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계절 5월이 돌아왔다. 최근 연예인들의 작은 결혼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예비 부부 사이에서 작은 결혼식이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다르다. 작은 결혼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없는 상태에서 작은 결혼식을 준비하다보니 업체들의 수익구조와 맞지 않아 오히려 일반 결혼식 보다 ‘큰’ 결혼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작은 결혼식’에 대해 알아봤다.
아름다운 청 보리밭에서 동화 같은 결혼식을 올린 원빈, 이나영 커플의 결혼식이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서 회자 되고 있다. 특히 이들 결혼식이 강원도 정선의 한 보리밭을 공짜로 빌려 가까운 가족 친지만을 초대했고 총 결혼 준비 비용은 약 110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톱스타 부부 답지 않은 소박한 결혼식 비용으로 한 번 더 큰 이슈가 됐다. 원빈, 이나영 커플의 이 같은 결혼식은 예비부부들 사이에서 ‘스몰 웨딩(small wedding)’, 즉 ‘작은 결혼식’으로 알려지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1인당 결혼식 평균 비용 5,198만원
2013년 한국소비자원은 우리나라의 1인당 결혼식 평균 비용이 5,198만원이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본식을 위한 음식, 웨딩드레스, 메이크업, 꽃 장식, 폐백음식 등에 사용되는 이 어마어마한 비용은 주택마련 비용을 제외한 것이다. 호화로운 결혼식장, 값 비싼 혼수용품, 세칭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로 불리는 결혼꾸밈비용 등 고비용 결혼문화가 만연한 상황이다. 현실의 이렇다보니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쌓였다. 실제로 한국 결혼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 대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 남성은 100점 만 점의 74.8점으로 문제가 있다고 답했으며 여성은 76.5점으로
나타났다.
단 몇 시간의 결혼을 위해 그토록 많은 돈을 쓰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인식이 늘어나며 진짜 결혼식의 의미에 대한 고민도 이뤄졌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기도 한 결혼식은 무엇보다 주인공인 부부가 행복한 날이어야 하고, 그 자리에 참석한 하객들도 함께 식을 즐기고 진심으로 부부의 축복을 빌어주는 자리여야 한다. 하지만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과 형식뿐인 절차에 행복해야 할 신혼부부는 지치고, 똑같은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은 그저 밥 한끼 먹으러 가는 행사가 돼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작은 결혼식, 그게 뭐지?
작은 결혼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없는 상태에서 연예인의 결혼이나 정부의 홍보로 작은 결혼식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은 작은 결혼식이 오히려 ‘큰’ 결혼식이 되고 있다며 작은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 결혼식 관련 업체들의 수익구조는 결코 ‘작은 결혼식’이 불가능한 형태이다. 이 때문에 작은 결혼식을 하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작은 결혼식’에 대한 명확한 개념 설정을 하지 못한 예비부부들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은 결혼식이 뭐지?’라는 황당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작은 결혼식에서 ‘작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하객의 수를 줄인 규모가 작은 결혼식인지, 불필요한 허례허식을 줄인 절차가 줄어든 결혼식인지, 아니면 비용이 적게드는 결혼식인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오는 5월말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예부신부인 김진아(가명, 32세)씨는 “작은 결혼식에 대해 오히려 혼란만 더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비용은 적게 들지만 연예인 부부들처럼 야외에서 아름답게 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추면서 하객만 적게 초대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부부들도 있는데 여기에 작은 결혼식이라는 단어만 넣는다고 되겠냐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실제 결혼 준비 과정에서 드러난다. 평균 결혼식 하객 수 약 250여 명을 수용하는 일반 웨딩홀에서는 100명 정도면 작은 결혼식이라고 말한다. 또 30명 소규모 하객만 초대할 수 있는 초호화 호텔 웨딩도 스스로를 작은 결혼식이라고 말한다.
올 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최선영(가명, 27세)씨는 부부의 진정한 행복을 빌어줄 가족 친지와 정말 친한 친구들만을 초대한 작은 결혼을 꿈꿨다. 하지만 일반 웨딩홀에서는 100명 이하의 결혼식은 받지 않아 다른 장소를 찾았다. 하지만 마음에 들고 소규모 하객을 수용하는 곳은 대관료를 받거나 식대가 비싸고 추가적인 꽃 장식 등의 견적을 낸 뒤 생각만큼 그리 저렴하지 않아 작은 결혼식을 포기했다.
웨딩 업체, 식대 대신 기타비용으로 수익 창출해
국제 커플들의 작은 결혼식을 주로 맡고 있다는 반디 웨딩플래너는 “트렌드가 된 작은 결혼식에 대한 문의가 늘고 있지만 상담을 하다보면 꿈과 현실이 달라 포기하는 커플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객 수를 줄여 규모가 작은 결혼식을 원하는 경우 별도의 대관료가 드는 곳에서 식을 올려야 하며 그럴 경우 높아진 식대, 값비싼 꽃 장식 때문에 작은 결혼식 진행이 벽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그는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동화 속에 나오는 작고 예쁜 결혼을 원한다면 당연히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며 작은 결혼식에 대해 ‘동상이몽’을 꿈꾸는 부부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레스토랑, 호텔, 웨딩홀은 대관료가 싸거나 무료더라도 뷔페 비용을 통해 이윤을 남긴다. 보통 웨딩홀은 성수기 주말이면 하루에 5~6팀 이상의 결혼식을 치른다. 웨딩홀은 보통 200명 이상을 최소 인원으로 규정한다.
이는 즉, 혼주가 최소 200명의 식사 값을 지불해야 예식장에 이윤이 남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웨딩홀은 100명 미만의 작은 결혼식을 받지 않으려 한다. 일부 작은 결혼식을 허용하는 웨딩홀은 기대 이익을 채우기 위해 식대를 높힌다. 일반 예식장의 식대가 4~5만원 선이라면, 스몰웨딩 식대는 7~10만원 대에 달한다. 결국 장소만 작아졌을 뿐 같은 값을 지불하는 셈이 된 것이다.
웨딩홀을 이용하지 않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호텔, 레스토랑, 펜션, 미술관 등의 경우 값 비싼 대관료를 받거나 높은 식대를 물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의 L 호텔에서는 40명의 하객을 수용하는 스몰웨딩이 가능한 홀이 있지만 메뉴 1인당 가격이 12만원을 호가한다. 또 일반적으로 예식을 올리는데 사용되는 공간이 아닌 경우 별도의 데코레이션 비용이 발생한다. 결국 플로리스트나 웨딩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 예식장을 꾸미는데 일반 예식비용의 배가든다.
반디 웨딩플래너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관료를 따로 받지 않는 웨딩홀에서 기존 패키지에 따라 식을 올리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인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는 “연예인들이나 해외에서 하는 ‘스몰웨딩’은 자기 집 정원이나 집에서 ‘하우스 웨딩’ 형식이기 때문에 가격을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예비부부들이 자신들이 정말 원하는 결혼식이 뭔지 먼저 고민해야 하고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이 처럼 규모를 줄이고 절차를 간소화 해 허례허식을 줄이려는 애초 ‘작은 결혼식’의 의미가 퇴색되자 일부 부부들은 셀프 웨딩으로 작은 결혼식을 계획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본인이 웨딩플래너가 되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정하고 준비하다보니 한계가 있다는 게 셀프웨딩을 치룬 부부들의 이야기다. 물론 이 과정을 즐기고 의미를 두는 부부들도 있다. 하지만 스몰웨딩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셀프웨딩을 실시한 부부들은 의견을 모았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과 홍보 확대할 필요
201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작은 결혼식 수요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작은 결혼식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91.7%로 나타나 작은 결혼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최근 2년 내 직계가족 결혼을 경험한 응답자 중 실제 결혼식 참석인원은 ‘200인 이하’가 43.4%로 가장 많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국민은 우리 사회 결혼문화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실제 결혼 과정에서 간소화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작은 결혼식’에 대한 지원과 홍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 속에서 여성가족부는 ‘작은결혼정보센터(www.weddinginc.org)’ 사이트를 만들어 공공기관을 저렴한 비용으로 대관해 주는 등 국민들에게 작은 결혼을 홍보해 왔다. 특히 2012년부터는 <조선일보>와 손잡고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지만 정작 당사자인 예비부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공공기관 결혼식장 중 결혼식을 올리기 적합한 몇 몇 공간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으며, 대관료는 무료지만 그 외 결혼 꽃 장식, 단상, 음향, 식사 등은 외부 업체를 선정하고 부부가 다 짜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업체에 맡기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지난 4월1일에는 서울 총리공관에서 황교안 총리가 작은결혼식을 올린 부부, 재능 기부자, 관련 단체 등을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개최했다. 정부는 ‘작지만 의미 있는 결혼식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작은 결혼 지원 계획을 밝혔다.
웨딩플래너로 구성된 재능기부 전담팀(30명)을 운영해 지역별로 작은 결혼식 준비와 관련한 상담과 함께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며, 공공시설 예식장 정보를 현행화해 이용 가능한 일정을 사전에 알려주는 ‘사전일정예고제’를 실시한다. 또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작은 결혼식장 10개소를 랜드마크로 선정해, 공공시설 예식장이 많이 이용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작은 결혼식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은 결혼식 웹진을 발간하고, 중앙정부·지자체·민간단체 합동으로 10월 중 작은 결혼 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실제로 지난해 가을 만족스러운 작은 결혼을 실시했다는 박모씨는 작은 결혼 전문 예식장에서 50여 명의 가족 친지를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따로 하지 않고 양가 아버지가 편지를 낭독했다. 폐백도 뺐다. 대신 남는 시간 동안 직접 만든 양가 부모님께 보내는 영상을 함께 보고 참석한 사람들이 돌아가며 덕담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긴 대관시간덕에 눈치 보지 않고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 동안 결혼식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밝혔다.
결혼의 계절 5월. 진짜 의미 있는 결혼식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 본다. 무조건 ‘작은 결혼’을 하겠다가 아니라 자신이 결혼식에 두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가야 할 듯싶다.
MeCONOMY Magazine May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