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윤 기자]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풀리지 않는 이슈로 노동계는 수년째 진통을 겪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한 협상 테이블은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는 자리가 돼 버렸고, 결국 정부와 국회가 강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가운데 주목받고 있는 기업과 노동조합이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노사 문화 우수기업’에도 선정한 서진산업(주)이다. 정치권의 선거와 맞물려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등으로 뜨거웠던 지난해에도 임금교섭은 무교섭타결을 이뤘다. 노조설립 이후 38년 동안 한 번의 분규도 발생하지 않은 서진산업(주). 여기에는 아직은 작을 수도 있지만, 강한 새로운 노동운동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진업 위원장이 있다.
“회사가 없는 노동조합은 없고, 노동자 없는 회사도 없습니다. 저는 이 말이 진정한 측면의 노사관계를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업 위원장은 노동조합 집행부도 평상시에는 사원으로 회사발전에 내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현장의 경영자로서 일을 하는 것이고, 노조 집행부로서 협상시에는 이해관계 당사자로 치열하게 협상을 해야 하는 게 자신의 소신이며, 늘 그러한 마음으로 활동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인터뷰 중간 중간 ‘생산성 향상’ ‘공정개선’ ‘제품의 품질’에 대해 언급했다. 마치 노조위원장이 아닌 기업의 전문경영인과 인터뷰하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서진산업(주) 노동자들은 김진업 위원장에 대한 신뢰가 확고하다. 지난 2007년부터 노조위원장에 당선돼 활동을 하고 있는 김진업 위원장은 2기, 3기, 4기로 연이어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조합원들로부터 91%, 93%, 94.3%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김진업 위원장이 생각하는 노동조합과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인터뷰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
회사와 현장관리자 틈에서 8년 동안 ‘떠돌이’ 신세
지지율 91%, 93%, 94.3%의 수치가 증명하듯 서진산업(주) 노동자들이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김진업 위원장은 처음에는 노동조합과 회사의 틈에서 그야말로 ‘미운오리’ 신세였다. 이리저리 부서를 떠돌던 기간만 무려 8년. 김 위원장은 “모든 것을 수동으로 하던 공장에 신기술 도입 등을 이야기하니 현장관리자들이 기피했고, 맞물려 강성 노조 출신이라는 음해성 소문이 돌며 회사에서도 내보내려고 했다. 그때부터 익숙해지려고 하면 부서이동이 시작됐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먹고 살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포항, 대전, 광주 등 대기업 공장에서 일한 덕에 각종 신기술을 접했던 김 위원장의 눈에 모든 것을 수동으로 진행하고 있던 당시 서진산업(주)의 공장은 개선할 게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말했던 회사를 위한 얘기는 변화를 원하지 않는 노사 기득권층에게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통스럽게 느껴지던 8년의 과정은 그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김 위원장은 “회사 내 거의 모든 부서를 돌면서 일을 하다 보니 어느 부서를 가든 대부분 익숙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결국 공정개선과 관련해 도움요청이 들어왔다”고 전했다.
당시 공무반은 김 위원장이 제시했던 설비 관련 공정개선 방안을 현장에 적용했고, 하루 140대였던 생산량이 600대까지 올라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그가 노조위원장 후보감이라는 여론이 형성됐고 인기는 높아 갔다. 반면 음해도 계속됐다. 결국 회사 사장과 면담하게 된 그는 “왜 노동조합을 하려고 하느냐”는 사장의 물음에 “회사를 멈추려는 게 아니다. 자동화를 하면 효율도 올리고, 작업자도 편해진다. 이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이런 걸 해보기 위해 노동조합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지지에 힘입어 노조위원장 선거까지 출마한 그는 ‘생산성’ ‘상생’ 등을 강조했지만 당시 전체 노동자들의 공감은 사지 못했고 1대 통합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미래 그리는 노동조합, 주간연속 2교대 도입
이후 2007년 노조위원장에 선출된 김 위원장은 서진산업(주)의 발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70~80년대 자동차 부품 업계의 선두주자였던 서진산업(주)는 1998년 IMF를 겪으며 2003년 외국자본에 흡수되고 말았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기존 노조 집행부가 군포·광주 등 공장 매각에 합의하자 노노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 시기 전면에 나섰던 김 위원장은 그러나 서두르지 않았다. 단순히 임금을 얼마 올려 준다는 공약을 내건 다른 후보자들과는 공약도 달랐다. 그는 먼저 서진산업(주)이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해 조합원들을 설득했고, 그래야 조합원들의 권익이 증진된다고 설득했다. 당시에 그가 내건 공약은 ‘주간연속2교대’와 ‘학자금 전액 지원’이었다. 주간연속2교대는 회사입장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설비투자 등 비용증가가, 노동자들 간에는 당장의 임금과 맞물리며 첨예하게 대립한다. 하지만 서진산업(주)은 2016년 1월 주간연속2교대를 전면 실행했다. 현대기아자동차 등 대기업 이외에는 업계에서 주간연속2교대를 도입한 사업장은 아직까지도 없는 게 현실이다.
김 위원장은 “결국 노동시간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2004년부터 주간연속2교대 설명회를 많이 다니면서 공부를 했다. 왜 노동시간이 단축돼야 하는지, 우리 삶의 질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또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등에 대해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후 김 위원장은 각 공장에 맞게 개선방안을 만들고 적용에 나선다. 처음에는 “XX놈” 소리까지 들었다는 김 위원장은 “궁극적으로도 지향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도 회사가 힘든 상황에서 회사 내 조합원을 지키기 위한 목적과 맞아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주간연속2교대를 위해 노동조합차원에서 공정개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고민했던 그는 시간당 생산대수를 먼저 끌어 올렸다. 주말과 토일 특근을 통해 납품대수를 맞춰왔는데, 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하지 않으면 설비투자비가 늘어나고, 결국 설비투자를 최소화하려면 공정개선부터 해야 했다. 그 결과 투자비 최소로 회사는 이득을, 생산성 향상으로 노동자들은 임금을 보전 받았다. 생산라인을 U자로 개선하고, 자동화시스템도 타점 분배와 제어장치 신호체계를 개선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조합이 이런 공정개선 작업을 하고 협상안을 들고 가니, 회사와도 빅딜이 가능했다. 회사도 처음에는 주간연속2교대로 경쟁력이 없다고 했는데, 결국 최근 노동시간 단축 등이 이슈화되고 강제되는 상황이 오니 요즘은 좋아 한다”며 웃었다. 생산성 향상을 이뤄낸 노동조합은 줄어든 27시간 가운데 25시간을 임금으로 보전 받았다.
“경쟁력 없는 회사는 협상력도 없다”
“회사가 경쟁력이 있어야 노조도 협상력이 생깁니다.”
김 위원장은 경쟁력이 없으면 막말로 이익이 나면 베풀 수 있지만 적자가 나는데 할 수 있겠냐면서 결국 구조조정, 임금 동결, 상여금 반납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만큼 노동조합도 변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최근 최저임금 문제와 노동시간 단축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인데, 회사가 그 문제를 탈피할 때까지는 노동조합도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막말로 그건 내 문제가 아니고, 회사 문제야 하고 뭔가를 무조건 해달라고 하면 해결이 되겠냐”며 되물었다.
실제 서진산업(주)의 노동조합은 회사가 어려울 때는 임금동결을, 학자금 지원을 따냈을 때도 임금동결에 합의했다. 그래도 김 위원장의 신뢰와 지지는 높아져 갔다. 김 위원장은 노조집행부가 조합원들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현재 상황을 솔직히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3개월마다 2시간씩 계속한다. 또 이슈에 따라 회사의 사업계획 설명회, 임금협상 손익에 대한 설명회 등도 꾸준히 연다.
김 위원장은 “노동조합은 현장의 경영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현장의 생산성 문제, 적정인력문제들을 조합원들과 의논해서 먼저 검토하고 회사와 협상을 한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들 간에도 신뢰가 쌓이고 회사와도 쌓여 가는 것 같다. 회사와 협상결과는 다시 조합원들에게 상세히 전달해 투명한 조합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임금체계 개편에 관심
“현재 상황에서 노동조합 역할 계속 고민하고 있어”
선제적인 대응으로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에서 자유로운 서진산업(주)의 노조를 이끌고 있는 김 위원장의 다음 관심사는 ‘임금체계’다. 김 위원장은 “최근 조합원들에게 홍보를 시작했다. 연공급 임금체계가 무너지는 단계가 멀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계속 오른다면 결국 임금제도 개선을 하지 않으면 사실상 해결방안이 없다. 요즘에는 그 부분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단 조합원들은 다기능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어, 편한 사람은 계속 편하고, 바쁜 라인만 계속 잔업이 많아지는 등 조직 내 문제점이 있었지만, 주간연속2교대를 시작하면서 다기능을 갖추고 주기적으로 로테이션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회사와 함께 노조가 미래를 그려가는 김 위원장의 모습은 그간 봐왔던 노동운동가들과는 사뭇 달랐다. 김 위원장은 “과거 노동운동을 자본과 노동으로 나눠보던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고 느끼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을 계속해 고민해 나가며 건전한 노사관계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회사와의 협상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대학에 입학해 산업경영학과를 다녔다. 김 위원장은 “외국자본의 전문경영인과의 대화를 위해서였다”면서 “공장안에서는 내것 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에 더 큰 사회에 나가도록 노조의 집행부들에게도 외부교육을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경기도본부 시흥지역지부 의장 재선
서진산업에서 단위사업장을 위한 노동운동을 펼쳐온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 한국노총 경기도본부 시흥지역지부 의장 보권선거에 선출된 이후 올해 재선에 성공해 3월13일 제8대 의장에 공식 취임했다. 단위사업장에서 자신의 철학과 원칙을 관철시키며 노동운동을 펼쳐온 김진업 위원장이 이보다 더 큰 지역지부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실제 한국노총 시흥지역지부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교통·금속·제조 등 연맹별·분야별 한명씩 각출 방식으로 운영위원회를 꾸렸다. 단위사업장별로 각각의 이해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체 지역에 기여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것인데, 김진업 위원장이 열어갈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대된다.
MeCONOMY magazine April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