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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 '설민영'

집념과 열정으로 연기력 쌓아 자신만의 연기 보여주고파

세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 되었다가도 다음 순간 가장 사악한 사람으로 변신하는, 그야말로 카멜레온처럼 자신을 바꿔 대중들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직업이 바로 배우이다.

자신보다는 타인의 인생을 살아가며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극을 끌어나가야 하는 배우는 어찌 보면 극한 직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혹자는 치열한 연예계에 회의를 품지만 연기가 좋아서, 재미있어서라며 열정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신인연기자 설민영 씨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세상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하얀 도화지처럼 맑고 순수한 배우, 설민영을 소개한다.


배우라는 이미지에 걸 맞는 훤칠한 이목구비와 다부진 몸을 가진 그는 환한 미소가 인상적인 배우다. ‘특공무술’이 특기라는 프로필과는 달리 마냥 착해 보이는 그는 수줍음이 많았는데 연기와 영화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리드해 나갔다. 사실 ‘설민영’이라는 이름에 대해 아직 낯설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취재원이 만나본 배우 설민영은 다양한 분야에서 튼튼히 내실을 쌓고 있었다.


올해에는 연극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고 했는데 지난 2월, 알베르 카뮈의 희곡 ‘오해’를 재해석한 연극 ‘터’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배우 설민영이 주인공으로 열연한 연극 ‘터’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줄거리 때문에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던 작품이다. 어려서 집을 떠난 아들이 크게 성공하여 어머니를 놀래키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어머니가 운영하는 여관에서 하룻밤 묵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그 부자 청년이 아들인지 모르고 그의 금품을 노려 결국 자신의 아들을 살해 한다는 슬픈 줄거리를 담고 있다.


연극 ‘터’에서 주인공으로 열연


비극적인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아들 역할을 맡은 배우 설민영은 연극 ‘터’의 주연을 맡으면서 연극의 깊은 맛을 알았다고 말했다. “연극이 처음이라 무대도 어색했고 무엇보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도 컸습니다. 더구나 제가 연극하는 무대는 소극장이라 관객과 아주 가까워서 바로 바로 관객의 반응을 느낄 수 있었어요. 더 많은 걸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연극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연극을 하기 전까지 그는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 경험이 있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많았던 그에게 단역무대는 늘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연극 무대의 러브콜은 관객들과 만나는 접점이면서 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돌파구가 됐다. 사실 그는 올해 6편의 연극에 출연한다는 말도 안되는 목표를 세우고 말았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에서 단역 위주의 작은배역을 맡아 연기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면 연극은두세 달 정도 준비해서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 정도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연극을 통해서 내 연기와 한 번 마주해 보자,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자. 이런 생각을 한 거죠.(웃음)” 아무리 중견배우라도 1년에 연극 6편에 출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두 달에 한 편씩 쉬지 않고달려야 가능한 양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4편의 연극을 완료했다. 남은 하반기에 두 작품을 더 하면 목표달성은 무난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제가 연기자로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에 매진한다는 그는 늘 남아 있는 연기에 대한 갈증을 연습을 통해 풀고 있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특수본’에 첫 출연


배우 설민영이 출연한 첫 영화는 특수본(Special Investigations Unit (S.I.U.), 2011) (특별수사본부)이 었다. 그는 거기서 시위용역 역을 맡았다. “운이 좋았어요. 운동을 했던 경력이 도움이 된 거죠. 대사는 없었지만 용역직원 역할을 맡아 제 특기를 나름대로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장 기억이 선명합니다.”


다음 해인 2012년에는 MBC드라마 ‘마의’에도 출연했다. ‘마의’는 조선시대 후기 말을 고치는 수의사로 출발해 왕을 치료하는 ‘어의’자리까지 올랐던 백광현의 이야기를 다룬 메디컬 사극드라마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제 대사는 ‘예’ 하나였는데도 참 긴장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리딩이 오전이라 서둘러 세트장에 갔었는데 이순재 선생님께서 저보다 더 일찍 나오셔서 준비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대스타는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열정과 성실함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구나 그걸 그때 배웠습니다.”


전체의 드라마에서 단역이라는 작은 비중을 맡았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는 그는, 새벽에 촬영을 하고 다음 신까지 12시간이 남아 어찌할 줄을 몰라 주변을 배회할 때 연기자 선배들의 따뜻한 배려를 받았던 기억을 회상하며 힘들었지만 즐거웠다고 말했다. 사극 ‘마의’에서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하면서 배웠던 기억은 앞으로 그가 연기자로서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실 그는 연극영화과를 전공한 배우가 아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공대생으로서 진로조차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말로 제가 좋아하는 일이 뭘까 생각해 봤더니 연기더라고요. 과감히 진로를 틀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어요. 제게 용기를 줬던 작품이 있는데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올드보이’였어요.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최민식 선배님의 연기가 너무 멋졌죠. 그 영화를 10번도 넘게 봤을 거예요.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연기에 빠져 들었어요. 제가 그 분을 존경하고 좋아하게 된 건 극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모습 때문이었어요. 극 중에서 유명한 ‘장도리신’은 다들 기억하는 명장면이잖아요.”


배우 설민영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단연 최민식씨다. 그는 연기를 시작하기 전 ‘올드보이’와 ‘파이란’, ‘악마를 보았다’ 등 최민식의 영화를 수도 없이 보면서 배우로서의 청사진을 그렸다고 말했다. 공대생이었던 그가 연기에 도전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을까? 다행히 없었다고 한다. 극에 따라 새로운 배역에 맞춰 자신을 변신시키고 준비하는 그 과정이 너무 좋았다는 그는, 특히 연극을 하면서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고 즉각적으로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때가 가장 좋다며 웃었다.


가족은 자신을 지탱하는 힘


“저는 좀 내성적인 아이였어요. 낯도 많이 가리고요.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 사람이 더욱 좋아지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자신감도 생기면서 성격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연기에 대한 대화를 조금 벗어나 ‘설민영’이라는 사람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는 학교에서 제일 무섭다는 학생 주임 선생님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많이 약해지셨지만 아닌 것은 따끔하게 훈계하는 엄한 분 이셨다.


반대로 그의 어머니는 천사처럼 자상하신 분이라고 했다.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안 좋을 때가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매일 새벽 4시에 나가서 밤 12시까지 일을 하시고 들어오셨는데도 저와 여동생을 정말로 따뜻하게 보살펴 주셨어요. 지금도 어머니를 보면 저절로 힘이 나죠. 여동생도 큰 힘이 되고요.” 힘들 때 가족을 떠 올리면 다시 일어서게 되는 것같다는 그에게, 가족은 힘의 원천이 되고 있는 듯했다.


집념 하나는 타고 난 배우


연기 말고 그가 즐기는 것은 운동이다.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하고 혼자 걷는 것도 좋아한다. 현재 그가 연극을 하고 있는 지역은 서울 군자동인데 거기서 자신이 사는 사당동까지는 꽤나 먼 거리다. 머리가 복잡할 때면 늦은 밤까지 그 거리를 걸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런 그를 보고 주변사람들은 ‘집념 하나는 타고 났다’고 말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 어떠한 장애물이 있어도 헤쳐 나가려는 지구력은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고 말한 그는, 최근 연기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친구들과의 만남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술을 먹게 되어 리듬이 깨지더라고요. 지금은 집중할 때 인 것 같아요.” 대신 요즘은 책에 빠져 산다는 배우 설민영. 연기를 위한 배경지식도 쌓을 겸 역사 공부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는 그는 여자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예상했던 대로 “없다”며 웃었다. 연기를 위해 가능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를 보면서 정말 열정 없이는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그는 뭣 모르고 부딪쳐 갔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는 어떤 역할이든 내가 다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연기를 배우면 배울수록 막연한 열정보다는 부단한 노력과 경험이 없이는 안 되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아직 순수하고 맑은 소년 같은 그의 내면이 마치 어떤 색을 입혀도 왜곡되지 않고 선명히 드러나는 하얀 도화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름길을 가기 보다는 기초부터 탄탄히 내실을 다져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그라면 어떤 색의 그림도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 설민영. 그가 무지개 빛깔로 반짝 반짝 빛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MeCONOMY Magazine Octobe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