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올라간 물가는 떨어지지 않는다. 생산비용이나 원가가 낮아지면 그만큼 소비자가격도 따라서 낮아져야 상식인데도 요지부동이다. 최근 커피 원두 가격이 떨어지고 세금까지 줄었지만 시중 커피값은 올린대로 받는다. 한때 경제부총리가 국제밀 가격이 떨어졌으니 라면값을 내리라고 업체를 직격하자 찔끔 내리는 시늉을 했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더니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올린 가격을 지키려는 업체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김치공장을 아무나 하나”... 대기업이 아니면 김치공장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아주 오래전-수십 년 전에 필자는 대형 김치 제조업체 공장의 배추 저장고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웬만한 공장 건물 크기의 저장고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당시 공장 책임자가 그 숫자를 알려줬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아마 수십만 포기는 될 엄청난 배추가 꽉 차 있었다. 공장 담당자의 설명에 의하면 저장된 배추들은 죽은 게 아니라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맞춰져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했다.
“저렇게 많은 배추를 사서 왜 저장하시는 거죠?” 내가 물었다. 공장 책임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산지 배추가격이 해마다 들쭉날쭉하니까 대량으로 사서 저장해 놓지 않으면 생산가를 맞출 수가 없어요.”
필자는 그 말을 듣고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배추 산지 가격이 들쑥날쑥할 때마다 배추를 사야 한다면 김치공 장을 운영할 수 없겠다는 것이었다. 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해 놓아야 제조원가며 소비자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공급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어디 배추뿐이랴. 김치를 만들 때 들어가는 각종 양념류와 채소도 그렇다. 원재료가 대량으로 확보되어 있어야 했다. 그 순간 필자의 입에서 튀어나왔던 말이 “아, 김치공장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였다. 원자재 확보는 김치 제조업체 뿐만의 과제가 아니다. 거의 모든 제조업체가 같은 입장일 것이다.
예를 들어 대형 버스 회사라면 기름값이 쌀 때 대량으로 확보해 대형 저장탱크에 저장하면 기름값이 올랐을 때 오른 만큼 수지(收支)가 좋아질 테니까. 원자재를 충분히 확보해 둔 업체는 세상의 물가가 마구 올라가기 시작하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너나없이 가격을 올리는 마당이니 타 업체와 가격경쟁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 놓고 제품 가격을 올려 폭리를 취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떤 이유를 대든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는 기업들의 탐욕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우리는 탐욕 인플레이션 (greedflation)이라고 부른다. 코로나와 러시아와 우크라이 나 전쟁으로 올해 전 세계 기업의 이윤 폭이 더 늘어났다 고 더타임스(The Times)가 보도한 것은 물가가 오르는 데 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거기에 기업의 탐욕 인플레이션 이 한몫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탐욕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 상승, 기업의 이윤 폭등으로 이어져
더타임스는 “소비자들은 어떤 업체의 핵심 투입 비용이 떨어졌다 해도 떨어진 만큼의 가격을 낮추라는 소리를 부르짖지 않는다”면서 “그 이유는 소비자들이 이미 올라 있는 가격에 면역이 생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기업에서는 가격 인상은 돈벌이가 최대로 증폭(增幅)되는 절호의 기회다. 만약 어떤 업체가 이익극대화-돈을 벌자는 목표를 세웠다면 어떤 핑계를 대서든 소비자가격을 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은 바보처럼 인상된 가격에 면역이 생긴다고 익히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내년에 조금은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올린 가격의 제품들끼리 서로 가격을 견제하고 눈치를 보게 되고, 투입 원가 하락의 압력이 강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업은 가격을 후려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가 있지만 그런 게임을 기꺼이 하고 싶은 최고 경영자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두서너 달 생산 비용이 떨어졌으니까 가격을 낮추라고 하면 기업들은 엄청나게 저항한다. 왜냐하면 기업이 생각하기에 원자재 등의 생산비용 감소는 일시적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격은 항상 들쭉날쭉 불안정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격을 내려서 시장 점유율을 올리려다 골절(骨折)상을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어느 기업이건 가지고 있다.
미국의 페인트 제조업체인 셔윈 윌리암스(ShirwinWilliams)는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회사의 분기별 수익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세 이전의 소득이 늘었고 그 이유를 판매가의 상승과 원자재비가 낮아진 데 있다고 밝혔다. 세윈 윌리엄스사의 사례처럼 기업 들의 원자재비가 계속해서 떨어진다면 이익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이익이 증폭될 것이다.
미국의 증권사인 골드만삭스가 1970년부터 작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원유, 밀, 커피 등 국제원자재 가격지수인 GSCI애 따르면 국제원자재 가격은 2022년 6월에 가장 높았다가 현재는 28%로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이를 반영한 가격 인하의 움직임은 찾기 어렵다
국제원자재 가격이 하락해도 요지부동의 물가, 10명 중 6명은 기업의 폭리 의심
소비자들은 펜데믹 기간에 업체들의 가격 인상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대개는 어떻게해서든 물건을 사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기업들이 원자재 인상분을 가격에 더 반영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믿으면서도 가격 상승에 따라 추가로 돈을 더 내야 할 뿐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한편 가격 인상은 공급망 붕괴 등등의 원인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미국인 천 명을 대상으로 「YouGov」가 조사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기업들이 그 어떤 핑계보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내세워 “꽤 많이” 혹은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소비자들은 기업들이 가격 인상 핑계로,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해외 원유가격, 코로나 기간 중 과도한 돈 풀기,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 등을 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10월 같은 조사에서 그런 기업이 ‘꽤 많다’고 응답했던 사람은 53%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8%포인트나 높아졌다.
매사추세츠 암허스트 대학의 경제학자인 이사벨라 웨버는 “지금까지 일부 회사들이 가격 인상을 통해 물가 인상에 따른 이익 감소를 보전하려는 측면이 강했지만, 앞으로 이익을 더 보자는-이익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업체들이 생산비용이 완화(緩和)되고 있는 상태 에서 더 많은 이윤 폭을 가져갈지, 가격 인하에 반영할지는 부분적으로 소비자의 반란에 달려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업의 속성은 그들이 원하고 있는 이윤 폭을 정해 놓고 있는 한 어떻게 해서든지 그 폭을 넓게 가져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이 생산 비용이 떨어진 만큼 가격을 내리게 하려면 소비자가 나서서 업체 간 가격경쟁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