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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대전환기에 들어선 한국 인재경영

콤포지션 경제학 (31)

한국경제와 기업의 성공 요인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스피드 경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한국기업은 유능하고 야심 찬 경영자의 지휘 아래 근면 성실한 대졸 출신 근로자들을 다그쳐서 목표를 향해 추격하고 하나씩 점령해왔다. 이런 속도 경영이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됐다.

 

외부적 요인으로는 중국 기업들의 기술 도전과 물량 공세이다. 내부적으로는 첨단 과학기술 능력을 갖춘 인재급 직원의 수요 급상승과 MZ세대의 등장이다.  중국 기업의 도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기업의 강점인 모든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휴대폰, 전기완성차, 배터리, 조선, 가전, 디스플레이 등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기업들이 대학에서 배출 되고 있는 인력만으로는 기술인재를 채우지 못하자 최근에는 대학과 연계해 직접 인재를 길러내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MZ세대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이들의 장점과 특징을 적극 수용하는 방향으로 인사시스템을 전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선두주자는 역시 삼성이다. 삼성전자가 MZ세대의 성향을 반영해 기왕의 성과보상을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개선하고 수평적인 조직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른 대기업들도 기존의 인사 평가와 조직체계 및 사내문화의 개혁이 필요한 점은 인정하지만, 변화는 더뎠다. 그러다가 지난 5월 네이버에서 상사의 괴롭힘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 삼성전자가 획기적이고 바람직한 인사개혁을 내놓는다면 다른 대기업들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한국기업에서 인재경영이란 상위 5~10%의 직원만을 인재로 보는 시각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인재경영은 직원 개개인 모두를 인재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것은 막연하고 애매한 관점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사 관리로 나타나야 한다. 다시 말해 인재 관리는 개별 직원의 직무, 성과, 평가, 보수, 교육 훈련 등에 있어서 맞춤형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직급 체계도 실무팀 내에서는 완전히 없애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이렇게 승진이 거의 불필요한 조직을 만든 뒤, 전문성에 따른 일의 성과를 바탕으로 보수를 지급한다면 인재경영 시스템은 신속히 자리를 잡을 것으로 생각 된다. 보수는 두루뭉술하게 주면 안 된다. 그렇게 주는 보수는 그렇고 그런 직원이 된다. 족집게처럼 찍어 파격적인 보수가 지급돼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인재가 나 온다. 

 

 

일 년에 한두 번씩 하는 퍼포먼스 평가도 대폭 손질할 필요가 있다. MS와 넷플릭스, GE 등은 퍼포먼스 평가를 없애버렸다. 지극히 형식적이고 변화하는 업무 환경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신에 퍼포먼스 피드백을 리얼타임으로 평가할 수 있는 앱 툴을 이용하는 방식이 권장되고 있다. 리얼타임으로 피드백이 본인과 관리자들에 게 전달될 경우 정확한 퍼포먼스 평가는 물론이고 업무 성과와 능력의 개선, 경영 계획 수립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정도의 앱은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직원이 37,000여 명에 달하는 미국 헬스케어 기업 카르디널은 2013~2014년간 퍼포먼스 평가를 하지 않고 분기별로 일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코칭과 훈련 상담을 실시했다. 인사 고과를 전제로 하지 않은 편한 상담은 직원들의 퍼포먼스를 향상 시킨 것으로 결과가 나와 상담제를 확대했다. 의례적 인사평가는 관리자와 직원들에게 모두 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다. 상담 테크닉과 전문지식이 보장된다면 시도해볼 만한 것 같다.

 

오늘날 어떤 직장인도, 엊그제 들어온 신입사원도 기술 진부화 (Skill Obsolescence)를 피할 수 없다. 기술이 급변하고 다양화, 복잡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기술자와 전문가들은 새로운 기술과 매뉴얼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익힌 기술도 내년에는 얼마든지 또 달라지는 일이 흔하다. 외부의 온오프 대학은 물론이고 사내 온오프 학교도 운영하여 24시간 교육 훈련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경영에서 공정한 인재경영으로

 

지금과 같이 글로벌 경쟁이 극심한 환경에서 정규직으로만 기업을 경영한다면 견뎌낼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요한 인재를 수시로 뽑고 교체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채용과 인력조정은 꼭 필요하다. 하나의 조직 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일하면 정규직이 마치 ‘상전’처럼 군 림하게 된다. 더욱 나쁜 것은 정규직원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비정규직에게 떠넘기고 본인은 지휘·감독하는 일만 하거나 일하는 시늉만 내고 어영부영하는 행태다.

 

이런 행태는 특히 주인 없는 공기업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소위 ‘갑질’ 갈등이 일어나기 쉬운 구조가 형성된다. 정규직만 있거나 정규직이 안정적 위치를 차지하며 비정규직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는 조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력 경쟁력이 하락한다는 데에 있다. 인력 경쟁력이 떨어지면 기업 경쟁력도 떨어지는 건 자명한 이치다.

 

직장 고용이 안정적이면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덜 하게 되고 치열하지 않다. 직급과 직책이 많이 나눠져 있고 상하서열의 승진단계가 많다면 승진할수록 전문 성과는 멀어지기 쉽다. 안정적인 직장의 직원 중에 노력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문성의 포커스를 잃어버린 범용성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범용성으로 넓게 공부하면 할수록 전직할 때나 퇴직하고 나서는 거의 쓸모없는 노력을 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직장인의 실력 향상이 크게 이뤄지는 것은 전직했을 때다. 직장이야말로 진정한 학교이기 때문에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한 직장에 전직해서 얻을 게 많다. 즉 그곳에서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고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하고 새로운 전문성을 추가하여 더욱 창조적이고 탄탄한 전문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런 전직이 수차례 일어나면 불후의 ‘명장’이 될 수도 있다.

 

한 직장에서 고인 물처럼 장기간 근무 하다 보면 인력 시장이 나에게 요구하는 전문성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대체로 한 직장에서만 오래 근무했던 사람들은 퇴사하면 완전히 밑바닥부터 새로운 일을 배우지 않는 한 그 전 직장의 지식은 물거품이 된다. 한 직장 내에서 경력관리란 보잘것없고 여러 번의 전직을 통해 경력관리를 해야 프로급 실력을 쌓게 된다. 

 

◇ 처음부터 글로벌기업으로 가는 선택

 

한국의 좋은 일자리를 품고 있는 대기업은 사실상 현재 구조조정 중에 있다고 본다. AI와 로봇,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이 급속히 도입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인력이 나가면 보충하지 않는다. 그리고 필요한 인력만 뽑거나 그 업무를 외주 주는 방식이 정착돼가고 있다.

 

한국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일자리 변수다. 미국처럼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일자리도 증가하는데 인구 감소국인 우리나라는 일자리 증가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좁은 문의 대기업을 가려고 애쓰지 말며, 적성과 전공과는 상관없는 공무원과 공기업만을 노리고 시간을 헛되이 보낼 필요가 있을까.

 

졸업 후 첫 직장부터 외국기업의 문을 두드려 볼 것을 권한다. 외국 직장에서 영어 능력은 기본기만 익히고 나서 실제 부딪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외국 직장을 구하려면 언어보다는 전공과 기술이 훨씬 중요하다. 제너럴리스트는 이제 직장 세계에서 낡은 유물이자 무기력한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직장인이 되지 말고 전문직업인이 돼야

 

지금도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자기가 다니는 직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타입들이 남아 있긴 하다. 청년 중에도 그런 식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직업인의 정체성과 전문성에 자부심을 느끼고 향상심을 가지는 마음가짐이 미래지향적이다.

 

MZ세대들은 이전 세대와는 달리 전문성을 추구하는 최초의 한국 인류라고 한다. 전문직업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 전문성을 위해 공부하고 전문성을 갖추게 되면 나이 불문하고 원하는 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전문직업인은 보수보다 더 소중한 일의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게 확실하다. 

 

MeCONOMY magazine December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