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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상을 바꾸는 99.9%의 힘 '정치의 무기(武器)는 말이다'

 

서로 다른 구성원들의 갈등을 설득과 동의를 통해 조정해야 하는 민주주의는 정치가들의 말에 의해 작동된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말은 품격과 논리, 그리고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저속하고 비논리적이며 감정에 치우치면, 상처가 증오가 되고 적대감으로 바뀐다.

 

상대진영을 공격하고 깎아내리기 위해서 천한 말을 사용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요즘 정치인들의 언어로 인해 사회가 분열하고 있다.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감동적인 연설을 복기(復記)해 봄으로써 우리 국민을 감동시키고 사회를 단결시킬 수 있는 정치적 언어를 찾아보고자 한다.

 

민주주의를 완성한 아테네의 정치지도자 페리클레스

 

기원전 431년, 지금으로부터 2453년 전.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전사한 젊은 아테네 청년들을 포함한 전몰장병을 추도하는 장례식을 열었다.

 

관례에 따라 장례식에서는 마지막 순서로 아테네를 대표하는 시민의 연설을 들을 차례였다. 그때 투구를 쓴 긴 얼굴의 페리클레스가 연단을 향해 오르자 운집한 시민들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다른 연설 때 같으면 그의 이름을 연호했을 터였지만, 오늘은 전몰자 추도 장례식이다.

 

그는 이 전쟁의 아테네 시민군 총사령관이자 아테네의 첫 번째 시민, 즉 민회(民會)의 지도자로서 추도사를 하게 된다. 시민들은 그가 긴 얼굴을 감추기 위해 투구를 쓰고 다닌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의 뛰어난 연설 솜씨에 의해 오히려 그의 투구는 자신들에게 보여주는 그의 시그니처였다.

 

페리클레스, 그는 기원전 495년 아테네 북쪽 콜라르고스 데모스의 귀족 가문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크산티포스는 뮈칼레의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이었고 어머니인 아가리스테스는 시퀴온의 참주(僭主,tyrant는 본래의 황통, 왕통과 같은 혈통에 관계없이 실력에 따라 군주의 자리를 찬탈하고, 신분을 뛰어 넘어 군주가 되는 사람을 말함)인 클레이스테네스의 증손녀다.

 

그처럼 친가와 외가로부터 물려받은 명성과 재산은 그가 정치 활동을 하는 기반이 됐다.

 

소년시절부터 독파한 수많은 고전으로부터 자신의 논리를 마련할 토대를 구축한 그는 소크라테스, 프로타고라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엘레아학파인 제논의 “신의 가르침이 곧 이성(理性,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라는 주장에 감동하여 ‘이성의 정치’를 평생 신념으로 삼 았다.

 

가난한 다수의 편에 섰던 진짜 귀족

 

집안이 좋았지만 그의 일상생활은 매우 검소했다. 호화로운 마차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걸어 다녔다. 다른 사람의 저녁 초대에 응하지 않았으며 술도 삼갔다. 친구들과 격의 없는 어울림마저도 지도자의 위엄을 잃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서민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 그는 민중(民衆)과 친밀한 건 아니었다. 민중은 곧잘 싫증을 내기 때문에 가끔씩 그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을 당시 아테네는 그리스에서 패권을 확립하고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르고 있어 과감한 변혁으로 민주주의의 제도를 갖추고 민중을 결속시켜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의 정치는 민중 주도의 민주주의라야만 한다는 확신아래 아테네 민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위대한 지도자라는 호칭을 받고 있었다. 이처럼 민주정치가로서의 신념과 자질을 겸비한데다 그의 처신은 신중하고 사려 깊었다. 그래서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저자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부자이면서도 가난한 다수의 편에 서서 활동했고, 부자들과 대립함으로써 귀족 출신인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으며 전제적 통치권을 노린다는 반대파의 의심도 물리치고 귀족의 지지를 받았던 키몬과도 맞설 수 있는 강한 세력을 확보했다”

 

연단에 올라선 그가 헛기침을 몇 번 하면서 묵언(默言)상태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자기에게 집중된 시민들의 시선에 초점을 맞춰가면서 방망이 치는 심장의 고동을 진정시켰다. 그런 다음 드디어 식장의 침묵을 깨고 낮으면서도 자신 있는 목소리로 그의 말을 기다리는 민중을 향해 대화하듯 연설을 시작했다. 이 연설이 그 유명한 페리클레스의 전몰장병 추도사가 됐다.

 

연설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앞서 이 연단에 섰던 사람들 대부분은, 장례 행사의 마지막을 추도 연설로 마무리하도록 법을 만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곤 했습니다. 연설을 통해 전몰자들을 명예롭게 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하는 것을 가치 있는 일로 여겼습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전몰자들은 자신들이 칭송받을 만한 이유를 이미 행동을 통해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명예는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듯, 우리 도시국가가 마련한 장례 행사처럼 행동으로 칭송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 이상 말로 표현할 것까지 있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행동으로 보여 준 용기를, 우리가 얼마나 큰 믿음을 갖고 보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어느 한 개인의 연설에 맡겨져 그 사람의 서툴거나 뛰어난 연설로 평가받게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연설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는 한 그럴 수밖에 없지요. 죽은 사람과 친했거나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연설이 말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나 죽은 사람에 관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에 비해 뭔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죽은 사람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질투심에서 연설이 과장됐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남들에 대한 찬사란,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선까지만 용납되고, 그 이상은 시기와 불신을 낳기 때문이지요. 그렇기는 해도 옛사람들이 이런 관습을 좋은 법으로 인정한 이상, 그 법에 따라 여러분의 생각과 희망을 표현하도록 노력하는 일은 저의 의무일 겁니다.

 

저는 이 도시국가를 세운 우리 선조의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런 기회에 그들을 생각하며 경의를 표하는 것이 올바르고 또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땅을 차지해 살게 된 이후 그들은 용기를 발휘해 나라를 잃지 않고 지켜 냈고 그 결과 자유로운 도시국가를 후대에 물려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옛 선조들이 이런 칭송을 받을 만했다면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더더욱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것에 자신들의 분투와 노력을 덧붙여,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대단한 통치 체제를 물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 오늘 여기 모인 우리의 나이든 시민들은 우리의 통치 체제를 가꾸고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용기를 보여 주었고, 전시에건 평시에건 우리의 도시국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남을 모방하기 보다는 남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저는 여러분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로 이 연설을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선조들이 전쟁에서 어떻게 싸웠고, 이민족 내지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침공에 맞서 어떻게 싸웠는지 되풀이해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어떠한 정신으로 우리가 직면한 역경을 헤쳐 왔는지, 그리고 우리를 위대하게 만든 우리의 정체(政體, Politeia, form of government)와 삶의 양식(way of life)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그런 뒤에 전몰자들을 기리는 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연단에서 우리의 정체와 삶의 양식이 어떤 것인지를 언급하는 일은 이 장례식에 제격일 뿐만 아니라, 아테네 시민이든 외국인이든 여기 모인 모든 청중에게 유익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체는 이웃 나라들의 제도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남을 모방하기보다 남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는 민주주의라고 불립니다.

 

권력이 소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 시민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분쟁을 수습해야 하는 문제가 있을 때는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합니다. 누군가를 공적 책임을 갖는 자리에 앉히고자 할 때 우리가 고려하는 것은, 그가 속한 계급이나 그가 가진 특권이 아니라 그가 보여 준 실질적 능력입니다.

 

이 나라에 기여 하는 한, 그 누구도 빈곤하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무시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정치 생활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것만큼 일상생활 역시 그러합니다. 이웃이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즐긴다면 그것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해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 감정을 상하게 할 험악한 얼굴로 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생활에서는 자유롭고 관용을 베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적 업무에서는 법을 준수합니다. 법은 깊이 존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권위 있는 자리에 앉힌 자라면, 우리는 그에게 복종합니다. 법 그 자체, 특히 억압받는 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준수합니다. 위반하면 수치로 여기는 불문율에도 순순히 복종합니다.

 

누구나 법을 준수하고, 위반하면 수치로 여겨야

 

중요한 사실이 또 있습니다. 하루 일을 마쳤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과 정신 건강을 위해 모든 종류의 여가를 향유합니다. 사계절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경기와 대회를 개최합니다. 아름답고 유쾌한 개개인의 가정은 나날의 노고를 잊게 합니다.

 

이 도시의 위대함 때문에 만물이 이 도시에 집결하고, 그래서 우리 아테네인은 세상의 산물을 마치 이 땅에서 난 것인 양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군사정책도 적과는 다릅니다. 먼저 우리 도시국가는 온 세계에 개방적입니다.

 

외국인을 추방함으로써 이방인의 견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설사 이 개방성 때문에 적이 우리에게서 뭔가를 알아내 이익을 도모할지라도 장비나 책략보다 우리의 용기를 믿습니다.

 

군사 교육에서도 적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엄격한 훈련으로 용기를 함양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자유롭게 살게 하면서도 그들에 맞서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라케다이몬인(스파르타인)은 단독으로 출병하지 않으며 모든 동맹군과 상의한 뒤에 우리의 영토로 출병합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우리 힘만으로 적에 맞서며, 다른 나라에서 싸울 때도 적을 어렵지 않게 제압하고 있습니다.

 

어떤 적이든 한 번도 우리의 전군(全軍)과 맞서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해군을 증강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육군을 각지에 파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 군의 일부와 교전해 승리를 얻으면 그 부분적인 승리를 가지고 우리 전체를 격파했다는 소문 을 퍼뜨리고, 격파당하면 우리의 전 세력에 정복됐다고 말합니다.

 

가난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게 부끄러움

 

우리는 고된 훈련이나 엄격한 군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침착함과 함께 우리에게 익숙한 용기를 갖고 위험과 대면합니다. 다가올 곤경 때문에 전전긍긍하지도 않습니다. 전열에 서면 평소 휴식 없이 훈련에 시달렸던 자들보다 훨씬 용감하게 행동합니다.

 

이상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우리의 도시가 전시에든 평시에든 다름없이 가히 경탄하기에 충분하다는 점을 보여 주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사치에 빠지지 않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면서도 유약하지 않습니다. 부자는 부를 자랑하지 않고 단지 그것을 활동의 적절한 바탕으로 삼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단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그것을 이겨내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일만이 아니라 도시국가의 일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 사람도 정치 일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을 그저 자기 일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이곳 아테네에서 하는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만이 정책에 대한 결정을 우리 스스로 내리거나 적절한 토의에 부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나쁜 것은 결과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행동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남다른 점은 또 있습니다.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목적을 신중히 검토하는 자세와 그것을 과감하게 단행하는 능력을 아울러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다른 나라 사람들을 보면 무지가 만용을 불러일으키고, 신중하게 생각한답시고 망설이는 태도로 일관합니다. 삶의 공포도 환희도 잘 알고, 게다가 위험에 겁을 먹지 않는 자라야 진정으로 강한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 대한 선행의 개념에서도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남들과는 달리 선한 일을 통해 우방을 만들지, 혜택을 바라고 우방을 만들지 않습니다. 선행을 베푸는 측은 상대가 느끼는 고마움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선의를 보여 줌으로서 계속해서 더 큰 신뢰를 얻습니다.

 

반면 의리상 은혜를 갚으려는 측은 자발적으로 선행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고자 하는 의도로 그리하기 때문에 진심을 잃게 됩니다. 우방을 돕는 방법도 특별한데, 우리는 손익을 따져 돕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가치를 믿고 두려움 없이 돕습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저는 우리의 도시국가를 그리스의 학교(the school of Hellas)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더욱이 우리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은 다양한 분야에서 삶을 향유하면서 자신만의 능력을 영예롭게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장례 행사 자리라고 해서 이렇듯 호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우리의 자질로 인해 우리가 얻게 된 이 나라의 국력이 실증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 도시국가 가운데 시련을 통해 명성 이상의 힘을 보여 준 것은 오늘날 오직 우리뿐입니다.

 

우리에게 패한 적도 우리에게만은 수치심을 느끼거나 한을 품지 않으며, 우리를 따르는 속국도 우리 이외에 자신들이 의무를 다할 적합한 맹주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그 힘을 보여 준 우리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미래의 사람들에게도 경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뿐, 우리에겐 호메로스의 찬가도, 잠시 귀를 즐겁게 하는 멋진 표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용기 앞에 굴복한 온 바다와 육지는 길을 열어 우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우방에게 베푼 선행으로, 그리고 적에게 가한 고통의 기억으로 세상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기념비를 남겼습니다.

 

이토록 위대한 아테네를 위해 여기 이 사람들은, 이 도시국가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과감한 결단으로 고귀하게 싸우며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도시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고난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은 여기 남은 우리에게도 의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탁월함을 보여준 전몰용사

 

우리의 도시국가에 관해 이토록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우리와 전혀 비교될 수 없는 자들과의 싸움에 있어서 우리가 지키고자 한 것이 훨씬 더 가치 있음을 보여줌으로서 이제 이야기할 전몰자들에 대한 칭송에 확실한 근거를 부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도시국가를 찬양함으로서 전몰자들을 칭송하는 주된 근거는 거의 모두 말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도시국가를 빛낸 것은 오로지 여기에 잠든 사람들의 용기와 용맹함 덕분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공적과 그에 대한 예찬이 이곳에 묻힌 사람들처럼 서로 완전히 일치하는 예는 그리스 어디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안식하게 될 사람들이 맞이해야 했던 최후는, 그것이 처음 참여한 전투였든 마지막인 전투였든,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탁월함을 보여 주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 가운데 인간적인 실수를 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국을 위해 싸운 무용이야말로 그 사람의 단점을 상쇄한다는 주장은 옳습니다.

 

선행은 악행을 덮어 주고, 개인으로서의 단점보다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그가 보인 용기가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가운데 누구도, 누리지 못한 부의 쾌락을 아쉬워하며 기가 꺾이거나, 언젠가 부의 기쁨을 누릴지도 모르는데 하는 기대 때문에 죽음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적에게 복수하고자 했고, 이것이야말로 생명을 내던질 만한 비길 데 없는 영광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적을 섬멸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다른 모든 것을 초월해 이 결의가 성취되길 기원했던 것입니다.

 

전운이 확실치 않음에도 희망을 걸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임무를 대담하게 수행해 내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보았으며, 그리하여 뒤로 물러나 생명을 보존하기보다는 맞서 싸우다 죽기를 택했습니다.

 

불명예스러운 기회주의적 태도 대신 온몸을 바쳐 전열을 고수한 그들은, 자신의 운명이 도달한 절정의 그 순간 두려워하기보다는 영광스럽게 죽음과 마주했습니다.

 

위대함이란 수치스러움이 무엇인지 아는 것

 

이리하여 그들은 이 도시국가에 어울리는 합당한 자들이 됐습니다. 살아남은 우리가 더는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지 않기를 희망하는 것은 당연하나, 우리 역시 전장에 나서면 이들 못지않게 담대함을 보일 각오를 해야만 합니다.

 

누군가는 용감하게 도시국가를 지키는 것의 가치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되풀이해서 강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을 경청하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우리 도시국가의 위대함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도시국가의 위대함을 느낄 때마다 돌아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한 위대함은 전장에서 수치스러운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의 의무를 자각하며 비겁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에 의해 획득된 것임을 말입니다. 그들은 설령 시도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하면서 가장 고귀한 헌신을 하겠다고 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최고의 무덤과 함께 각자의 한 몸을 나라에 바쳐 더는 늙고 소멸할 수 없는 찬사와 영광을 얻었습니다. 지하에 묻히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예로운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고,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의 말 속에서 기념될 것입니다.

 

온 땅은 이 대단한 사람들의 묘지가 되어, 모국에서 묘석의 비문에 드러날 뿐만 아니라 아무 관련이 없는 땅에서도 무형, 무언의 기념비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깃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란만장한 생애의 종말을 맞을 때 충실한 행복한 최후여야

 

여러분은 그들을 모범으로 삼아, 자유가 없는 곳에 행복이 없고, 용기가 없는 곳에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전쟁의 위험 앞에서 조금도 망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견지하지 못하는 비참한 자라면 자기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싸울 필요가 없을지 모릅니다.

 

행운도 지나치면 악운을 초래할 수 있음을 감수하려는 사람들만이 생명을 걸고 행복을 지키려 합니다. 긍지 있는 인간은, 조국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홀연히 죽어 가는 것보다 겁을 내고 살면서 수치를 당하는 것에서 더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여기 모인 전몰자의 부모가 되는 여러분께 안타까운 애도의 말씀은 드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보다 저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이 세상이란 수많은 삶의 변천이 있는 곳임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여기 잠든 전몰자들처럼 영광으로 가득 찬 최후를 맞이하고, 여러분이 바치는 것과 같은 애도를 받을 수 있으며, 그 파란만장했던 생애의 종말에서 충실했던 사람들이야말로 행복한 최후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설득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전에 누렸던 기쁨을 오늘 이후로는 남들의 손에서 찾아야 할 때, 여러분은 수없이 슬픔을 느낄 것입니다.

 

행복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도 쓰라리지 않습니다. 고통은 오랫동안 익숙했던 행복을 상실하는 것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아직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은 태어날 자식에 대한 희망으로 견뎌야 합니다.

 

새로 태어날 자식들은 가정에서는 죽은 자를 잊게 하는데 도움을 주며, 도시국가로서는 인구와 방위의 양 측면에서 필요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의 생명을 나라에 바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공동체가 공평하고 정의롭게 운영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여러분 가운데 나이가 있는 분들은 행복했던 인생이 요구하는 대가로 여기는 동시에, 슬퍼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위안 삼아 죽은 사람들의 명예에서 마음의 안식처를 찾기 바랍니다.

 

명예를 사랑하는 마음만이 늙지 않습니다. 누군가도 말했듯이 은퇴할 나이가 된 사람은 사리사욕을 따르지 않고 존경받는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여기에 모여 있는 전몰자의 형제나 유자녀 여러분, 여러분의 앞날에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음을 압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칭송하는 것은 세상의 관습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영예로운 행동을 했을지라도 죽은 사람만큼의 명성을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죽은 자들의 공적에 미치지 못한다고 간주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을 동안에는 모두 경쟁심 때문에 서로를 질투하지만, 세상을 떠나 버린 사람에게는 순순히 경의를 표하는 게 인간입니다. 오늘 이후 미망인이 되는 분들에 대해 한마디 언급할 게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짧은 권고에 다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타고난 본성에 따라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이 큰 명성이 되겠지만, 그래도 가장 큰 명성은 좋게 든 나쁘게 든 남자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데 있습니다.

 

관습법에 따른 제 연설에서 제가 해야 할 말은 다했습니다. 여기에 안치된 사람들의 영예를 위해 거행되어야 할 의식도 이미 마쳤습니다. 그들의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에 필요한 것은 도시국가가 책임집니다. 이는 전몰자들과 그 유족들이 겪을 시련에 대해 나라가 해야 할 당연한 보상입니다.

 

용기에 가장 큰 상을 주는 나라야말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용감한 시민들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자, 이제 각자 연고가 있는 전몰자들에 대한 애통함은 충분히 풀었으니, 모두 이곳을 떠납시다.

 

도덕적 비애(悲哀)를 뚫고 비상하게 하는 정치적 언어

 

끝까지 읽어보셨는지.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요즘 길고 긴 연설 글을 정독해서 읽으려면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셨다면 이미 훌륭한 연설이나 정치적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링컨 미 대통령은 페리클레스의 연설문을 가지고 남북 전쟁 중이었던 1863년 11월 1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에서 한 연설문을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링컨의 연설문은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273자로 줄인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또한 아테네 시민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삶을 옹호하는 자세는 미국 독립 전쟁 직전 영국으로부터 비롯된 군사적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던 독립 운동가 패트릭 헨리의 1775년 의회 연설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아울러 가난과 부에 대한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우리가 두려워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라는 논지 역시 페리클레스의 연설로부터 받은 영향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인간 삶의 비극적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에 대한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2011년 애리조나주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 희생자에 대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추모사에서 부활했다.

 

그는 “갑작스런 이별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고 말함으로서 우리가 우리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는지, 나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했는지, 자신의 배우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도덕적 비애감(moral pathos)을 뚫고 비상하는 인간 활동”이라는 정치적 언어

 

물가가 오르고 살림살이가 하루하루 팍팍한 우리나라 경제에 희망을 주고, 하루가 멀다 않고 미사일을 쏘아 대는 북한의 도발을 멈추게 할, 세상을 바꾸는 99.9% 말의 힘이 우리나라 정치인의 정치적 언어로부터 나와 온 나라가 감동으로 넘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