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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섬 생활상 담은 '살아보니 사랑이어라' 시집 펴낸 이순태 보건진료소장

【김소영 기자】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40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섬 대마도. 현재 1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대마도 마을 중앙에는 보건진료소가 자리 잡고 있다. 섬 생활상을 담은 ‘살아보니 사랑이어라’ 시집을 펴낸 주인공은 바로 대마도 보건진료소 이순태 소장. 그가 쓴 시구(詩句)에는 멋이 아닌 섬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빼곡하게 담겨져 있다.

 

 

“섬 생활이 참 좋아요. 주민들도 참 순수하고요. 시(詩)가 저절로 만들어지거든요.”

지난 4월 16일 기자와 만난 이순태 소장은 섬에서 근무하며 시인이 된 느낌을 묻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 퇴직한 후 기간제로 근무하고 있다는 이 소장은 오는 7월 4일이 꼭 4년째 된다고 했다. 퇴직 후 취미생활도 하고 여행도 다녔지만 일을 하지 않는 삶은 참 갑갑했다고 말한 그는 “이 섬에서의 생활은 내 삶에 있어서 최고의 선물인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섬 대마도


칠팔월 톳 작업 끝나고 하늬바람 불면
갯벌에 낙지 통발 나란히 줄 세우고
어린 낙지 날마다 자라 작은 문어만 할 때쯤
낭장망 멸치 따라 몰려든 전어 떼

집집마다 고소한 냄새 온 동에 잔치하네


새콤달콤 무침회, 소금 뿌린 전어구이
잘 익은 산딸기 술 한 잔에
세상이 손수건만 한나절
어촌의 가을은 낙지와 전어로 익어가고
인생의 가을은 나눔으로 익어가고
여기는 전라남도 제일 살기 좋은
우리 섬 대마도이어라.

 

 

우연하게 대마도와 인연


“동기 모임에 갔다가 섬마을 보건진료소에 자리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지원했어요. 제가 평소 바다에 대한 동경이 참 많았거든요. 막상 와서 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행복해요. 마을 분들도 참 순수하고요. 여긴 고령이신 어르신들이 많아서 때론 친구같이 때론 자매처럼 지낼 수 있어서 참 좋아요.”


경북 경산 금호강 속 작은 삼각지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그는, 어린 시절 꿈꾸던 문학소녀의 꿈을 뒤로하고 어쩌다 간호사가 됐다고 했다. “국문학과를 지원했는데 떨어져서 재수를 했어요.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전혀 갖지 않았었죠. 학교에 다닐 때도 실습해 보니까 너무 힘들고 안 맞는 거예요. 그만둘까도 생각도 했는데 당시 제 동생이 부모님 속을 썩이는 바람에 저까지 그럴 수 없었죠.(웃음)”


이 소장은 종합병원과 오지 마을 보건진료소 등에서 30여 년을 근무했다고 했다. 유독 오지마을 근무 기간이 긴 이유를 물었더니 “보건진료소는 다 오지 마을에 있으니까요"하며 웃었다. 의료의 최하위 조직인 보건진료소는 리(里) 단위 마을에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79년 말경부터 교통이 불편한 오지마을의 응급환자 등 주민에게 의료혜택을 주고자 운영을 시작했다. 보건진료소에 근무하게 되면 간호사이면서도 유일하게 1차 진료권을 부여받게 되지만, 진료범위는 상당히 제한적이고 쓸 수 있는 약들도 규정돼 있다.

 

가고 싶은 섬 1

 

염원이 간절하면 하늘에 닿아

이루어진다는 말 맞는 것 같아

대마도 사람한데 뭉쳐 염원 모으니

대마도는 ‘가고 싶은 섬’이 되어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주는 다리를 놓고

길을 찾고 길을 닦고

 

아름다운 다도해 굽어보는 전망대

습지공원, 걷고 싶은 길, 마을기업 만들면

젊은 날 톳발에 기어 무릎 망가진 어매들도

성한 두 손 놀려 일을 할 테지

얼마나 좋으랴 일할 수 있는 나날은

얼마나 좋으랴 적막한 이 섬에

사람이 찾아오는 일

 

이 소장의 시집 ‘살아보니 사랑이어라’ 제1집에 실린 ‘가고 싶은 섬 1, 2’는 대마도가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뒤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오롯이 담아냈다. 

 

“섬에 와서 보니까 주민분들이 너무 외롭게 사시는 거예요. 자식이 있지만 모두 객지로 떠나보내고 홀로 사시는데 명절에 오던 자식들도 코로나로 오지 못하잖아요. 마음의 위안으로 삼는 건 벽에 걸린 자식, 손자 사진뿐인데 얼마나 가슴 시린 삶이에요. 대마도가 가고 싶은 섬이 되고 외지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되면 다리가 불편해서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르신들이 앉아서 할 수 있는 작은 소일거리도 생기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덜 외롭겠죠.” 실제로 대마도 주민 다수는 홀로 사시는 분들이며 고령으로 어업활동이 힘든 상황이다. 이 소장은 대마도 주민들의 속마음을 이렇게 시에 담아냈다.

 

보이는 대로, 자연을 담아내

 

시를 쓸 때 무엇을 담으려고 노력했을까. 이 소장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를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것을 가장 성스럽게 생각한다는 그는 섬처럼, 섬에 사는 사람들처럼,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꾸미지 않은 모습을 담아내는 게 가장 솔직한 것 같다고 했다. 

 

시골에서 태어나선지 나이가 들수록 촌스러운게 좋다고 말한 이 소장은 여행객들이 자연스러운 곳을 찾는 이유는 조금 불편하긴 해도 더 자유롭고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했다. 평소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둘 적어 눴다가 어느 순간 합해져서 하나의 시로 완성될 때 너무 행복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이순태 시집 1편 ‘살아보니 사랑이더라’에는 대마도의 다양한 사진들이 각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거 다 대마도 사진이에요. 해 뜨기 30분 전과, 해가 지고 15분 후가 사진 찍었을 때 가장 예쁘다고 해요. 이 사진 보세요. 앞바다에 있는 배잖아요. 너무 예쁘죠.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색도 너무 아름답지만 사진으로 찍으니까 이렇게 아름다워요. 요즘 대마도가 변화를 시작하고 있는데 이 책 속에 있는 자료들이 나중에는 정말로 소중한 자료가 되지 않겠어요.”

 

요즘에는 책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는 그는, 퇴직하고 나서도 책 볼 시간 없이 늘 분주했는데 섬에 오니까 단순 해져서 그게 가능해지더라며 환하게 웃었다.  “육지에 나갈 때면 10권 정도의 책을 빌려와서 보는데, 요즘은 역사소설을 읽어요. 늘 납기일을 못 맞추는데 섬의 특성상 교통이 어렵다는 걸 알고 도서관에서도 많이 이해해 줘서 늘 감사하죠.”

 

인생의 롤 모델처럼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참 좋은 직업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이 소장은 의료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넘어선 지역의 발전적인 역할에도 참여할 수 있을 때 참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저 어릴 때 인생의 롤 모델이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이 었어요. 여성이지만 자신의 목표가 정해지면 헌신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죠. 책 속의 주인공은 농촌현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농촌으로 내려가 마을 살리기에 동참하면서 농촌 계몽운동을 펼치잖아요. 늘 그런 삶을 살고 싶었죠.”

 

 

보건을 위해 오지 마을에 근무하는 이들을 ‘지역사회를 돕는 기술자’라고 한다. 단순히 보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들에게 삶이란 재능을 나누고 기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인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며 보람을 느꼈던 한 가지를 꼽아 달라 요청하자 주민들과 한 마음이 돼 마을 사업을 따와 마을회관을 짓고 목욕탕을 만들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마을 이장님이 젊은 분이셨는데 아주 진취적이고 마을 발전을 위해서 적극적이었죠. 한 번은 마을사업 하나를 두고 여러 마을들이 경합이 붙었는데 후발주자라 불리한 상황이었어요. 저도 직접 기획에 참여해서 마을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짰는데,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모금 운동을 하고, 부족한 금액을 지원해 달라는 전략이었죠. 우리가 사업권을 따내서 마을회관도 짓고 목욕탕도 지어서 주민들이 따뜻한 물로 목욕할 수 있게 됐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 하면 가슴이 설레고 웃음 짓게 되더라고요.”

 

일상의 모든 것들이 시(詩)가 된다...2집 준비 중

 

시집 2편을 준비 중이라는 이 소장(시인)은 인터뷰 도중에 조금 전에도 하나를 적었다며 노트 하나를 펼쳐 보였다. 노트에는 생각날 때마다 적어 놓았다는 시들이 빼곡했다. 그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끈 ‘민원’이라는 시에 대해 물었다. 

 

“코로나로 95일 동안 섬에 있다가 잠시 외출을 해서 섬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민원이 왔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누가 왜 민원을 넣은 걸까? 참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죠. 당시의 기분을 시로 표현한 거예요(웃음)”

 

직장생활을 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퇴직, 그리고 제2의 인생. 인생의 2막을 섬에서 열고 문학소녀로 돌아가 일상의 작은 소재들을 시(詩)로 표현하고 있는 시인 이순태. 2018년 계간(문학예술)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현재 섬마을에서 보건진료소장으로 근무하며 섬사람들에게는 감초 같은 역할을, 독자들과는 감성으로 소통하고 있다. 섬마을의 일상을 시로 표현해 내고 있는 그의 시집 제2편에는 대마도의 어떤 풍경들이 담겨질지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