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테크 기업은 애플도 아니고, 구글, MS, 메타도 아니고 트위터는 더더욱 아니다. 챗 GPT 열풍에 힘입어 AI의 머신러닝을 구동하는 그래픽 처리장치(GPU)를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엔비디아다. 엔비디아의 GPU 수요폭증에 따라 GPU에 쓰이는 HBM(고대역폭메모리)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 전자의 수혜도 크게 기대되고 있다.
처음 챗GPT는 OpenAI와 MS, 구글에서 발화되자마자 바로 메타, 아마존, 애플 등으로 번지고 이어서 엔비디아, SK하이닉스, 삼성전자, KT, LG, 수많은 벤체테크기업들, 소프트웨어 개발사, 콘텐츠 기업으로 옮겨 붙고 있다.
첨단기술의 치명적 약점은 처음에 시장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AI기술은 오래 전부터 기술이 착실히 발전해왔으나 시장을 만들어내지 못해 산업 성장이 지체돼왔다. 알파고의 충격이 있은 지 오래됐는데, 충격 이후 시장에는 변화를 주지 못했다. 마침내 이번에 챗GPT가 대중의 수요와 접합점을 발견해낸 것이다. 현재 챗GPT에 대한 미 국 내의 투자가 집중되고 있고, 한국 테크기업들도 빠르게 가세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 AI산업의 시장화에 힘을 실어줘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제 힘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벤처AI기업들은 구매자들을 찾지 못하면 일어서기가 어렵다. 엔비디아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 시장에서 국내 AI테크기업들의 운신 폭은 좁다. 이들에 대해 정부가 마중물을 부어주는 당연하고 구매해주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치 방산 기업과 우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조달 예산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AI산업은 지금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막 공중으로 날아오 르기 직전인 ‘도약 단계(take-off)’임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 놓치면 정말 쫓아가기 어려울지 모른다. 유럽이 몇 번 미국 기업들의 첨단기술 시장화를 바라만 보다가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이 세계 첨단기술 제조의 중심지가 된 것은 미국의 첨단기술 흐름을 따 라잡았기 때문임을 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의 보조금 정책처럼 첨단기술 산업을 정해놓고 해당 산업의 기업들에 대해 무조건 지원하는 방식은 우리나라 에겐 가당치 않다. 중국은 전기차와 배터리, 반도체 산업 등에 대해 무한정으로 보조금을 풀어 놓은 결과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인 예산 집행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그럴 여건이 안 되므로 될성부른 기업들에게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보조금 지원과 조달 구매 방식을 활 용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첨단기업에 대해서는 중소기업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기업이라고 무조건 배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나, 중소기업 을 우선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진정한 첨단기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고 대기업은 스스로 자금력이 있으므로 자력 으로 해낼 수 있다.
사실 대기업들이 내세우는 첨단기술 중에는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는 제품은 드물다. SK하 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HBM은 분명 첨단기술에 속하는 것이지만 엔비디아가 열어가는 시장에 편승하는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엔비디아아 일으키는 AI 바람이 세계 테크 산업의 지형을 바꾸면서 수많은 테크 기업들이 사라지고 흥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 흐름을 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 싸움에 진입해 있다.
첨단기술 지원, 분명한 콘셉트가 중요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다 HBM 개발에서 한 발 앞선 것은 삼성전자보다 제품군이 적고 오직 메모리에 집중한 까닭이었을 것이다. 초점을 모으면 남들이 보지 못한 것들 이 보인다. 대기업들은 기존 제품이 잘 팔리고 있으므로 기존 제품을 갈아치우는 첨단기술을 개발한다고 해도 그것을 시장에 내놓는 데는 머뭇거리기 쉽다.
아마도 삼성전 자도 HBM기술은 가지고 있었을 테지만 내부 생산 포트 폴리오에서 밀렸을 수 있다.
대기업에게 납품만 하는 기업들은 시장 혁신을 선도하는 첨단제품을 내놓기가 대기업보다 더 어렵다. 대기업의 요구에 맞춰서 기존 제품과 부품을 생산하기도 바쁘고, 기 존 시장을 교란할 수 있는 첨단기술 제품을 내놓는 것은 더욱 조심스럽다. 시장 혁신적인 첨단기술에서 가장 몸이 가벼운 곳은 역시 벤처기업들이다. 이들은 시장도 없는 황 무지에서 상당기간 고군분투해야만 한다. 이런 벤처기술 기업들은 한국에서 자라나기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 다.
OpenAI사는 일론 머스크로부터 초기 창업 자금을 받았고 나중에는 MS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수혈했다. 한국은 아직 이런 ‘착한’ 대기업들이 적은데다 요즘 인식 달라진 듯한데, 정부의 지원도 시원하지 않고 세련되지도 않은 것 같다. 이번 AI산업의 도약 과정을 보면서,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이 우리 실정에 맞게 과감하고 비전을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업그레이드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