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식약청 유기농 고시 기준은 전 세계 최고로 칠 정도로 까다롭다. 그만큼 99.99% 자연유래 성분과 95% 유기농성분으로 화장품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철벽을 깨고 유기농 인증을 받은 국내 기업이 있다. 작은 중소업체지만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외 유기농 인증을 받은 ENS코리아는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아서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해도 어머니가 차려 주신 음식처럼 정직하게 마음과 정성을 담았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세계시장을 향해 과감한 도전을 하고 있다.
‘내 얼굴을 위한 유기농 꽃 발효이야기, 피부에 완벽한 에너지 꽃 발효에 주목하다.’ 국내 유일 유기농인증마크를 획득한 ENS코리아가 내걸고 있는 경영철학이다. ENS코리아가 지난 10년간 오직 한 가지에 집중한 연구개발은 해외유기농인증마크라는 대어(大魚)를 낚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유기농성분으로 화장품을 만들려면 꼭 필요한 천연방부제를 개발해 독일 BDIH인증기관의 인증도 받아냈다. 독일의 BDIH 인증기관은 유럽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높다. ENS 코리아 박준한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유기농제품을 만들려면 식약청에서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독일의 BDIH인증기관하고 우리 식약청 기준이 맞았다며, 순 유기농성분인증마크를 받은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설명했다.
“실제로는 100%인데 유기농제품 99.9%는 표기법상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순금도 표기할 때는 99.9%라고 하잖아요.” 박 대표는 수입해서 들여오는 제품들은 유기농함량이 낮아도 유기농마크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유기농인증기관이 없다보니까 인증기관이 있는 나라에 가서 돈을 주고 인증마크를 받아와야 해 경쟁력에서 밀린다며 안타까워했다.
“인건비라든가 로열티 등 해외로 나가는 비용이 상당합니다. 우리나라 유기농인증기관이 빨리 설립되어야 해요. 우리나라에 왜 인증기관이 없냐고 할 수 있겠지만 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에 대한 커버가 있다 보니 해외규격에 적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농산물에는 저농약→무농약→유기농이라는 단계가 있어요. 그런데 외국은 무농약이면 그냥 무농약이지 저농약이라는 단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외국에서 한국의 유기농기준이 자기들의 기준에 현저히 떨어진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 유기농기준은 그들이 인정조차 해주질 않아요.”
천연방부제 개발해 독보적인 자리에 올라
ENS코리아는 15년 전 자연화장품 시장에 뛰어 든작은 중소기업이다. 당시 박 대표가 화장품 회사를 구상하는 걸 보고 많은 지인들은 반대부터 했다고 한다. 고생길이 뻔히 보이는 길을 한사코 말렸던 것이다. 그러나 30대 초반의 젊은 사업가에게는 굳게 믿는 게 하나 있었다고 한다. “향후 소비자들이 자연화장품을 찾을 거라는 ‘감’이 있었어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28살의 어린나이에 창업을 했고 남들과 다른 차별성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사업을 통해 배웠다고 한다. “호주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는데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했어요. 아마 호주로 이민을 간 교민 중에서 두 번째로 제가 돈을 많이 벌었을 겁니다. 당시 유명해진 이유는 우리 교민들이 하는 방식을 과감하게 탈피했기에 가능했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호주에 있는 우리 교민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탁자를 대충 놓고 음식을 팔거나 음료를 팔았거든요.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서울에 와서 압구정동 레스토랑을 견학한 후 컨테이너로 압구정동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소파와 탁자들을 호주로 실어갔습니다. 서비스도 달랐어요. 손님들이 주문하기 위해 손을 들기 전에 센터에서 보고 있다가 스텝을 그 테이블로 가게 해서 최대한 불편하지 않도록 했던 거죠. 깔끔한 인테리어와 편안한 분위기 등이 현지인들에게 큰 파장을 가져왔어요.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손님들이 늘 줄을 섰고 현지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가졌어요.”
박 대표가 잘 되던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한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저는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레스토랑 매매대금으로 화장품 분석회사를 매입했죠. 화장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슨 원료로 만들었는지를 분석하는 회사였어요.” 이후 그는 화장품분석에서 더 나아가 화장품 회사를 설립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국내의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들의 트랜드와 접목하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한다.
“한국 사람들은 유명연예인이 입는 옷이라든가 액세서리 같은 걸 따라 하는 경향이 많잖아요. 좋은 제품을 만들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천연화장품이라는 개념자체가 없을 때였어요. 기존의 기업들과 차별화를 가져오려면 틈새시장인 천연 화장품시장을 개척해야 했는데 소비자 층이 전무한 상태였던 거죠. 천연화장품을 만들려면 천연방부제가 있어야 하는데 당연히 없었죠. 그래서 천연방부제 개발부터 하게 된 겁니다.” 박 대표는 지금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10년 전만해도 안개 속을 걸어가는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국내 최초 유기농 꽃 발효 화장품 선보여
현재 ENS코리아가 내놓고 있는 제품은 라인별 특징이 있다. 유기농 꽃을 발효한 제품인 기초라인은 국화, 민들레, 연꽃과 같은 것을 발효해서 만들고 바디라인은 유기농 과일을 원료로 만든다. 또 헤어라인은 유기농 곡물을 발효한 검정콩, 깨, 팥, 율무와 같은 원물을 가지고 만든다. 현재 국내에서 발효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이 업체가 유일하다. “저희는 SK2 화장품이 나오기 3년 전에 이미 개발을 끝낸 상태였습니다. 발효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발효보다 저는 나노에 꽂혀 있었습니다.
나노 입자를 쪼갠 콜라겐이라는 것이 처음 나왔을 때였거든요. 그런데 인위적으로 입자를 쪼개다 보니까 체내에서 안 빠져 나오는 문제가 생겼어요. 아직 의학적인 결과가 밝혀질 단계는 아니지만 화장품의 경우 모든 원료의 입자가 흡수되지 못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입자를 쪼개야 하는 거죠. 그러다 발효에 꽂힌 겁니다. 어떤 원물이 가지고 있는 유익한 성분(3가지)이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10가지가 생깁니다. 상당한 메리트가 있더라고요. 입자도 작아서 흡수율도 높고요. SK2의 발효배양액이 양수라면 저희 제품은 태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박 대표는 발효성분으로 로션을 만들 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 놓았다.
ENS코리아는 바실러스 종균을 직접 배양한다. 발효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발효과정을 거쳐 멸균을 시킨 다음에 사균이 되면 피부재생에 좋은 베타카로틴으로 전환되는데 그만큼 각 원물에 따라 발효과정이 가장 중요한 공정이다. 처음에 발효화장품을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백방으로 찾았지만 발효원료를 해주는 데가 없어서 직접 발효를 시작했다는 박 대표는 “몇 년 전 유기농이라고해서 시끄러울 때 98가지 농약 검사를 한 곳도 우리 회사였다”며 국내에서 유일한 유기농인증업체임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회사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데 아시아 기업 중에서 유럽 나라의 유기농인증을 받은 곳도 우리가 최초이다”고 덧붙였다.
모든 제품에서 5개 이상의 다국어로 설명
ENS코리아는 매년 매출의 15%이상을 R&D자금으로 쓴다. 올해는 지적재산권 부분에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중소기업에서 제일 중요한 게 한 때는 디자인이라고 했지만 디자인은 기본이고, 품질은 기본 중 기본이라고 말한 박 대표는 “이제 제품의 콘셉트라든가 기술, 지적 재산권 확보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해외에 수출이 막히면 안 되기 때문에 해외 지적재산권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는 박 대표는 “중소기업은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현재 이 회사는 모든 제품에 5개국 이상의 다국어 설명이 붙어 있다. 언제 어떤 루트로 기회가 생길지 모르지만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박 대표의 철저한 경영철학이 작은 것 하나도 소홀하지 않은 것이다.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다시마 팩만 해도 이미 4년 전 개발했다가 얼마 전 내놓은 제품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론칭도 하지 않았는데 이는 항상 외국 사업파트너를 염두에 둔 박 대표의 경영마인드에서 비롯된다. “현재 저희는 쇼핑몰에서만 팔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 주게 되면 떠돌면서 가격 할인을 해 버리니까 믿음이 깨지게 되잖습니까. 외국에서는 어떤 제품이 천원이라면 곧이곧대로 천원에 팝니다. 우린 그렇지 않아요. 천 원짜리 제품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오백 원에 팔아 버리죠. 이 제품은 미국의 한 상장회사와 독점계약을 끝내고 납품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꽃잎을 넣은 화장품도 3년 전에 개발을 완료한 상태이다. 시장성을 평가할 수가 없었지만 홈쇼핑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검증도 이미 받았다. 이 제품을 눈여겨 본 중국 업체와 총판 계약도 마쳤다.
박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중소기업은 살아나기 힘들다고 하는데 자기들만의 독특하고 차별화된 무언가만 있으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ENS코리아는 선인장을 원물로 한 제품을 다시마 이후의 다크호스로 개발 해 놓은 상태이다. ‘무조건 달라야 산다’는 경영철학을 고수해오고 있는 박 대표의 야심작이다. 박 대표는 독특한 기술개발을 위해 시장조사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세워두고 있다. 그래서 국내든 해외든 전시회에 참가해도 부스만 지키다 돌아온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저도 사람이니까 어떤 제품이 좋아 보이면 순간 머리에 남을 수 있지 않느냐”며 “그렇게 되면 절대적으로 독창적인 게 나올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매년 30~50% 성장 가도 달려
ENS코리아 화미사라는 이름은 꽃(화자)과 (아름다울)미, 그리고 (넉)사를 의미한다. 꽃처럼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물과 풀과 뿌리, 그리고 흙 이런 4가지 요소를 담았다. “사실 처음에 회사명을 지을 때 ‘화장품에 미친 사람들’ 이라는 뜻으로 지었어요. 직원들에게도 ‘미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고요. 그런데 성공해야만 행복한가?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평범하게 사는 게 행복일 수도 있고 그게 꿈인 사람도 있잖아요. 저는 아니었어요. 정말로 특별한 걸 만들면서 행복해지고 싶었으니까요. 밤을 새면서 일을 할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것처럼 행복하고 싶었어요.
남의 것을 전혀 안보고 혼자 시작하게 되면 방정식도 전혀 다른 방정식이 나와서 문제 형식 자체가 달라져요. 외국 분들이 놀라는 게 저희와 같은 중소기업에서 이런 제품이 나온다는 게 말이 안 된대요. 그럴 땐 제가 그럽니다. 안정적이면서도 느낌이 다르지 않으면 저희 같은 중소기업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소비자들이 제품을 썼을 때 바로 효과가 나타나야 지속적인 구매가 일어납니다. 물론 패키지도 예뻐야 하고요. 거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나 갖지 못하는 것 그 하나가 있어야만 완성체가 되는 겁니다.”
ENS코리아는 최근 들어 매년 30~50% 연간성장을 해오고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기술로 차별화를 가져오면서 얻어진 결과이다. 다만 우리사회에서 브랜드 가치가 가장 중요한 만큼 브랜드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신 있는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제 세대에 열매를 맺으려고 하기 보다는 다음 세대에서 꽃과 열매를 피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적재산권과 변치 않는 패키지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요. 그렇게 해서 훗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들어 낼 겁니다. 10년 전에만 해도 시골에서 온 청년의 아득한 꿈이었던 이 바람이 이제는 조금씩 길이 보이는 듯해서 신이 납니다.”
4개 나라에 지사 설립하고 25개국에 수출
ENS코리아는 얼마 전 영국지사를 설립했다. 이로써 ENSUSA, ENS오스트레일리아, ENS 코리아, ENS유럽 등 4개 나라에 각각의 법인을 설립한 회사가 됐다. 화장품종주국인 이태리와 프랑스에 OEM을 진행하는 것을 알고 얼마 전에는 네덜란드에서도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런 요청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박 대표는 기대했다. 현재 ENS코리아가 만든 제품은 동남아부터 시작해 중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제품으로 국내시장을 겨냥할 필요가 있지 않냐 는 질문에 박 대표는 중소기업은 시간 가치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희같이 작은 회사들은 시간과 비용이 중요합니다. 가령 일본, 중국, 유럽, 미국, 한국을 놓고 동일하게 10시간을 영업했을 때 미국과 유럽의 시간 가치 평가가 제일 높습니다. 한국이 제일 떨어집니다. 인구, 지출, 브랜드, 경쟁력 등 모든 기회 산출 대비해서 한국에서 10시간 뛸 바에야 미국에서 10시간을 뛰는 게 훨씬 낫다는 거죠. 포화상태인 국내시장을 겨냥하기 보다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게 성공하기도 쉽습니다. 저는 세계를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고 캐나다는 전라도, 영국은 강원도, 호주는 전북, 뉴질랜드 제주도 이렇게 봅니다.
제품 하나로 6개국만 돌면 글로벌화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변국에서는 이들 나라들이 잘 사는 나라니까 쉽게 전파가 되잖습니까. 한반도의 한 모퉁이에 있으니 글로벌이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품에 대한 경쟁력만 있다면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기회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합니다. 씨를 뿌렸다고 바로 거두려 하지 말고 그 씨가 자랄 때 까지 버텨야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다른 나라와 다른 회사에 OEM해주는 것을 ‘파출부 한다’고 표현합니다. 내 새끼 좋은 옷 입히고 잘 먹이기 위해서 엄마가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OEM이 현재 국내유기농 화장품의 90% 이상을 저희 회사에서 만들어 낼 정도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게 한 겁니다.”
좌절감...그러나 이겨내
“저는 실패를 안 겪어봤습니다. 청년창업을 했을 때도 쉽게 돈을 벌었고요. 그런데 국내에 들어 와서 현실하고 동떨어지다 보니 정말로 좌절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맨 처음 좌절했던 게 26만원이 없어서였습니다. 협력업체에서 돈을 달라고 하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듣다 보니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어요. 버티면서 10년이 되니까 화장품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대충은 알겠더라고요.”
선배로서 창업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묻자 시간이 많이 필요한 만큼 인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젊은 청년이 어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을 했다면 외국과 우리의 환경은 정반대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어떤 기술이 개발되면 그걸 없애버리든지 아니면 무조건 막아 버립니다. 반면에 선진국과 같이 잘 사는 나라들은 정당한 가격을 주고 사줍니다. 회전이 되어야 한다고 바라보는 겁니다. 현재 저희 회사가 대기업하고 상표관련해서 소송을 두 개나 진행 중인데 굉장히 동양적인 부분입니다. 무조건 일류 법무법인을 세워서 중소기업을 죽이려고만 하더라고요. 분명 불합리한 건 맞는데 우리나라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요.
앞으로 중국과 같은 나라의 자본이 많이 유입된다면 판도는 분명히 바뀔 겁니다. 자본의 변화가 있게 되면 시각과 인식의 변화가 있을 테니까요. 저는 후배들에게는 희망을 버리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현실을 원망하지도 말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도 말고요. 제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20대 창업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사업을 해오면서10년 동안 배운 것 보다 창업하고 1년 동안 배운 게 훨씬 많습니다. 산전수전 겪으며 배운 게 많은 공부가 됐어요. 물론 시스템이라든가 조직적인 문화와 같은 것들은 초창기에 배우기 어렵지만 다른 부분들은 훨씬 인생을 세이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올해 매출액 100억
ENS코리아의 올해 매출액은 1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 대표를 포함한 연구원 4명과 정규직 28명. 그리고 생산직 30명이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이다. 매년 30% 이상 성장세를 달리고 있는 이 업체는 내년 150억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중국과 단일 브랜드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30억원 규모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 마디해 달라는 질문에 박 대표는 “앞으로 최선을 다해 목표를 달성한 후 자신의 마지막 꿈인 IT분야의 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화장품을 만든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박 대표의 하루일과는 쉴 시간조차 없는 강행군이다.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서류며 시제품이며 수북하게 쌓여있다. 모두 그의 손을 거쳐서 각 부서로 전달되어야 하는 일거리들이다. 이런 박 대표에게 직원들은 “왜 혼자 일만 하냐”며 건강을 챙길 것을 권하지만 박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고 했다.
“고민이 많아서 밤을 새는 게 아니라 일이 많아서 밤을 샌다면 너무나 행복한 거 아니에요?” 회사 대표가 밤을 새는 만큼 회사가 성장한다고 믿는다는 그는, 행복은 들어오는 게 아니라 그 행복 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영특한 아이였던 어린 시절 호주라는 낯선 곳으로의 유학은 그에게 엄청난 반항을 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 아들을 조용히 안아준 신학교 교수였던 어머니는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동양인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차별의 눈길을 피할 수 없어 방황했지만 학업만은 그만두지 않았기에 지금이 있지 않겠냐며 웃는 그의 얼굴에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지금 되돌아보면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하기만 하다는 박 대표는, 아이들이 크면 바깥세상에 내보내서 다양한 경험을 얻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잘 되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직접 부딪치면서 경험하고 터득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젊을 때 고생은 허투루 하는 게 없다고 하더니 사실인 모양이라며 웃는 그는, 직원들에게도 ‘여러분들이 회사에 입사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 인생에 회사가 들어간 것’이라며 각자가 자기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작은 중소기업기술이 외국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박 대표의 굳은 의지와 필살기인 기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NS코리아의 기술력이 전세계를 누비는 그날이 머지않아 보였다.
MeCONOMY Magazine Decembe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