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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발레오전장 판결, 산별노조 근간 ‘흔들’

대법, “지회 의사결정으로 산별노조 탈퇴 가능하다”


지난 2월19일 산업별 노동조합의 하부조직이 독자적인 조직형태 변경 결의를 통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부에 수많은 지회를 두고 활동할 수밖에 없는 산별노조 특성상 이들에게 각자의 독립성을 인정해 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이상 산별노조는 지위가 불분명해 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업단위노조보다 강력한 공동교섭·공동행동을 조직할 수 있다는 산별노조의 장점이 무색해지고, 존재이유가 무색해진 것이다. 미처 성년을 맞지 못하고 기로에 선 산별노조에 대해 짚어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지회 의사결정으로 산별노조 탈퇴 가능하다”


지난 2월19일 산업별 노동조합의 하부 조직이 독자적인 조직형태 변경 결의를 통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전원합의체는 이날 발레오만도지회의 조직형태 변경이 무효라는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노동조합법 제16조 제1항에 의하면 조직형태를 변환하기 위해서 ‘총회 의결’이 필요하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총회는 ‘적법·독립한 노조의 총회’를 의미한다. 이는 산별노조의 지회를 독립노조로 인정할 수 있는지와 연결된다. 만약 지회가 구성단위에 불과해 독립성이 없다면 조직형태 변환을 의결할 권한도 없고, 따라서 유효하지 않은 ‘총회’에서의 조직변경 의결은 무효가 된다. 하지만 산하지회를 별도 노조로 볼 수 있다면, 이들도 자체 ‘총회’로 산별노조를 집단 탈퇴해 조직변경을 할 수 있게 된다.


기업별 노동조합인 발레오만도노동조합은 지난 2001년 2월 전국금속노동조합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이하 ‘발레오만도지회’라 한다)로 조직형태를 변경하고 전국금속노동조합에 편입됐다. 하지만 2010년 노사분규가 심화되면서 사측의 직장폐쇄까지 발발했다. 그 과정에서 임시총회가 열리고 금속노조 탈퇴와 기업노조 전환 결의가 이뤄졌다.


발레오만도지회장 등은 “2010년 직장폐쇄 중이던 발레오만도 현장에서 임의조직에 의해 금속노조 조합원의 참가가 봉쇄된 상태에서 총회를 소집해 지회의 조직형태를 기업노조로 변경했다”며 “조직형태변경 결의는 무효”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발레오만도지회는 독자적인 단체교섭·단체협약체결 능력이 있는 독립된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없어 조직형태변경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산별노조 지부가 기업별 노조로 조직형태 변경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산별노조 하부조직은 산별노조 내부의 조직관리를 위한 기구나 그 구성요소가 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원칙적으로는 부정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근로자단체 또는 노동조합을 조직·해산할 것인지, 노동조합의 어떠한 조직형태를 갖출 것인지, 그리고 그 조직형태를 유지 또는 변경할 것인지 등의 선택은 단결권의 주체인 근로자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에 맡겨져 있다”고 전제한 뒤 “산업별 노동조합의 지회 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독립성이나 독자성을 일률적으로 부정하고 지회 등의 지위를 단지 산업별 노동조합의 기구 내지 구성요소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산업별 노동조합의 지회 등이라도 실질적으로 하나의 기업 소속 근로자를 조직대상으로 구성돼 기업별 노동조합에 준하는 실질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조합원들의 의사 결정을 통해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고 예외의 경우를 제시했다.


최종적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의 ‘지회는 독자적인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체결 능력이 있는 독립한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없어 조직형태 변경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판단에 법리오해와 심리미진이 있다고 봤다. 반면, 5명의 대법관은 “발레오만도지회는 노동조합의 실질이 있는 단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견을 따르더라도 독자적인 규약과 의사결정·집행기관을 갖추고 독립한 단체로 활동한 경우에 해당하지도 않아 이 사건 각 결의가 무효라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산별노조란?


산별노조는 일부 직종·직업을 대상으로 한 노조(공무원노조, 교원노조)와 달리,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결성한 노조를 말한다. 쉽게 민주노총 금속노조(자동차·철강 등 금속 관련 노동자 전부 가입 가능), 한국노총 금융산업노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하나의 사업장 단위로 설립되는 기업별 노조(현대자동차노조, 발레오전장노조)와는 구별된다. 쉽게 현대자동차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의 형태로 소속돼 있다.


산별노조는 교섭권과 파업권을 단일화하고 재정과 인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킨다. 특히 정규직·비정규직, 사업장이 크든 작든 관계없이 동일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가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심각한 문제로 지적받는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에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기업별로는 노조 조직화가 어려운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고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노동조합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가 산별노조라는 형태에 있다. 사실 우리나라 산별노조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노동관계법 개정으로 기업별 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병원노련이 1998년 2월 보건의료노조로 전환한 데 이어 금융·언론노조(2000년), 금속·택시노조(2001년) 등이 연맹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했다.


짧은 역사만큼 성과보단 과제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아직 해당 산업 노조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있으며,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에 큰 성과가 없다. 기업별 노조체계에 익숙한 상황에 산별노조에 맞는 운영방식도 형성되지 못했다. 무늬만 산별노조라는 지적이 따라다닌다.


발레오전장 사건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이하 ‘발레오’)는 프랑스 Valeo사가 1999년 만도기계 경주사업본부를 인수해 설립한 자동차 부품 전문회사다. 2009년에는 발레오공조코리아가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등 노사관계에 순탄치 않은 길을 걷는다. 사측이 경비직 조합원 5명을 현장으로 돌리고 그 자리에 용역회사 직원을 투입하려 하자 전국금속노동조합 발레오만도지회는 단체협약위반·아웃소싱 반대를 이유로 쟁의행위(10시간 근무 70% 생산, 품질강화운동)을 벌이고, 이에 사측은 2010년 2월16일 최후의 수단인 직장폐쇄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프랑스인 사장을 두던 사측은 2009년 첫 한국인 사장으로 강기봉 사장을 내세우며 직장폐쇄를 하는 등 노조압박에 나서며 공세적 대응으로 돌아선다. 이에 노조도 “사측의 조치는 불법 직장폐쇄”라며 무기한 파업을 강행해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례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까지 파업에 대해 언급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 갈등은 농약살포·폭행, 조합 집행부 구속 등 여러 사건을 발생시키며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후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의 직장폐쇄의 위법판단으로 98일 만에 직장폐쇄는 풀렸지만, 노조 집행부 등 현장 미복귀 사원 108명이 대기 발령되는 등 갈등은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이런 장기적 갈등 상황에 노조 내부에 큰 변화가 생긴다. 기존 노조에 반발한 다른 조합원들이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 모임’을 만들어, “금속노조지회는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발레오전장노동조합(기업단위노조)으로 조직형태를 변환”할 것
을 표결절차에 부친 것이다.


이들은 금속노조지회 임원들과 금속노조 본부 승인 없이 임시 총회를 개최해 조합원 95% 찬성으로 금속노조지회에서 발레오전장노동조합(이하 ‘전장노조’)으로 조직변경을 선언한다. 당시 의외로 높은 찬성률에는 의문부호가 붙었다. 장기적으로 치달은 투쟁과 사측의 직장폐쇄, 노노 갈등 등 여러 분석이 나왔다. 그 중에는 외부세력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다.




울고법으로 되돌아간 판결, 향후 법적쟁점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공은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갔다. 1, 2심은 산별노조 하부조직은 독자적 단체교섭·단체협약체결 능력이 있어 독립된 노동조합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만 조직형태 변경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서 ‘금속노조 발레오전장지회’는 독자적인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체결 능력을 갖춘 독립된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고 조직변경 결의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산별노조지부’가 ‘기업별 노조’로 조직형태 변경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산별노조 하부조직은 산별노조 내부의 조직 관리를 위한 기구나 그 구성요소가 되는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부정했으나 예외를 뒀다.


첫째 산별노조 하부조직이 독자적인 규약·집행기관을 가지고 독립한 단체로 활동해, 법인 아닌 사단이 근로자단체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경우, 둘째 독자적으로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능력까지 보유한 기업별노동조합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경우를 들었다. 대법원은 이 두 가지 가운데 첫째의 경우 바로 발레오만도지회가 법인 아닌 사단의 실질을 갖추고 있어 독립성이 있었는지 등에 관한 심리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 했다.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발레오만도지회가 독립한 비법인 사단으로서 실질을 갖추었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판결이 어떻게 나든 ‘산별노조’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하부에 수많은 지회를 두고 활동할 수밖에 없는 산별노조 특성상 이들에게 각자의 독립성을 인정해 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이상 산별노조는 지위가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기업단위노조보다 강력한 공동교섭·공동행동을 조직할 수 있다는 산별노조의 장점과 존재이유가 무색해지면서 미처 성년을 맞이하지도 못한 채 기로에 서게 됐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16


뒷이야기 -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노조파괴 전문 ‘창조컨설팅’의 그림자


2012년 국정감사에서 유성기업·상신브레이크·발레오전장 등의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세상에 드러났다. 항간에 떠돌던 풍문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당시 은수미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2년 10월8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노조파괴 컨설팅의 실체 그리고 그 효과-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프로그램을 중심으로’라는 정책자료집을 제작하며 ‘창조컨설팅 문서’를 폭로했다.


자료집을 통해 은수미 의원은 비슷한 시기 일어났던 유성기업 파업, 상신브레이크 파업, 발레오전장 파업 등과 관련해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프로그램 내용’을 공개하면서 개입 정황을 폭로했다. 당시 은수미 의원은 “매우 탈법적이고 위법한 부당노동행위가 상품이 되어 판매되고 있다”면서 “노조파괴용 용역폭력과 노조파괴컨설팅이 융합돼 거대한 노조파괴산업이 형성되고 이러한 불법적인 행위가 돈으로 사고 팔리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발레오의 직장폐쇄와 관련해서는 대구지방노동청 포항지청에서 작성한 문서가 창조컨설팅에서 만든 문서와 작성자명만 다를 뿐 90% 이상 같은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고용노동부는 그해 10월19일 유성·상신·발레오 등에 대해 노조활동에 지배·개입하도록 하는 등 부당노동행위 지도·상담을 행하고,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대표 심○○ 및 전무 김○○에 대해 공인노무사 ‘등록취소’,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경우 노무법인 ‘설립인가 취소’라는 ‘공인노무사법’을 위반한 징계유형 중에서 가장 무거운 조치를 내렸다.


2014년 전장노조를 전신으로 하는 ‘발레오경주노조’ 노조원들이 다시 발레오만도지회로 돌아왔다. 노조간부와 사측이 협상한 통상임금 대폭 축소에 반발한 노조원들 다수가 회사에 재협상을 요구했고, 107명이 복귀했다. 남아있던 발레오만도지회 조합원들은 돌아온 조합원들을 규합해 여전히 투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