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편 : 자전거 타는 이에게 교통수당을 지급하라
매년 30억~40억 원, 지자체의 자전거 특별교부세는 어디에 쓰이나?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도로는 사치다. 자전거를 교통수단이 아닌 레저나 운동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국토의 1.7%를 차지하는 자동차 위주의 도로만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지만 가장 기본인 보행자나 자전거를 위한 생활교통 공간은 잘 보이지 않는다.
녹색성장을 외친 2010년대 주요 물길을 따라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지긴 했으나, 그건 레저용이지 교통수단으로의 자전거를 위한 도로라고 보긴 어려웠다. 그나마도 2015년 이후에 건설이 끊겼다.
그 대신 정부는 매년 지자체에 특별교부세 30억~40억 원을 지원해 자전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전거가 차지하는 교통 분담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1995년 자전거법이 만들어질 당시 2%였던 분담률은 지금 1.2%로 0.8%포인트 낮아졌다. 특히 서울 등 대도시에 자전거도로가 있어도 관리 소홀과 시민의식 부재로 안전하고 편리한 자전거도로로서의 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국 지자체별로 자전거 예산을 쓰고 있는데도 우리나라가 이처럼 세계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국민 2명당 1대 꼴로 자동차가 보편적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전거는 레저, 운동용이라는 인식이 선출직 공무원이나 정부 당국자, 그리고 국민들의 뇌리에 굳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제정된 지 30년이 넘은 「자전거 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일명 자전거 법)」이 엄연(嚴然)하게 살아있고, 기후위기에 대비해 자동차 등 도로에서의 탄소감축 정책을 마련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이후 우리나라의 자전거 정책이 거의 실종되었기 때문이었다.
전기자동차에 1,830만 원의 보조금, 탄소배출 없는 자전거에는 0원
실제로 2013년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행정안전부는 자전거정책과를 폐지하고 대신 생활공간정책과에 1개 팀으로 축소시켰다. 이에 따라 자전거 관련 예산은 전부 지자체로 이관됐다. 또한, 2015년에 ‘국가보조금에 관한 법률 적용’ 논란으로 자전거 출퇴근 수당 같은 국비 지원정책이 중단되는 등 녹색성장으로서 자전거 정책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었다.
지난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정책토론회 ‘탄소중립 자전거가 대안이다’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재영 한국자전거정책연합 상임이사(대전 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는 “전기자동차의 이산화탄소배출량은 가솔린차와 큰 차이가 없는데도 한 대에 1,83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면서 “탄소배출량이 제로인 자전거에 단 한 푼의 지원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정부의 탄소감축 계획을 비판했다.
그는 “석탄 화력발전 비율이 높고,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전기·수소 차는 아직 친환경 차라고 말하기 힘들다”면서 “이들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는 km당 10g 정도로 극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지방정부는 여전히 자동차를 가진 사람과 그 자동차를 생산하는 산업을 우선적으로 배려함으로써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초래했고, 탄소배출 제로(0)인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한 편안하고 안전한 인도적(人道的) 교통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력 이동능력을 가진 우리들은 자전거를 타고 집 밖으로 나서자마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 동시에 자동차 없이는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자동차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도로에서 시간은 돈으로 환산되고, 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이 경쟁에서 앞서게 만든 자동차 위주의 도로는 똑같은 납세자인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자유 통행권을 제한하는 불공정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자전거단체협의회의 이구창 정책위원은 “자동차 보조금은 연간 1조 원에 달하지만, 자전거 보조금은 전무하다”면서 “자전거 보조금을 자동차 보조금의 1%만이라도 투입한다면 자전거 교통 분담률은 10%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통근자에게 출퇴근 수당과 구매보조금을 지급하는 유럽 각국들
유럽 각국은 '자전거로 통근(Cycle to Work)' 하는 사람들에게 출퇴근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자전거 통근자들에게 '마일리지 제도'를 시행해 km당 0.19유로(약 260원)를 주고 있다.
이 마일리지 제도는 애초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지원하는 것이었는데 2007년부터 자전거 타는 사람들로 확대해 휘발유가 필요 없는 만큼 마일리지를 돈으로 바꿀 수 있다. 덕분에 주 5일 하루 10km 자전거 통근자는 연간 약 450유로(약 63만 원)를 벌 수 있다.
벨기에 또한, 자전거 통근자들에게 km당 0.24유로(약 330원)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브뤼셀 타임스에 따르면 벨기에 중소기업 직원 5명 중 1명은 자전거 수당을 받았다.
프랑스는 자전거 통근자들에게 km당 최대 0.25유로(약 350원), 연간 최대 200유로(약 28만원)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8개 기업이 참여한 시범 사업 결과 자전거 이용자 수가 50% 늘었다.
이탈리아는 거주 지역에 따라 혜택이 달라진다. 이탈리아 풀리아(Puglia) 지역의 수도인 바리(Bari)에서 자전거 통근자들은 자전거로 출퇴근할 때마다 0.21유로(약 290원)를 받는다. 한 달에 최고 25유로(약 3만 5천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유럽 각국의 자전거 통근수당
네덜란드 : km당 0.19유로 (약 260원)
벨기에 : km당 0.24유로(약 330원)
프랑스 : km당 최대 0.25유로(약 350원), 연간 최대 200유로(약 28만 원)
이탈리아 : km당 0.21유로(약 290원) *바리(Bari)시의 경우
마일리지 혜택뿐 아니라, 자전거 구매 보조금도 지원한다. 영국의 경우 자전거 통근 제도에 서명한 사업체 직원은 고용주를 통해 자전거를 구입할 때 구매가격의 32%의 해당하는 금액만큼 세금공제 혜택을 받는다.
룩셈부르크의 자전거 통근자들은 새 자전거를 구입하기 위해 개인 소득세에서 300유로(약 42만 원)까지 공제받는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줘야하는 이유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2010년 경남 창원시가 자전거 출퇴근 수당을 지급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보조금의 형평성을 맞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자전거가 다니는 길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놓고 출퇴근 시간에 복잡한 버스와 김골라(김포골드라인을 비하하는 말)등 콩나물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자전거 출퇴근 수당을 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자력 이동이 가능한 사람들 대부분은 무 탄소 무공해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를 선택할 것만 같다.
66살 때 암에 걸렸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혼자 감내하며 10년을 더 생존했던 20세기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인 이반 도미니크 일리치(1926~2002)는 일찍이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원제목 에너지와 공정성』에서 ‘행복한 사회는 오직 자전거의 속도로만 가능하다’고 했다.
에너지를 과소비할수록 속도가 늘어나면 날수록 인간은 자동차의 노예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자동차 위주의 도로정책에 집중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써 왔다. 환승제 등 대중교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지만 도심에서의 자동차 주행 속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보행자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도로에서 소외시켜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지구 둘레 2.8바퀴에 해당하는 11만 3천4백km의 도로를 만들고서 그 도로를 걷는 사람이나 자전거 타는 사람을 더 줄어들게 만들었다. 녹색성장, 탄소중립과는 반대였다.
자동차는 물론 모든 대중교통수단은 탄소를 배출하는 기후위기의 주범이다.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탄소 배출이 없는 걷고, 자전거 타는 사람이 지금보다 압도적으로 늘어야만 실현 가능하다.
이것이 지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칭찬해주고 아직 타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교통지원금 등의 다양한 인센티브를 줘야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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