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6.6℃
  • 맑음강릉 12.5℃
  • 맑음서울 10.1℃
  • 박무대전 8.2℃
  • 맑음대구 8.0℃
  • 맑음울산 8.7℃
  • 박무광주 11.4℃
  • 맑음부산 13.2℃
  • 구름조금고창 7.5℃
  • 맑음제주 14.8℃
  • 맑음강화 9.0℃
  • 구름조금보은 4.8℃
  • 맑음금산 5.5℃
  • -강진군 8.5℃
  • 맑음경주시 5.5℃
  • 맑음거제 10.9℃
기상청 제공

이사람

매출규모 500억원 중견업체로 성장

(주)바이네르제화 김원길 대표


<M이코노미 김소영 기자> 94년 안토니오제화(주)로 출발, 96년에는 이태리 CODIVA와 VANER 한국 라이선스 판매권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성장을 거듭해온 바이네르 제화. 연 매출 500억원의 중견업체로 발돋움한 이 업체는 지난 2010년에는 법인명을 바이네르(주)로 변경하고 세계를 무대로 수출도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1대 창업자가 했던 것처럼 그 바톤을 이어받아 세계시장을 넓혀가고자 한다는 바이네르(주) 김원길 대표를 만나 힘든 경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그의 경영철학에 대해 들었다.


17살의 어린 나이에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던 소년. 최초 들어간 제화업체에서 8년 간 기능직, 관리직, 품질관리직, 영업직 등 다양한 경험을 고루 겪으며 실무를 배웠던 바이네르(주) 김원길 대표는 91년도부터 구두를 직접 만들어서 파는 사장이 됐다. 정말로 만들고 싶었던 구두, 그의 마음이 담긴 구두는 이때부터 한사람 한사람에게 입소문을 통해 팔려나갔다. 여기에 힘입어 김 대표는 94년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사업의 길을 걷게 된다. 스텝바이스텝으로 조금씩 성장해 오던 그에게 이태리 바이네르 구두는 상당히 구미를 당기게 하는 브랜드였다. 평소 그가 추구하던 발이 편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명품구두였던 것이다.


첫눈에 반한 그는 바이네르 브랜드를 한국으로 수입하기 위해 라이선스 판매계약을 체결하고 국내에서의 판매를 시작하게 된다. 당시는 라이선스 판매계약을 맺어 한국에서 만들면서 로열티를 지급하는 구조였다. 그러다 2011년 브랜드 상표권을 아예 사들여 현재 바이네르 제화 상표주인은 김원길 대표이다.


김 대표와 구두의 인연은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성장할 당시만 해도 우리네 부모들은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산다며 자식들을 하나 둘 객지로 내보냈는데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팍팍한 살림에 자식들의 배라도 곯지 않게 하려는 부모들의 마음을 안고 객지로 상경한 그는 죽을 힘을 다해 기술을 배웠다고.


그래서일까? 김 대표는 기술에 자기 고유의 재능이 들어 있다는 공식을 믿는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산다는 데는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 회사만 해도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보다 기술자들이 더 안정된 생활을 하고 대우도 더 받습니다. 기술 속에는 고유의 자기 재능이 들어있는데 학력 속에는 고유한 자기만의 것이 없잖아요. 책 속에 들어 있는 거라도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자기 것이 안 되는 거니까요."


그는 기업이 만든 제품이 소비자와 잘 매칭되면 기업이 성장을 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후퇴하는 거라는 공식을 늘 마음 속에 담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불경기라고 해도 얼마만큼 고객들이 제품의 가치관에 호응해줄 수 있느냐의 문제이지 불황과는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수천 개의 브랜드 중에서 유독 눈에 띄어


‘바이네르’라는 브랜드는 1961년 이태리에서 탄생했다. 창업자와 김 대표의 인연을 맺게 해준 기회는 이태리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장이었다. 박람회장에 전시된 수천 개의 구두디자인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끌었던 바이네르 제화는 이렇게 그와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최초 창업자가 10년 전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진정한 이태리 기술자였죠. 제가 태어난 해가 61년인데 바이네르 브랜드가 생긴 해와 같더라고요. 그래선지 몰라도 처음부터 굉장히 끌렸어요. 창업자 또한 저를 참 좋아했는데 그분은 기술만 좋은 게 아니라 사람들을 아주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가끔씩 세계의 바이어들을 이태리로 초대해 호텔에서 식사도 대접하고 파티를 열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덕분에 파티를 좋아하게 됐다는 김 대표는 가끔 지인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함께 즐기는 것을 행복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이 업체는 지난 2010년부터 전 세계로 수출도 시작했다. 바이네르 브랜드를 선호하는 고객층이 아주 두터웠던 만큼 조금씩 보폭을 넓혀가겠다는 야심찬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창업자가 하루에 1만2천 켤레를 만들어서 팔았어요. 그렇게 만들어 팔던 구두니까 그 전성기를 다시 찾아보려고 해요. 다만 기업이 하루아침에 크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으니까 천천히, 그리고 단단히 키워가려고 합니다. 명성을 만들어 가는데 바쁠건 없잖아요.(웃음)"


김 대표는 지난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을 담아 상호명을 안토니오제화(주)에서 바이네르(주)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행복하자는 의미에서 행복경영 실천


이 업체는 행복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행복경영을 실천하게 된 배경을 묻는 질문에 김 대표는 “먹고 살만 하고, 직원들 제때 월급주고, 세금도 제때 내게 되자 ‘나도 성공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성공이란 정의를 생각해보니까 내가 행복하고 존경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행복경영을 실천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복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내 주변이 모두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업인으로서 행복지수 1등 기업을 만들어 세상에게 박수 받고 존경 받는 회사로 키우자는 데 삶의 목표를 정하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말로만 행복경영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을 위한 ‘행복경영’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고 직원들의 삶에 대한 행복지수를 올려주기 위해 직접 실천하고 있는 그는, 스포츠카를 사서 직원들이 누구든 탈 수 있도록 하고, 직원들의 복리후생제도도 대폭 손질했다고 한다. 또 직원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별장을 제주도와 경기도 청평에 마련해 레저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출산지원정책의 하나로 셋째 아이를 낳은 직원에게는 2천만원의 출산장려금도 지원하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이를 안 낳잖아요. 저는 국가의 경쟁력이 국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아이를 많이 낳아야죠. 과거 우리 부모님들은 다산으로 국가경쟁력을 키워왔어요. 어려운 환경이라 교육은 제대로 못 시켰지만 본인이 알아서 살아갈 수 있는 법을 터득하도록 했으니까 교육방법도 괜찮았던 것 같고요.(웃음)"


그는 인터뷰 내내 소통을 강조했다. 직원들과의 인사법에서도 이러한 그의 경영마인드는 나타났다. 회사복도에서 만난 직원들은 직급에 상관없이 만나면 ‘굿모닝’으로 수평적인 인사를 했는데 자유로운 회사분위기를 위해 인사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해서 아이디어를 얻은 인사법이라고 했다.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각자가 해야 할 업무를 적어서 책상에 붙이고 하나하나 체크하도록 하는 것도 김 대표의 아이어디에서 나왔다고 했다.


"저희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자신이 해야 할 업무내용을 적어서 책상에 붙여놓고 일을 시작합니다.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 직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어요. 주어진 근무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주요 업무를 책상에 써놓고 일하게 되면 저녁에 끝냈을 때 처리 못한 업무에 대해서는 다음날 가장 먼저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직원들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김 대표는 직원들에게 은퇴할 때는 전부 ‘사장’이 되라고 말한다. 내가 해보니까 되더라, 여기는 직장이 아니라 직업 훈련소인 만큼 열심히 배워서 은퇴할 때는 사장이 되라고 강조한다.


"직장생활을 시작해 8년간 일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뒤에 부도가 났습니다. 그 회사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좋은 것도 배웠지만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웠죠. 잘못된 것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회사가 부도가 날 수도 있다는 걸 본 겁니다. 잘하는 것을 보면 참고를 하면 되는 거고 잘못한 걸 보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만약에 제가 잘 나가는 회사에만 있었더라면 그렇게 배우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깨알 같은 이런 경험들을 배워서 사장이 되라고 늘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김 대표가 지향하는 기업의 비전은 ‘고객에게 사랑받고, 사회로부터 존경 받으며, 직원 모두가 만족하는 행복지수 1등 기업’ 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쉬울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그의 경영철학은 자신의 삶에도 큰 에너지가 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가 딸을 낳고 자기 딸에게 유산을 주는 것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더 소중하다며 자기 재산 모두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국에는 왜 이런 사람이 없습니까. 인생은 돈을 모아서 행복한 게 아니라 베풀어야 행복한 겁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는 매년 효도잔치를 연다고 한다. 수도권과 부산, 광주, 서울 등지를 돌아가며 일 년이면 4번을 여는데, 올해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여는 행사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효도잔치를 열 계획이다. 그가 스폰서에서부터 공연기획과 구성, MC, 가수까지 1인 다역을 해 그야말로 따뜻한 마음이 담긴 효도잔치에는 유명 가수부터 인기개그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동원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주인공은 김원길 대표라고 한다.


"공연기획자에게 행사기획을 맡기지 왜 직접 하냐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고객과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원리는 똑같다고 생각해요. 제가 직접 공연기획자가 되어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짜다 보면 정말로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직업적으로 공연기획을 하는 분들은 자기의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아요. 제품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판매가 부진하듯이 공연도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주면 안 되거든요. 공연할 때는 저도 어르신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춥니다. 어르신들이 웃는 모습만 봐도 저절로 행복감을 느끼게 되죠."


김 대표는 바쁜 시간을 쪼개 강의도 다닌다. 일 년 이면 그의 강의를 듣는 사람이 대략 2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각 기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부터 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까지 그를 부르는 곳들이 많다고 한다.


"한 번은 지방에 있는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화통’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강의를 끝내고 관객들과 질의응답시간이었는데 한 분이 손을 번쩍 들더니 ‘저 백마부대 출신입니다. 제가 군복무하면서 강의를 들었는데 오늘은 선생님께서 방송에 나오신다고 해서 제 친구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순간 보잘 것 없는 제 강의가 헛되지 않았구나,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죠."


김 대표는 신병교육대대 1사단과 9사단에서 정기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또 매년 백마부대 병사 8명을 뽑아 7박8일간의 유럽연수도 보낸다. 선발규정은 후배는 선배를 공경하고 선배는 후배를 사랑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인문적가치를 강조한다. 또 국군장병들이 백마용사정신으로 30년만 살아본다면, 50대가 됐을 때 전 세계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면 짜임새있는 인생설계도 강조한다. 군대에 있는 동안 100세 인생을 설계하고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미래를 꼼꼼히 설계하라는 조언이다.


"저는 요즘 우리 젊은 아이들이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들어가는 계획서를 만드는 게 가장 슬프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성장가능한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꼭 필요한 인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무조건 대기업만 선호해요. 그래서 저는 강의를 할 때 뿌리를 내리려거든 가지치기를 당하지 않을곳에 뿌리를 내리라고 강조합니다. 제 주변엔 대기업에 들어가서 촉망받던 사람들이 거의 잘렸어요. 그들이 밤에 대리운전을 합니다. 뒤늦게 공인중개사 되겠다고 시험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어요. 사실 그들은 젊은 시절에 부러움의 대상이었죠. 그런데 인생 후반에 가서 대부분 꽝이 됐어요. 나이 들수록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려면 인생설계를 잘해야 해요."


호탕한 성격의 그는 스포츠도 수준급이라고 한다. 다양한 스포츠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고 건강을 챙긴다는 그는, 어떤 것에 심취하면 자신이 만족할 만큼 갈고 다듬는다고 한다. 그의 15년 스키실력은 최상급, 골프실력도 수준급이라고. 이 외에도 요리 만드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가끔 손님들을 초대해 직접 파티도 연다고 한다. 양념을 듬뿍 넣어서 맛을 내는 그런 요리가 아니라 신선한 계절별 특산물을 이용해 요리한다는 그에게 ‘요리의 정의’를 묻자 ‘간과 소스의 조화’라며 웃었다.


향기 나는 기업 문화 만들고 싶어


이 업체의 올해 성장목표는 국내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는 김 대표는 이제는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제품에다 어떤 가치를 담아 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3년 전 세계무대에서 10년 안에 최고의 신발을 만들어 낸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7년 안에 ‘발을 편하게 해주는 구두’, ‘마음이 편한 구두’, ‘진심이 담긴 구두’에다 소비자들이 바라는 시각적인 디자인을 입히는 작업으로 성과를 가져온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기업문화로서 향기를 풍기는 기업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다.


향기를 풍기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고 악취를 풍기면 사람들이 떠나가듯 향기 나는, 그래서 사람들이 그 향을 맡으려고 찾아드는 그런 기업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선배로서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뿌리 깊은 나무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는 강의할 때 ‘스프링쿨러 저주’에 대해 자주 얘기합니다. 스프링쿨러 옆에 있는 나무는 굳이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아도 때맞춰 물을 주니까 잘 큽니다. 그런데 황무지에서 자라는 나무는 어떻습니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물을 먹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뿌리를 깊게 내리고 물을 저장하며 생존방법을 터득합니다. 이 두 나무가 2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어느 날 큰 태풍이 몰아쳤다고 가정해 봅시다. 스프링쿨러 옆의 나무는 쓰러져서 일어나지를 못하지만 황무지에서 자란 나무는 끄떡없습니다."


"저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00세 시대에 우리 젊은이들이 성급하지 않았으면 해요. 충분히 세상의 찬바람도 맞고 어려움도 겪으면서 그 안에서 인생의 노하우를 배워가야 한다고 봅니다. 저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찬바람을 맞고 견디어 내다보니 삶에 대한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사업이라는 어려운 길에서도 당당히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이 됐고요. 만약에 우리 젊은이들이 순풍이 부는 곳에서만 생활한다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과연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세계의 넓은 무대에서 펼쳐나갈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젊음의 열정을 잘 다듬어 가길 바랍니다."


신년 초부터 세계의 경제는 맑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경기와 기업의 성장은 별개라고 말하는 기업가도 있다.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몸으로 터득하며 배운 경험을 토대로 한 발 한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는 바이네르제화(주) 김원길 대표. 그의 세계를 향한 도전이 큰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