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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문제에 중심을 둔 대화에서 사람에 중심을 둔 의사소통으로

 

좋은 부모란, 배우는 부모이다


신학기를 앞두고 있는 2월, 학생과 학부모는 새로운 학교생활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낯선 환경에 잘 적응 할 수 있을지 등 긴장 섞인 떨림으로 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부모가 ‘학(學)+부모’가 되는 시기는 자녀가 학생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부모도 배움(學)이 함께 이루어져야 진정한 학부모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기 원하지만 부모로서의 경험은 또 누구나 처음이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시행착오가 일어나고, 때로는 가정 문제와 아동학대까지 이르게 된다.


현대사회 부모들에게 이러한 고민과 어려움이 더 커진 것은 아닐까? 가족의 구성이 이전 보다 핵가족화 되면서 부모가 된 후 부모의 역할을 삶에서 배우기란 쉽지 않게 되었다. 롤 모델이 부재한 현대사회의 부모는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넘어졌다 일어서며 외로운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부모 또한 배움을 통한 성장이 필요하다.


2016년 12월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행한 부모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부모들이 가장 배우고 싶은 부모교육 내용은 ‘자녀와의 대화법’이었다. 그 비율은 여성이 40.3%, 남성이 41.7%로 자녀를 둔 엄마와 아빠 거의 유사하게 자녀와의 대화법에 가장 큰 관심과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으로 자녀 생활지도(여성:19.5%, 남성:16.0%), 자녀와 놀이법(여성:12.9%, 남성:7.8%) 등으로 나타났다.

 

자녀와의 대화법에 가장 많은 필요를 느낀다는 것은 그 만큼 부모들이 자녀와 어떻게 대화해야하는가에 대한 어려움을 반증하는 수치다. 우리는 어떻게 자녀와 올바른 대화를 통해 보다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또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대화와 의사소통을 구분하여 살펴보는 것으로, ‘문제에 중심을 둔 대화에서 사람에 중심을 둔 의사소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 vs 관계에 중심을 둔 의사소통

 

가다머(Hans-Georg Gadamer)에 의하면 대화(Dialogue)는 질문과 대답의 형태를 띤 변증법적 문답법이다. 마치 소크라테스 식의 질문과 답변 형태의 대화를 말한다. 이는 대화 참여자가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나 문제에 관한 해결에 초점을 둔다.

 

즉, 가다머의 대화는 중심이 화자가 아니라 텍스트이다. 예를 들어 아빠와 아이가 새로 산 게임기 사용시간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여기서 가다머가 관심을 갖는 것은 게임기 사용시간이다. 즉 대화의 콘텐츠(게임기 사용시간)을 어떻게 합의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는 말하기 방식이다. 이러한 대화는 게임기를 일주일에 몇 회, 몇 분씩 사용하며, 이것을 지켰을 때 주는 보상, 어겼을 때 주거나 뺏는 벌 등 주제에 대한 일종의 합의가 대화의 목적이 된다. 

 

다른 관점에서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의사소통이란 대화 참여자들이 주제에 대해 좀 더 논쟁적 요소에 관심을 두고 서로의 주장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하버마스는 의식적이거나 허례허식(虛禮虛飾)적 대화가 아니라 보다 개인 상호간의 관계에 중심을 둔다. 게임기 사용의 예를 다시 들면, 아빠와 아이가 게임기 사용시간이라는 주제를 말하기 전에 대등한 관계형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조건을 이상적 대화 상황이라 말한다.

 


이상적 대화 상황 만들기가 먼저다


이상적 대화상황이란 의사소통이 우연한 외부적 요인으로도 방해받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의사소통 구조로부터 야기되는 어떠한 요구나 강요를 통해서도 방해받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Habermas, 1979).  즉, 합의 도출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당한 규범, 상호소통을 위한 이상적 대화상황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버마스가 말한 이상적인 대화상황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그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대화 참여자들이 이성적 논의에 의해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성적 논의는 억압이나 강제, 강요적 대화가 아니라 충분한 생각과 논리적 의견이 서로 공유된 논의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화자가 모두 납득하여 만족한 상태인 ‘합의’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에 완전한 상호이해가 이뤄져야 한다. 이상적 상황이므로 완벽한 상태의 상호이해는 어렵더라도 그것을 목표로 해야 함은 큰 의미가 있다. 즉, 부모만 아이를 이해해서도, 아이만 부모의 이야기를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서로 동일한 수준에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상황의 최대 선까지 끌어올리는 이해와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셋째, 대화에 참여하는 상대자를 자유롭고 대등하게 여김으로써 상대자의 진정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필자는 세 번째 조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화가 합의에 이르고, 상호이해를 통해 합의의 도달점에 이르기 위한 필요 조건이 바로 상대를 대등한 관계로 인식하는 것, 상대의 진정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가 상호 주관성, 즉 한 명의 인격체로서의 주관성을 인정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 간의 의사소통과 상호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방해받지 않는 의사소통’과 ‘구속받지 않는 합의’가 가능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화에서 의사소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상적 대화상황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왜곡된 형태의 의사소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점검하며 대화하는 것이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그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다머와 하버마스 모두 대화를 통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에 두고 있으나, 전자는 오로지 그 합의가 목적이다. 그러므로 피상적 합의의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상호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대화가 수단이 아니라 대화 자체가 의사소통의 도구이자 관계형성을 위한 목적이 된다면 우리의 대화는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문제에 중심을 두기보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중심에 두고, 대등한 관계에서 강요나 억압이 아닌 서로가 납득할 만한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면, 이상적 대화상황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