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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는 동안 시도해 볼만한 일상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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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숭고한 행위다. 먼 훗날 후회하지 않는 삶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행복을 위해 가진 돈을 사려 깊고 지혜롭게 쓰는 일이다. 그렇다면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돈을 많이 쓰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하는 경제 행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소한 일상에서도 보람을 찾으며 유쾌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경제 이야기를 발굴해서 매주 1편씩 소개하고자 한다.

 

 

【제1편】 산야초를 심는 남자

 

10년 전 쯤의 초가을 어느 날, 수도권 전철 1호선 안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오후 5시쯤, 전철이 충남 아산 역에 정차했을 때, 작은 배낭을 멘 장년의 남자가 전동차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온화한 느낌을 주는 은퇴 후에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머리를 절반 쯤 차지하고 있었으며, 등산복인지 일상복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재킷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내 옆의 빈자리를 발견한 그가 다가와 내 몸과 닿지 않게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자연산 더덕향이 솔솔 내 코로 흘러 들어왔다. 오래 전, 아는 형님을 따라 경기도의 깊은 산 속으로 더덕을 캐러 따라간 적이 있었던 나는 한 뿌리도 캐지 못하고 헛걸음을 쳤지만, 다행히 일행 중 한 분이 자연산 더덕을 여러 뿌리 캐서 그 은은한 향만큼은 실컷 맡아 본 적이 있었다. 그때가 생각나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산 더덕 향이 좋네요. 선생님이 캐신 건가요?”

그는 “그렇다”고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다가 더덕이 든 자기의 배낭을 열어 보이며 말했다.

“3년 전 늦가을에 산에 뿌렸던 더덕 씨가 이렇게 큰 겁니다. 네 뿌리만 캐 왔어요.”

“그럼, 선생님이 산에다 씨를 뿌려 직접 키운 것이군요.”

“그렇지요. 내 산은 아니지만.....내가 직접 뿌려 키운 것이라오.”

“예? 선생님 산도 아닌데 거기에 더덕을 키우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산 주인이 나타나 뭐라고 하면 낭패 아닌가요?”

 

그의 배낭에는 더덕과 함께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야초 잎과 호미 한 자루가 들어있었다.

“낭패는 뭐, 산 주인이 자기 산에서 나는 것이니 자기 것이라고 하면 그냥 드리면 되는 거지요. 내가 더덕 씨를 산에다 뿌리는 것은 더덕을 키워 내가 꼭 먹어야 되겠다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 다른 이유가 있나요? 왜 더덕 씨를 남의 산에다가 뿌리시나요?”

내가 그렇게 묻자 잠시 우물쭈물하던 그가 말했다.

“오래 전에 TV와 유튜브를 보다가 문득 많은 사람들이 산에 다니며 온갖 약초와 산야초를 무분별하게 보이는 대로 채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지요. 걱정이 되더군요. 저러다가 우리나라 산에 남아나는 게 하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등산을 다닐 바에는 산에 가서 산야초가 자랄 만한 곳을 찾아, 씨를 뿌리고 어린 묘목을 심어 주기로 한 거지요, 물론 호수에 종지 물을 붓는 격이지만.”

“아, 그러셨군요. 대단하시네요.”

 

나는 그에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자기 산이든 아니든 산야초와 나무, 임산물을 찾아가서 캐고 뜯으려고만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반면, 그는 배낭에다 산야초와 산나물, 뿌리 약초 등의 씨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런 산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곳을 골라, 씨를 뿌리고 가꿔서 산을 산답게 만들어 가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산이 보살펴줘서 고맙다고 선물로 주는 것이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얻어오곤 했던 거였다.

 

약초 심어서 건강하다고?

 

공무원 생활을 하다 정년퇴직을 했다는 그는, 아들 내외가 사는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며느리와 집에 같이 있기도 불편하고, 밖으로 나와 노인정에 가자니 낯설고 나이도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면서, 그러다보니 자연히 배낭을 메고 산야초를 심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안양역에서 전철을 타고 아산 역까지 내려온다고 했왔다. 그런 다음에 아산 역에서부터 걸어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의 야산으로 들어가 미리 준비해 온 산야초와 산나물 씨를 뿌리거나, 어린 묘목도 사다가 심었다는 거였다.

 

“선생님은 원래 산촌 출신이신가요? 우리 같은 사람은 산 약초 이름을 몰라서 선생님처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것 같은데...”

“뭐, 그렇죠. 예전에는 농촌이 곧 산촌이었으니까, 산촌 출신이라면 산촌인 농촌출신이지요. 그렇지만 약초 이름을 몇 가지 밖에 몰랐어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 저절로 깨우치게 되더라고요. 아, 그게 그거였구나, 그래서 유튜브나 인터넷으로 독학하다시피 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다 안다는 건 아닙니다. 웬만한 걸 알만큼 안다는 뜻이지요.”

“선생님은 그럼 산삼 씨도 뿌리셨나요?”

“하하하,” 하고 그가 웃다가 “그렇지요. 조금 뿌려 놓긴 했는데...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네요.”

그는 지금까지 3년여 동안 뿌렸거나 심은 산야초와 산나물, 더덕 등 뿌리식물은 20여 가지가 될 거라고 했다. 약용으로 쓰인다는 나무도 몇 종류를 심었다.

“엉뚱한 사람이 다 캐가는 거 아닙니까?”

“뭐, 그렇다면 어쩌겠어요. 내 산도 아닌데. 다시 심으면 되겠지요. 그런데 솔직히 그런 사람들이 괘심하긴 해요. 뭐 그게 몸에 좋다고 보물이나 되는 듯이 캐가고 뜯어가 산을 황폐하게 만드니까요. 바다 고기를 마구잡이로 잡아대면 바다에 뭐 남아나는 게 있겠어요? 좀 적당히 잡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산이나 바다나 똑같아요. 눈에 보이는 족족 다 캐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정말 몸이 아파서 필요한 약초라면 캐어 먹어야죠. 그 빈자리를 제가 채워주는 거니까. 저는 그런 거 먹지 않아도 건강해요. 이렇게 매일 산에 다니면서 식물에게 사랑과 선의(善意)를 베풀어주고 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집니다. 약초를 먹어서 건강한 게 아니라 저는 약초를 심어서 건강해 진다고 믿고 있어요.”

 

잊을 수 없는 인격과의 만남

 

그와 이야기하는 사이에 전동차는 안양역에 도착했다. 그는 내려야 한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전동차 출입문으로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오래 전에 읽었던 장 지이노라는 작가가 쓴 『나무를 심는 사람』이란 소설을 떠올렸다. 프랑스 프로방스 고산지대에서 양을 치던 한 중년 남자가 양떼를 돌보고 난 시간에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황무지나 다름없던 인근 산에 도토리를 심었고, 수십 년이 지난 뒤 보니, 그 지역은 계곡물이 흐르고 동식물의 낙원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소설 앞머리에 작가는 이렇게 썼다.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산에 사는 산나물과 산야초, 산약초가 남획되어 가는 것을 보고 가장 중요한 일이 산이 황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도 나무를 심는 한국의 양치기였다. 자신의 작은 힘으로나마 산이 천천히 변해가는 것을 보고 행복해 하는 그로부터 여러분은 어떤 격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이어 2편에서 www.m-economynews.com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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