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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영혼을 기울여 돌과 바위 그리고 달빛과 대화하는 동양화가

- 류재춘 화백

자연 수묵화의 대가, 류재춘 화백(畫伯)을 소개하기에 앞서 NFT(Non Fungible Token, 대체가 불가능한 토큰)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만일 A라는 사람이 태블릿PC에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그런 그림은 얼마든지 공유와 복제가 가능하고, 카카오톡으로 친구 들에게 보내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원작자인 A가 처음 그림을 그린 사람으로서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가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A가 그린 그림의 디지털 파일을 ‘대체가 불가능한’ 원본임을 인정해 주는 것을 NFT라 한다. 이때 ‘대체불가토큰’에서 ‘토큰’은 디지털 파일 원본으로 이해하면 된다. 최근 몇 년간, 그림·동영상·음악 등 디지털 파일이 원본임을 입증하는 이같은 NFT붐이 일면 서 사람·고양이·원숭이의 디지털 캐릭터나, 유명 농구선수의 15초짜리 덩크슛 동영상, 가상세계의 부동산이 수백만 달러까지 거래되기 시작했다. 

 

최근 류재춘 화백의 대표작인 ‘월하’를 디지털로 변환한 ‘월하 2021’이 NFT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에 200점 한정판으로 내놨는데, 0.014BTC(약 100만원)로 시작한 그녀의 작품은 순식간에 완판이 되었다. 아날로그 세계 뿐만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도 대가의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었다.

 

류 화백은 월전미술문화재단 선정 초대전, 러시아 공관 미술관 류재춘 초대 상설 개인전 등 수많은 국내외 전시를 해온 수묵을 치는 베테랑 동양화가다. 영혼을 기울여 자연과 대화를 함으로써 영감을 얻는다는 류재훈 화백을 만나보았다.  

 

Q. NFT에서 작품이 순식간에 완판이 됐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작가님의 수묵 동양화는 아날로그, 디지털을 가리지 않는 것 같네요.


 류재춘 작가   원래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만 몰입했었는데 저와 디지털의 만남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어요.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한 NFT 프로젝트를 신사업으로 전개하는 「CJ 올리브네트웍스」라는 회사 관계자가 지난해 말 우연히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 작품 전시를 보다가, NFT시장에 제 작품을 올려도 작품성에서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저도 아날로그 세계의 디지털 세계로의 전환에 따른 블록체인 기술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왔었는데, 마침 CJ가 프로젝트에 동참해 달라는 제의를 해서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자’는데 뜻을 같이 했었던 거죠. NFT의 큰 장점은 엄청난 시장성입니다. 그동안 미술품 구매는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나 애호가의 영역이라고 여겨졌습니다만, 최근에는 투자와 게임의 성격을 갖는 NFT 덕분에 미술품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시장이 확대됐으니까요. 앞으로 그 시장이 넓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려할 점도 있어요. 실물 시장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교감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소비자가 소통하고, 또 다른 측면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고 이를 반영하기도 하는데 NFT에서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이죠. 작품을 대할 때 심미적인 가치를 굽어 보며 감상하기 보다는 투자 가치로 접근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게 걱정입니다.   

 

Q. 작가님의 그림에는 둥그런 달 그림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류재춘 작가   얼마 전 색채를 연구하시는 분과 심리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찾아왔어요. 제 그림을 보고 작가가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 알고 싶어서 왔다고 하더군요. 작가의 무의식 세계가 궁금했다는 겁니다. 제 작품에는 둥근 원이 다 들어 있는데 “그게 의도된 건 아닌가, 왜 풀 문(Full moon, 둥근 달)이냐”는 거였죠. 저는 “둥근달 이외에 초생 달 등은 생각도 안 해 봤다”고 했더니 심리학을 연구하시는 박사님께서 “풀 문은 완성을 의미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에 둥근 달의 심상(心象, 마음에 떠오르는 상)은 잡히는데 산색(山色)이 보라색이라 화면에 드러낼 수가 없었어요. 저 같은 경우 작품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야 둥근 달을 띄우는 편이라 산 끝에 조그맣게 띄우는 대부분의 작가와는 다르죠. 크게 띄우잖아요. 그분들이 제 설명을 듣다가 “작가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림으로 확인 했고, 과연 그런지 직접 만나서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분들은 제가 무의식 속에서 쓴 보라색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죠. 보라색은 심리학적으로 마젠타 컬러라고 해요. 우리말로는 심홍색이라고도 하는데 자줏빛과 같은 색들이 모두 마젠타 컬러 계열이죠. 타인을 감싸고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에너지를 지닌 색이라고 해요.

 

Q. 언제부터 보라색을 쓰게 됐나요?


 류재춘 작가   아마 2015년경이었을 겁니다. 산에 올라가서 3일 밤을 샜는데 여명이 밝아올 때 온 세상이 보라색이었어요. 바로 산에서 내려와 보라색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다른 색일 수도 있겠지만 제 눈에는 보라색 이었거든요. 중국에서는 보라색(자색)은 황제의 색이라 해서 쓰지 못하고 대신 금색을 쓰거든요. 보라색은 위로(慰勞)의 색이에요.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색이랄까. 힘들고 지쳐 있다가 이겨냈을 때 보이는 색이 보라색이죠. 


보라색이 화폭에 담는 건 그림을 그려서 얼마를 받고 팔고자 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제 자신의 인생철학이 담긴 모델이라고 할까요? 지난번에 저를 찾아오신 박사님들은 그게 땅의 색깔이라고 하더군요. 마젠타 컬러는 크게 잘 되는 것이라고, 크게 최고가 된다는 의미라고 해요. 다만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작가로서 힘든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거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거죠.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결국 바위를 뚫고 큰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힘든 과정을 이겨내야 한다는 거죠.


Q. 작가님의 작품세계를 스스로 평가하신다면?


 류재춘 작가   저는 성균관대에서 미술을 전공했어요. 그러면서 동양화를 그리게 됐죠. 처음 배운 게 사생화(寫生畫, 실재하는 사물을 보고 모양을 간추려서 그린 그림)였어요. 사생을 하면 진경산수(眞景山水, 조선 후기에 산천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그리게 돼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까지 우리나라의 자연을 그렸어요. 진경산수는 사경산수라고도 하는데 남도 쪽에서 그리는 그림을 답습하다 보니까 그 세계밖에 몰랐어요. 스승에게 배우는 것 외에 다른 건 알 수 없었죠.

 

그러다 늘 함께 다니던 선배가 제가 구성한 전시를 먼저 해버린 거예요. 이후는 혼자서 산에 다녔어요. 중국 황산에 가고 금강산에 가고요. 세계 명산이라는 명산을 다 다녔어요.  동양화는 동양 철학이 내재 돼 있어서 둘의 관계는 떨어질 수가 없어요. 사상적으로도 마찬가지지요. 중국 노자 사상이 들어오면서 자연 친화적인 게 됐잖아요.

 

 

인본주의 사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게 서양화라면, 동양화는 자연주의 사상이죠. 산수화는 사람을 그려 넣지 않아도 그림 속에 있는 거거든요. 사상자체가 달라요. 그림을 그리려면 철학이나 사상을 공부해야 하는 거죠. 동양화와 서양화는 서로 재료가 달라요. 동양화는 한국의 정서를 그대로 투영시키잖아요. 우리만의 정체성(正體性)이 있고 우리만의 칼라가 있죠. 

 

제 작품을 보면서 배경을 다 칠해서 여백이 없다고 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게 다 여백이에요. 동양화에서는 비백(飛白)이라고도 하는데 그림 안에 공간을 둬서 숨을 쉬는 거죠. 그림이 호흡을 하도록 여백을 주고 생각할 수 있는 걸 던져 주는 거예요. 작품 세계는 이런 식으로 이어지죠. 자연의 초상, 그 다음에 보라에서 풀 문(둥그런 달)이 오잖아요. 월화가 오고 다음에 바위 꽃이 오는데 바위 꽃은 파도가 치면서 해안에서 만들어지는 달빛 반사입니다. 그게 바위 꽃으로 승화되는 것이죠.  


동양화는 그 중에서도 자연을 주제로 한 수묵화는 우리에게 있는 한이라고 할까요. 우리는 백의민족이잖아요. 무명옷을 입고 종이에 먹을 먹이며 풍유를 읊었던 민족이죠. 그 정서가 한국화를 시작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우리 K팝이 전 세계에 나갔는데 창으로 하는 게 아니라 팝으로 하잖아요. 제 작품도 옛날만 고수할 게 아니라 색과 영상을 감미해서 세계로 나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화는 우리의 정신과 정서고 삶이니까요. 

 


Q. 결혼 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렸나요?


 류재춘 작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그림을 그렸어요. 30대에 아이들 키우면서 작품을 하면서 돈 벌기 위해서 직장도 다니고요. 그때는 하루에 두 세 시간 정도 잠을 잔 거 같은데 피곤하지 않았어요. 그만큼 그림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거죠. 그림에 대한 갈증이 가시지 않았어요. 은사님께서 저한테 찾으려 하지 말고 책을 보고 공부를 하면서 여행을 다니다 보면 보인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혼자서 그림을 그리러 다녔어요. 카니발을 사서 바닥에 합판을 깔고 차 안에서 잠을 자고 비 올 때는 트렁크를 열고 앉아서 그림도 그리고요.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그런 시간을 가진 거 같아요. 그러다 산을 오르게 됐죠. 스승님 한 분이 이런 애길 하더라고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가식적인 것에다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훨씬 더 크다. 그 말이 가슴에 와서 닿았죠. 며칠을 고민했어요. 어떻게 보이지 않는 세상을 만날 것인가. 소실 되듯이 없어져야 하고 블랙홀에 들어가야 하는데 별별 생각을 다 했죠. 그러다 산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동료들과 함께 갔죠. 그런데 작업에 몰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어둑어둑할 때 혼자서 산에 오르기 시작했어요. 산에 올라가 한참을 앉아 있다 내려와 막상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안되는 거예요. 산에 올라가 3일 밤을 샜죠. 3일 째 되는 날 풀벌레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리면서 세상이 보라색으로 변하는 겁니다. 그 벅찬 감동을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없어요. 해가 뜨기 직전 눈앞에 펼쳐지는 색이 그 색이 라고 해요.

 

제가 그걸 체험한 거죠. 그때 바로 산에서 내려와 그림을 그렸는데 분명 보라색을 봤는데도 그 색이 안 나오는 거예요. 너무 어려웠어요. 색이 세련되지도 않고 엉겨서 지저분하고요. 몇 년을 그렇게 보냈어요. 그때는 먹이나 선도 조심스럽고 해서 여러 번을 모아서 써야 했어요. 지금은 획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는데 당시는 참 힘들었죠.

 


Q.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내면서 수묵화에 푹 빠지신 이유가 있나요?


 류재춘 작가   개인적인 성향이죠. 저는 어릴 적부터 한 가지에 몰두 했어요. 고등학교 때 동양화를 처음으로 배우게 됐는데 화선지가 정말 얇잖아요. 그림을 그렸는데 화선지에 번져가는 깊이감이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 며칠 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그 매력에 빠진 거죠. 처음에는 디자인도 해보고 친구들과 여러 가지를 해봤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디자인 전공하면 잘할 거라고 하셨죠.

 

동양화는 가장 어려웠어요. 얇은 종이에 먹물 한 가지로 검은색이 어떻게 저렇게 여러 가지 톤이 나올까.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먹 한 가지로 천 가지 톤이 나온다고 해요. 먹의 물성은 자연에서 온 거잖아요. 그 깊이를 평생을 두고 해볼 만했죠. 저를 찾아왔던 박사님들이 그 말을 듣더니 ‘작가 성향’이라 하면서 ‘장인’이라고 하더군요. 한 번 해보겠다고 맘을 먹으면 끝까지 가는 거죠. 제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무슨 독립투사냐고. 좋아서 하는 건  답이 없 잖아요. 


Q. 류재춘 작가에게 산이나 물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류재춘 작가   산수 그 자체죠. 산을 그리기 위해 산에 올라갔고 거기서 물을 찾았고요. 저의 본질을 생각했을 때 무리라고 봐요. 산도 물도 있어야 하죠. 그래야 나무가 자라니까요. 제게 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편해요. 산에 올라가 있으면 나무들이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무들이 웃고 있는 소리가 들리고, 나무 잎이 흔들리면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들렸고요.

 

산에서 내려와 도심으로 오면 나무들이 아파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너무 힘들었죠. 지금은 그 소리가 안 들리는데 그때는 정말 힘들고 괴로웠어요. 자연이 가족이고 친구고 나의 본질이라는 걸 체득한 거예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까 작가로서 변화가 온 것 같았어요. 물음표를 주지 말고 좋아하는 걸 그리자. 그래서 산수화를 그리다가 바다의 파도와 자갈의 만남인 바위 꽃을 그리게 된 거에요. 


저는 제주도 돌을 좋아해요. 지난번 오셨던 박사님 중 한 분이 돌을 연구하시는 분인데 한탄강을 자주 간데요. 제가 제주도 돌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 돌과 속성이 같은 돌이라고 하더라고요. 용암에서 나와 층이 형성되어 물성이 같다는 거죠. 제가 돌을 좋아하게 된 것은 인간과 비슷하다는 거죠. 생긴 게 똑같은 돌이 하나도 없어요. 사람처럼 다 달라요. 다른 거라면 사람은 누군가를 괴롭히기도 하고 화나게도 만들지만, 돌은 그렇지 않아요. 묵묵하게 항상 그 자리를 지키죠. 그래서 좋아해요.

 

제 작품 바위 꽃은 돌에 파도가 부딪쳤 을 때 부서지는 모습을 그린 거예요. 그 부서지는 파도가 햇빛을 받으면서 반짝거리고 작은 돌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쓸려 내려가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이죠. 너무 예쁜 거예요. 그걸 그림에 담고 싶어서 고민하다 올해 바위꽃 그림을 탄생시킨 거죠. 


Q. 전국 산하를 많이 여행하면서 작품의 모티브도 얻으시나요?

 

 류재춘 작가   찾는 거죠. 옷을 하나씩 벗다 보면 알몸이 되듯 산을 다니면서 저의 옷을 하나씩 벗고 본질적인 것을 찾는 거죠. 그러면 뭔가 나타나요. 바위 꽃도 찾았고 2015년에 시작했어요. 보라색을 쓰기 시작한 즈음에 작품을 시작했는데 완성 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 거죠. 올 봄에야 나왔으니 까 7~8년 동안을 찾은 거죠.

 

산을 다니다 보면 산마다 느낌이 달라요. 사람들도 산을 다니다 보면 그런 걸 느낄 거예요. 많이 다니다 보면 반겨주고 안아주는 산이 있는데 그럴 때는 다리 끝에서부터 따뜻한 느낌이 와요. 어떤 산은 딱딱하고 차가워요. 러시아 국경지대를 갔을 때인데 그 산은 너무 무서웠어요. 분쟁 지역이었는데 정말 느낌이 안 좋았죠. 

 

 

Q. 작품에 영감을 줬던 산이 있나요?


 류재춘 작가   중국 황산이었죠. 정말 거대한 에너지를 느꼈어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하늘의 접점이라는 느낌이랄까. 중국 태산도 가보고 좋은 산은 거의 다 가봤지만 유독 황산은 달랐어요. 거대한 돌로 이뤄진 황산은 지구 중심까지 뿌리가 박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름이 끼쳐졌죠. 발바닥부터 전기가 오는 느낌을 정말 강하게 받았어요. 거길 다녀온 후 그린 작품이 묵산인데 이 작품이 저의 대표작과도 같아요. 아직 밖에 내 놓지 않은 작품이죠.

 

황산은 음지거든요. 당시 황산에 갔을 때 영하 20도를 오르내렸어요. 너무 추워서 그림은 엄두도 낼 수 없었는데 앉아서 그림을 그렸어요. 이미지를 그린 후 내려와 2006년부터 2020년까지 해마다 한 점씩 그려서 연작이 나왔죠. 아직 한 점도 판매하지 않았어요. 판매를 못한다는 게 맞을 거예요. 그 작품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상상도 하기 싫죠. 


Q. 국내에서는 어떤 산이 작품에 영감 을 줬나요?


 류재춘 작가   설악산 울산 바위죠. 예사롭지 않아서 울산바위가 보이는 숙박 업소에서 몇 밤을 묵었어요. 겨울에도 가보고 낮에도 밤에도 달라서 신기했죠. 지형에 비해서 갑자기 우뚝 솟았잖아요. 음영이 지는게 더 특이 하더라고요. 울산바위도 돌이잖아요. 제가 돌을 좋아하는 거고요. 나무가 우거진 산이 아니고 제가 좋아 하는 산은 결국 바위산이더라고요. 그런데 울산바위 느낌을 담으려고 몇 번 노력을 했는데도 안 담아졌어요. 그래서 습작만 있죠. 그림은 모양을 그린다고 해서 작품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받았던 그 느낌이 작품에서 나와야 되는데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르나 완성된다면 세상에 알려야죠.


Q. 작가에게 좋은 작품은 어떤 건가요?


 류재춘 작가   느낌이 좋은 작품. 작가의 모든 정신과 진실을 담아서 그린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생각과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하고 그런 자연의 기운을 받아서 점 하나를 찍더라도 진실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그런 그림을 그려서 칭찬받고 싶고요. 은사님께 어떻게 하면 유명한 존경받는 작가가 될 수 있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시면서 에디슨에 대한 얘길 해주시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은 에디슨이 천재라는 것에다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누구나 99%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1%의 천재성은 있다. 다만 그 1%를 알아보려면 99%부터 선행해야 된다는 것이죠. 


Q. 현재 코엑스에서 작품이 전시되고 있지요?

 

 류재춘 작가   아까 말씀드린 파도가 해안 자갈에 부딪치고 물러갈 때 달빛이 만들어내는 색감, 그런 바위꽃을 다룬 작품이 코엑스 전관에서 전시되고 있어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묵보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죠. 우리가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프잖아요. 작가에게 그림은 밥과 같아요. 저는 붓을 안 들고 2주를 못 넘겨요.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우울하고 슬퍼지니까요. 어려서 부터 그랬어요. 그건 성공하는 거와는 별개에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 수양을 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고요. 

 

Q. 작가님은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된다고 생각 하시나요?

 

 류재춘 작가   요즘 자연이 정말 많이 훼손됐어요. 인간과 조화를 이루려면 자연이 아파하지 않도록 자연을 배려해야 해요. 지난번에 오셨던 박사님께서 비무장지대 들어가서 답사를 시켜주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신다고 그랬는데, 안타까운 건 비무장지대도 훼손되고 있다는 거거든요. 훼손되기 전에 그려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자연이 훼손되는 이 순간 인간이 먼저 뭔가를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생존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벽이 허물어지는 메타버스 세상이 다가올수록 그런 원시의 아날로그 세계를 어떻게 디지털 세계로 옮겨 영원성을 가지게 할까, 꿈은 크지만 그런 저의 생각을 제 위치에서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겨보려고 해요. 장시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 서 감사합니다. 

 

김소영 - 말씀 고맙게 들었습니다. 작가님의 문운(文運)을 기원하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MeCONOMY magazine September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