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어린 나이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코트·그라운드를 누비는 스포츠 스타들. 하지만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시기는 길지 않다. 그 어느 일보다 전성기가 짧고 누구는 일을 시작할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하고 사회에 나오게 된다. 이례적으로 40대까지 운동을 하는 선수도 있지만 종목별로 한 두 명에 불과하다. 대한체육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1년에 은퇴를 하고 사회로 나오는 선수만 1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운동밖에 모르고 운동만 해온 선수들은 사회에 나온 것부터가 어려움의 시작일 수 있다. 은퇴 후 자신들이 직접 겪었던 애로사항과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방과 후 학교 선생님, 스포츠교실 등 유소년교육을 하면서 느꼈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바꾸고 싶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지난 2월25일 장충동주민센터에서 ‘한국스포츠교육 희망나눔 사회적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이들이 직면한 문제들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사회적협동조합까지 만들게 됐을까. 이들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은퇴 후를 고민해본 적 없는 선수들
강남역에서 만난 이들은 키가 2미터를 훌쩍 넘었다. 김광원 이사장을 비롯해 조합원 윤호성, 박진관, 유일한 홍일점인 임푸름 씨까지 누가 봐도 운동선수들. 그러나 경기장 밖에서 만난 이들은 선수가 아닌 한국스포츠교육 희망나눔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스포츠희망나눔)원들로, 지난 2011년 출범해 심장병어린이를 돕는 사회적 기업 한기범희망나눔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김광원 이사장은 “이름이 너무 길어서 ‘스포츠희망나눔’이라고 줄여 부르시면 편하실 꺼예요”라며 멋쩍게 인사를 건넸다.
김광원 이사장을 비롯해 조합원 윤호성, 박진관, 임푸름 씨는 모두 방과 후 학교 강사, 농구교실 운영 등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김광원 이사장은 “저희들은 선수시절부터 은퇴하고 나면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며 “스포츠라는 종목으로 가장 낮은데서 아이들과 함께 접하면서 20년 넘게 배웠던 운동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꿈과 현실은 매우 달랐다. 은퇴 직후부터 시작된 이들의 애로사항은 방향감각까지 잃게 했다.
“평생 운동을 해온 수많은 선·후배들이 있지만 앞으로 저희들의 진로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윤호성 씨는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주전 경쟁을 하며 계속 도전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은퇴 후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면서 “결국 은퇴하고 나면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나마 저희들은 프로선수 출신이라 방과 후 학교 강사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들은 정말 막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선수에서 은퇴한 자신들도 당장 뭘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오죽하겠냐는 얘기다. 실제 대한체육회의 2014년 은퇴선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해 은퇴하는 선수 숫자만 2013년 1만1천277명, 2014년 1만301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스포츠 관련 직업을 이어가는 숫자는 35%에 불과하고, 37%는 스포츠와 무관한 직업을 가지며 28%는 무직상태로 조사됐다.
김광원 이사장은 “물론 35%라는 숫자 속에는 스포츠센터 근무 등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까지 다 포함된 것이라 실제 코치나 감독 등으로 운동경력을 이어가는 사람은 1~2%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년 이상의 선수시절 노하우 담은 방과 후 학교 교육
이들은 아이들을 좋아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애초 꿈을 이뤄 방과 후 학교 선생님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거기에 맞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선수시절 배웠던 좋은 것들은 이어가면서 불필요하고 시대착오적인 것들은 과감하게 제외하기도 한다. 이들이 지금의 아이들과 같은 나이에 직접 스포츠교육을 받아본 당사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윤호성 씨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굉장히 엄하고 무서운 분위기에서 감독·코치의 조종 아래 선수들은 틀에 박힌 움직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농구훈련이 아닌 놀이와 게임의 중간에서 즐겁게 운동할 수 있도록 해외 프로그램 등도 참고하며 많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호성 씨는 “외국의 훈련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아 진짜 이런 훈련은 진짜 좋은데’ ‘프로선수들에게도 이런 프로그램은 필요한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면서 “기본 체력훈련이나 밸런스 운동 등 선수시절에 좋았던 프로그램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저만의 ‘음악드리블’ 등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재미있게 이기는 방법, 쉽게 하면서 즐기는 농구, 패스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협동·배려 등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는 것이다.
농구선수 출신들 틈에 있는 박진관 씨는 야구선수 출신이다. 그는 방과 후 학교에서의 수업을 위해 야구장비 일체를 직접 개인 사비를 털어 구입해 수업을 진행한다. 장비가 중요한 야구의 특성상 아이들이 질 좋은 장비로 제대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박진관 씨는 야구의 매력을 “어떻게 보면 야구가 개인적인 운동 같지만 실제로는 드리블이란 용어 자체가 없고, 혼자서는 연습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야구”라면서 “야구는 자기 타순이 있고 수비위치가 있어서 조금 실력이 떨어져도 언제든 내 차례는 오고 기회가 주어진다. 야구뿐 아니라 어린 시절에 스포츠는 단순히 운동이 아닌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본을 배울 수 있는 정말 좋은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래 우리 한번 해보자, 바꿔보자!” … ‘스포츠희망나눔’ 탄생
이렇게 열정과 자기만의 특성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과 후 학교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농구교실 등 생활체육까지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이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김광원 이사장은 “프로선수에서 은퇴하고 사회에 나오자마자 느꼈던 문제점들도 있었고, 10년 넘게 스포츠교육을 해오면서 부딪쳤던 부분에 대해 ‘바꿀 수 없을까’하는 고민을 계속해오고 있는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는 스포츠산업 창업교육을 받게 됐다”고 밝히면서 “교육을 받으면서 더 이상 사회 탓을 하지 말고 ‘그래 우리가
한번 해보자, 바꿔보자’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전했다.
이들이 큰 틀에서 문제인식을 한 것은 ▲매년 1만명씩 쏟아져 나오는 은퇴선수들에 대한 사회적 환경과 인프라 부족 ▲잠재은퇴선수 진로교육 부족 ▲위탁업체 위주로 바뀌어 가고 있는 방과 후 학교 문제 ▲엘리트교육을 받은 프로선수들의 사회 환원이라고 한다. 김광원 이사장은 “솔직히 저희 프로선수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프로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사회적 환경 속에서 많은 지원을 받는다”며 “하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은퇴를 하게 되면 그동안 받고, 배웠던 것들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프로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코스를 밟아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보니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으로 대다수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떠나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들이 운동 한가지에만 몰두해오면서 사실상 은퇴 이후의 삶을 생각해 볼 시간도 갖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호성 씨는 “운동선수들이 한번 슬럼프에 빠지면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운동밖에 몰라서’ 라는 지적도 있다”면서 “그럼에도 대부분의 선수들은 은퇴 후의 삶에 대해서 큰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내일이라도 은퇴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운동선수인데도 이 부분을 망각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얘기다.
실제 해외 유소년프로그램들은 운동선수라고 해도 필수공부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오히려 운동을 아무리 잘해도, 학교 과정에서 유급이 되면 프로진출을 할 수도 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실제 해외 프로 1군에 뛰고 있는 선수들이 인근 대학교 경영학·법학·사회학 등을 전공으로 학교에 다니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은퇴 후에 지도자뿐만 아니라 스포츠행정, 스카우터, 매니지먼트 등 다양한 관련 분야로 진출하게 된다. 김광원 이사장은 “우리 조합은 전문적인 교육까지는 못하더라도, 먼저 선수들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진로체험교육 등을 해보려고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방과 후 학교에서 만나는 프로선수들의 전문적인 프로그램
‘스포츠희망나눔’의 주 사업은 ‘희망나눔 스포츠교실’과 ‘희망나눔 방과 후 학교 스포츠교실 위탁사업’이다. 전문적인 엘리트교육을 받은 은퇴선수들이 직접 발달장애인, 취약계층 초중고생들에게 스포츠교실을 운영해 기본기 훈련·농구경기·자선경기 관람 등을 진행한다. 방과 후 학교 체육교실에서는 농구·야구·축구·배드민턴 등 각 종목별로 교실을 운영한다. 이들이 방과 후 학교 위탁교육에 나서는 이유는 최근 각종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문제점들과 무관하지 않다. 위탁업체 위주로 흘러가는 방과 후 학교 시장과 올해부터 시작된 ‘최저가낙찰제’가 맞물렸다.
실제 강의를 하는 선생님들에게 고수수료를 떼어가는 ‘위탁업체 횡포’라는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문제점을 양산하는 모양새다. 현장에서는 교육의 질 악화는 불가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초금액이 아닌 최저가낙찰가격에서 수수료를 가져가는 바람에 강사들은 예년에 비해 30~40%의 높은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광원 이사장은 “유소년들이 스포츠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합리적인 비용으로 접할 수 있는 방과 후 학교조차 위탁업체들의 횡포로 진입장벽이 높고, 30~40%의 높은 수수료를 통해 부당함을 느끼게 됐다”면서 “결국 피해는 전문적이고 탄탄한 프로그램과 우수강사진을 만날 수 없는 일반시민들과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미 개별적으로 방과 후 학교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에도 업체가 들어오면서 수수료만 떼어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발당장애인·취약계층 아이들에게 희망을
방과 후 학교 위탁사업 등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발달장애인·취약계층 아이들에게 스포츠를 통한 희망을 전한다. 김광원 이사장은 “저소득층 학생과 새로운 소외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 부모 가정 등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스포츠는 정서적·육체적 접촉이 많고, 팀의 화합단결 등으로 서로 친밀감과 유대감 형성에 도움이 된다. 계층 간 갈등을 해소하고 완화시킬 가장 접합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전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한 은퇴선수들과 어린 아이들, 일반 시민들에게 저희가 다리를 놔주고 싶어요. 은퇴하기 전까지 저희들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 등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환원할 통로조차 찾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저희가 이름만 대면 아는 선수도 아니고 아직 많이 준비가 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작은 힘이 모여 큰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응원해 주시고 함께 해 주셨으면 합니다.”
실제 2012년 기준으로 10세에서 14세까지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전국적으로 9만3천여 명, 서울·경기 수도권만 2만3천여 명에 이른다. 서울시 한 부모 가정도 총 가구 대비 10%에 이르는 상황이다. 지금껏 받아온 사회적 혜택을 자신들의 재능인 스포츠를 통해 환원하고 싶다는 이들의 순수한 바람이 저소득층 및 소외계층 자녀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계층 간 갈등을 해소하는 윤활유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MeCONOMY Magazine April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