 진료도 하고 생필품도 전해 주고 왔다는 그는 “바빠서 자주 못 갈때면 언제 오냐며 기다려주는 마음이 가족과도 같다”고 말했다.
“저는 늘 방문하기 전에 전화해서 뭘 사가면 좋겠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입맛이 바뀐건지 목사님께서 ‘애들이 입이 고급스러워져서 햄하고 소시지만 먹는다’며 ‘기왕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사다 달라’고 해서 한참 웃었습니다.”


하루 ...그리고 48시간


그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새벽 4시에 어김없이 기상한다. 친구들에게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듣는 이유다. 사람들은 도대체 몇 시간을 자냐고 묻지만 그는 새벽에 할 일이 너무나 많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은 녹십초 알로에 중앙연구소이다. 여기서 그는 유통부문 총괄을 담당한다.


“녹십초 알로에는 녹십초 화장품, 녹십초 중앙연구소, 녹십초 요양병원, 녹십초 생활건강, 스페랑스, 더스킨하우스 등 여러 개의 분야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근무하는 녹십초 중앙연구소는 국내외 우수대학연구소와 산학협동체제를 구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 공정 철저한 위생관리시스템 하에서 20여 명의 우수한 연구진들이 밤낮으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요. 녹십초 알로에에서 만들어지는 680여 가지의 제품 하나하나를 정밀하고도 세밀하게 연구하는 곳이 여깁니다. 저희는 정통방문판매조직을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이러한 제품의 완성도가 있기에 가능하다고봅니다.”


소비자와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유통분야는 무엇보다 폭 넓은 시야확보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CEO과정을 수료했고, 올해는 고려대 경영대학원 K-CEO과정 수료를 앞두고 있다. 매주 수요일 회사근무를 끝내고 학교에 가서 6시30분부터 9시30까지 강의를 듣는데 주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시간이다.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서 폭넓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알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그는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여기서배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의 다양한 분들을 만나 아무 데서나 할 수 없는 개인적인 얘기며 세상살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보면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고 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강사들이 하는 얘기들을 정리했다가 일과 접목시키다 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디어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세상을 보는 시야가 상당히 넓어졌다는 그는, 한 두 해 재충전한 다음에는 또 다른 분야의 만남을 위해 문을 두드려볼 생각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떠올리며 봉사활동 시작


봉사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도 힘들게 살아왔으니까”라는 말로 봉사하는 삶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곤 한다. 나호준 부장 역시 봉사하는 것을 행복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데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맞닿아 있다. “제 어린 시절만 해도 참 힘들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지만 힘들게 살다보니까 하고 싶었던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그런 것들이 늘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형제가 아주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11명의 자식을 낳으셨는데 그중 두 분이 돌아가시고 현재 9남매가 남아있습니다. 그런 형제들 속에서 하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어떻게 충족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이야 모두가 먹고 살만하니까 그렇지 당시만 해도 참 힘이 들었죠.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어머님께 전화로 문안인사를 드립니다. 현재 86세신데 아직 건강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봉사하며 살아가는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해도 살다 보면 어찌 답답한 일이 없겠는가? 그럴 때면 그는 가수 배일호 씨와 술잔을 기울인다고 한다. 30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가수 배일호 씨는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이며 친구이며 형님이라고.


“그 형님은 신토불이라는 노래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까지 정말로 고생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제가 답답하고 힘들 때 개인상담을 하는 분인데 제 답답한 보따리를 풀어 놓고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덧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립니다. 아주 묘한 능력자에요. 인생의 안내자와 같은 분들도 계십니다.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 분들이신데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신 김덕룡 선생님과 최길례 선생님입니다. 이 두 분은 늘 제 인생의 든든한 후원자이십니다. 또 유지원 목사님께서는 제 인생의 멘토이십니다. 이 분들이 계심으로써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MeCONOMY Magazine Decembe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