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에 처음 문을 연 가야랜드는 김해지역의 유일한 놀이공원이었다. 하지만 시설이 확충되기는커녕 유지보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관람객들의 발길이 서서히 끊어졌고 결국 2011년, 가야랜드는 완전히 문을 닫아 버렸다. 그 뒤로 흉물로 방치되던 가야랜드는, 여가를 보낼 장소가 없어진 김해시민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지난해 4월에 재개장했다. 215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추진한 재개장 사업.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가야랜드는 어떤 모습일까?
김해 시민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 가야랜드
가야랜드는 지난 1984년, 가야개발(주)이 김해시에 가야컨트리클럽 골프장 설립을 허가받는 조건으로, 일부 부지를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발할 것을 협약해 만들어진 약 55만㎡ 규모의 놀이공원이다. 롤러코스터, 관람차, 회전목마 등 놀이공원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것들이 하나 둘 들어서며 1991년에 개장한 가야랜드. 선생님의 인솔에 따라 ‘오리 꽥꽥’을 외치며 일렬로 줄을 선 학생들. 돗자리를 펴고 오순도순 김밥을 먹는 가족들. 관람차 안에서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커플들. 매년 5월마다 가야랜드에 나타난 데자뷰였다. 하지만 양산, 창원 등 인근지역에 대단위 놀이시설이 잇따라 개장하면서 관람객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그러자 가야개발은 채산성이 낮은 가야랜드를 등한시했고, 시설에 대한 투자는커녕 노후화된 기구에 대한 유지보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김해 시민들은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관람차를 보며 ‘바이킹보다 무서운 관람차는 처음이다, 여기는 죽음의 놀이공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가야랜드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했다.
오랜 영업부진을 견디지 못한 가야랜드는 2008년부터 일부 시설을 폐쇄한데 이어 2010년에는 휴업에 들어갔다. 하나뿐인 여가시설이 없어진 김해시민들은 가야랜드의 조속한 재개장을 요구했다. 김해시의 압박과 시민들의 항의에 못이긴 가야개발은, 2011년 5월 가야씨월드와 ‘아쿠아리움 투자 및 부지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가야씨월드가 40억원을 투자해 아쿠아리움을 설치하고 유원지 전체를 운영하는 것이 계약의 기본 골자였으나 가야개발이 동년 11월 넥센, 삼한종합건설, 성우하이텍, 서원유통, 세운철강, 태웅, 쿠쿠 등 부산·경남 지역의 7개 업체로 구성된 ‘신어홀딩스’에 지분을 매각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매각대행을 맡은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가야씨월드의 사업 수행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공사 중지를 요구했기 때문.
가야씨월드 측은 이미 바다거북, 악어, 펭귄 등을 사들이고 아쿠아리움 조성 공사를 하는 등 본격적인 설비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크게 반발했다. 가야씨월드 박성해 대표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대구 우방랜드에서 아쿠아리움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테마별 아쿠아리움과 최상의 유원지를 조성할 의지를 갖고 공사를 벌여왔는데 계약 체결 이후 주인이 바뀌었다고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가야개발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가야랜드 재개장 사업은 미궁에 빠져버렸다.
낡고 버려진 가야랜드, 칼을 뽑은 김해시
△ 사진: 하우스텐보스 홈페이지
가야랜드의 휴업이 길어지자 김해시가 칼을 뽑았다. 신어홀딩스에 인수된 가야개발이 대표자 변경 신청을 했지만 단칼에 이를 반려한 것이다. 시에선 당초 가야CC 허가 조건이었던 가야유원지 조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모든 인허가 사항을 반려하는 등 행정조취를 취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가야CC에 불법시설물 점검을 나서 10여건의 불법행위를 고발해 고강도 압박공세를 펼쳤다. 이에 가야개발은 전문 용역업체를 통해 가야유원지를 재개발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하지만 김해시는 이마저도 ‘구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실행계획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한편 가야유원지 조성 이행 방향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다. 가야개발은 기존 시설을 고쳐 재활용하는 대신 130실 규모의 콘도미니엄 설치를 통해 유원지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을 제시했지만, 시에서는 전국 놀이공원 대부분이 채산성 악화로 허덕이는 와중에 20년 전 설치한 낡은 시설을 재활용하는 것은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며, 공공성을 갖춘 유원지가 될 수 있도록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국 가야개발은 김해시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가족힐링테마파크’라는 콘셉트로 출발해 낡은 놀이기구는 모두 철거하고 회전목마 등 유아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 위주로 신설했다. 이와 함께 단계별 사업계획에 따라 신어산 일대에서 캠핑할 수 있는 달빛야영장과 피자 만들기를 비롯한 각종 체험을 할 수 있는 후루루 탐험대 에코 빌리지를 신설하는 등 총 215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가칭 신어산 유원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4월 2일. 가야랜드가 다시 문을 열었다.
△ 사진: 디거랜드 USA
개장 첫날 가야랜드에는 무려 1만 명이 몰려왔다. 인제대학교 후문 앞 삼거리는 가야랜드로 향하는 차량들로 인해 극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했고, 500면의 주차장이 개장 1~2시간 만에 모두 포화됐다. 하지만 초두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개장하고 1년이 지난 가야랜드는 한산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가야랜드를 방문한 손모 씨(29세, 남)는 “모처럼 휴가를 내서 방문했는데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며 “예전에는 그래도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 있는 것들은 전부 회전목마 같은 어린이용 놀이기구뿐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가야랜드에 롤러코스터가 2개 설치돼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경사가 거의 없는 어린이용 롤러코스터였고, 다른 하나는 트랙이 다 이어지지도 않아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딸아이와 함께 방문한 최모 씨(38세, 여)는 “그나마 아이들은 즐거워하니 다행이지만 어른들 입장에선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마땅히 할 게 없다”며 “오히려 (가야랜드 내 위치한) 잔디운동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물론 일부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부산에서 온 임모 씨(41세, 남)은 “어린 아이들은 롤러코스터같은 기구를 무서워하는데, 여기는 경사도 완만하고 속도도 빠르지 않게 만들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만들었다”며 “놀이기구가 적은 것은 앞으로 늘려 가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가격이 저렴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강점이 없다는 의견을 표출했다. 명색이 ‘놀이’공원인데 놀 거리가 부족하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교통이 불편하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가야랜드 입구에 정차하는 시내버스는 상동공영1번과 2번. 그러나 이 버스는 하루 배차가 5회밖에 나지 않아 제때 이용하기 힘들고 대부분 인제대 앞에 내려 15분 내지 20분가량을 걸어야하기 때문.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셔틀버스를 운용하긴 하나 주말과 공휴일에만 운행하기 때문에 평일에는 다소 불편함이 있는 것이다.
사양산업으로 접어드는 테마파크
실패의 반복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현재 국내 테마파크 대부분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국내 최초의 워터파크인 부곡하와이가 계속된 영업부진으로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가야랜드 인근에 위치한 가야테마파크 역시 적자만 기록하는 가운데, 예산만 축내는 골칫덩이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가야랜드가 다시 적자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늘고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한 관광업계 전문가는 ‘일본의 하우스텐보스를 보고 배우라’고 한다. 개원 이후 18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던 ‘하우스텐보스’가 2010년 HIS그룹에 인수된 뒤로 매년 300만명 이상 방문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테마파크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 사진: 하우스텐보스 홈페이지
‘하우스텐보스’는 일본 속의 네덜란드라는 컨셉의 테마파크로, HIS그룹의 사와다 히데오 회장은 단지 ‘네덜란드와 똑같다’는 것만으로는 고객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버려진 건물들을 활용해 으스스한 스릴러 시티로 만들고, ‘백만송이 장미 축제’, ‘일루미네이션 축제’, ‘튤립 축제’ 등 다양한 볼거리와 축제를 유치했다.
사와다 회장은 2012년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하우스텐보스에는 여기서밖에 볼 수 없는 자연과 꽃이 있다. 차별화를 꾀하여 Only One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사와다 회장은 2011년 일본이 대지진과 원전사고로 인해 해외여행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자, 호텔의 서비스와 레스토랑의 식사 품질을 개선해 여행객당 단가를 높임으로써 증수증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지에 영어 학교를 개설하고 벤처기업을 유치하는 등 수익구조를 다각화하고 있다. 단순한 테마파크에서 벗어나 관광 비즈니스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2014년 결산기에 73억 엔(약 686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명실상부한 일본의 3대 테마파크로 자리매김했다.
핵심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컴퓨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그 속에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김병국 대구대 호텔관광학과 교수는 대구일보에 기고한 사설에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신규 관광지 조성, 관광지 내 기념관, 박물관 건립 등 하드웨어 측면의 관광개발을 지양하고, 저예산 위주의 지역 고유 스토리 개발, 체험 프로그램 개발, 관광홍보 동영상 앱 개발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 측면의 관광개발에 더욱 많은 예산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소프트웨어의 강점을 잘 살린 테마파크로 영국의 중장비기업 JCB가 만든 디거랜드(Diggerland)가 꼽힌다. 디거랜드는 공사장을 콘셉트로 한 테마파크로 이곳의 굴삭기는 흙 대신 사람을 퍼 나른다. 굴삭기 버켓에 사람을 태우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굴삭기로 보물찾기, 덤프트럭 경주 등 건설 중장비를 이용해 다양한 놀 거리를 만들었다.
디거랜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유연성’. 기본적으로 빈 땅만 있다면 어디든 설치가 가능하고, 비수기 때는 장비를 실제 건설현장에 투입시켜 부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공사장 콘셉트라는 점 덕분에 조경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공사비용도 적게 든다는 것도 호평을 받아, 2015년에는 영국의 메드웨이 비즈니스 어워즈(Medway business awards)에서 마케팅 부문을 수상했고, 2016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여행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Trip Advisor)에서 전 세계 상위 10% 내의 최상급 업체에게 수여하는 으뜸 시설상(Certificate of excellence)을 수상했다.
가야랜드는 가칭 신어산 유원지 조성 계획에 의해 2019년 말에 모든 공사가 완공될 예정이다. 하지만 관람객을 끌어당기고 수익구조를 만드는 것은 결국 소프트웨어의 힘이다. 215억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오로지 시설 공사에만 써버린다면 과거의 실패를 답습할 것이다. 가야랜드가 김해시의 랜드마크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앞선 사례와 같이 지속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