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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미국 주도 반도체 전쟁 시나리오 점검

지난 달 말 마침내 네덜란드가 미국과 일본의 대중 반도체 규제 동맹에 동참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ASML은 유명한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급하는 기업이다. 7나노급 이하의 칩을 생산하려면 ASML사의 극자외선 EAU 장치가 필요하 다. 2018년부터 생산하는 이 장치의 개발 투자에 삼성도 인텔과 TSMC와 공동으로 참여했다.

 

 

일본은 새삼 언급할 필요없이 반도체 장치와 재료분야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반도체칩은 휴대폰, 컴퓨터, 가전제품, 통신장비, 로켓, 로봇, 자율자동차, 항공기, 무기, 각종 전자장비와 설비 등 다방면으로 쓰이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산업 굴기를 외치며 육성해왔으나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미, 일, 네덜란드의 반도체 기업들의 모든 제품들이 수출 규제를 받는 것은 아닐테고, 첨단 장비에 한해서 금수 조치가 취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이들 기업들의 중국 매출액이 매우 클 것이기 때문에 전품목을 대상으로 확장하는 것은 무리다. 


반도체 수요 시장을 간과한 공급 규제는 오래 못가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 소비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 전자제품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는 외국기업들의 가장 큰 고객이 중국기업들인 셈이다. 중국은 이런 거대한 소비사장을 기반으로 차곡차곡 자국의 반도체 자급률을 전 공정에 걸 쳐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오고 있는 중이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 반도체 기업을 포함하면 자급률은 2020년 기준 15.9% 정도이고 순수 중국 기업만을 놓고 보면 자 급률은 5.8%이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기업들과 비교해 점유율은 낮지만 팰리스 기업과 파운드리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고, DRAM 부문에 SK하이닉스가, 낸드 부문에 삼성과 인텔이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볼 때 중국은 지금 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 더욱 자급률을 높이는 데 온힘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매체들을 보면 반도체 자립의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기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조치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지만, 이번 반도체 규제의 실효성이 얼마나 갈지 의문이 든다. 일본이 우리에게 가한 규제보다 이번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의 중국 수출 제한 조치는 훨씬 강도가 높아 큰 타격이 예상되지만 시간은 중국편이라고 본다. 오히 려 시간을 길게 놓고 보면 중국을 키워주는 결과를 빚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반도체 기술 발전, 플레이어 증가는 필연적


반도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에서 최초로 개발됐 고 1970년대까지 설계와 생산을 독점하다가 후발주자인 일본이 생산과 장비 부문에서 독점하다시피 했다. 지금도 미국과 일본은 설계와 장비 면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으며 일부 생산 면에서도 일정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안보 위협이란 이유로 1990년대 이전 패권의 향수를 못 잊은 듯 그 시절의 독점적 지위를 회복 시키려는 기세다.

     
반도체 제조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그것보다는 헝그리 정신과 노동윤리 및 규율 문화가 존재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반도체 제조에서 일본과 독일이 주요 생산국이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절치부심의 헝그리 정신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이고, 승전국인 미국과 영국은 안주한 탓으로 볼 수 있다. 일본과 독일에 이어 제조생산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과 타이완의 공통점을 보면, 양국 모두 절박한 지정학적인 위기 속에서 헝그리 정신과 규율적 노동문화가 특징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창조성은 여전히 돋보인다고 할 수 있으나 다민족·다인종 국가로서 헝그리 정신은커녕 독일과 동아시아와 같은 노동윤리와 규율 문화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네덜란드도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인구 2천 만 명도 안 되는 강소국의 처지여서 반도체 장비에 사활을 걸고 연구개발에 매진해왔다.  


현재 중국 외에 베트남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 새로운 생산 공장 늘린다고 시간이 걸린다. 또 그들 나라들이 결국 반도체를 제조한다고 했을 때 전자산업과 같은 반도체 소비 시장이 덜 발달돼 있는 상황에서 어디가 팔 것인가도 문제다. 이들 나라들도 모두 친 러시아 성향이고 중국과도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반도체 칩을 사용하는 산업들이 새로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급과 잉 현상이 지속될 수도 있다. 미국과 일본은 단기적 효과를 기대하고 규제 조치를 취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 든 중국의 자립 의지를 굳세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지난 40년간에 미국과 일본, 유럽, 한국 등 세계 주요국들은 중국 경제에 너무 기대하고 의존하고 미련을 거두지 못했다. 그걸 차츰 자각하게 됐다고 할까. 거대한 중국 시장을 바라보고 투자도 퍼붓고 공장도 짓고 마케팅비도 쏟아 부었다. 그러는 사이 중국은 차근차근 산업의 내재화를 다져왔고 이제 반도체만 남겨놓았다.  


삼성전자를 압도하고 있는 타이완의 TSMC을 둘러싼 지금의 흐름은 미국과 일본으로 최대한 이른 시기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타이완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반도체 생태계가 미국과 일본으로 대체될 수 있는 사태가 벌어지면 자신들의 안보가 위태해지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TSMC측에서는 막상 공장을 미국에 세우겠다고 했으나 미국 생산 코스트가 타이완에서 생산할 때보다 훨씬 많이 들 게 뻔하고 과연 수율을 낼 수 있겠느냐 하는 고민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텔도 못하고 있는 걸 TSMC라고 별 수 있겠는가라는 얘기다. 


TSMC의 일본 공장은 코스트와 수율 면에서 모두 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되면 미국과 일본, 타이완이 적절한 역할 조합으로 어느 정도 위험 분산은 될 것이나 완전한 해소는 안 되리라고 본다. 그 틈새에 한국의 파운드리 분 야에 기회가 엿보인다. 

 

반도체 공급망 분점시대 종말 앞당길 듯 


미국과 일본, EU는 반도체 제조 비중이 전체에서 10% 안팎이다. 세 나라 모두, 위기의식을 느끼고 2030년까지 30%로 끌어올리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중국 규제는 이를 위한 시간 벌기 측면도 크다. 이른바 기술 주권 또는 반도체 주권의 확보가 각국의 화두로 부상했다. 이번 사태 이전까지는 반도체 기업들끼리 사이좋게 각 기업들이 최대한 수익을 내는 방향으로 설계, 전 공정, 제조, 후공정, 패키징, 조립, 테스트 등으로 분점해 왔으나, 그게 사실상 끝나버린 꼴이 되고 있다.

 

기업들은 사업 환경이 바뀌면 즉시 적응해내야 한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당장 살아남는 게 더 화급하다. 반도체 주권, 즉 미국과 일본, EU, 그리고 중국이 외부 공급망 의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매진할 것이 틀림없다. 이런 상황이라고 할 때 한국 정부의 반도체 대책은 불안하다.

 

DRAM, 낸드 중심에서 파운드리와 소재, 장비, 설계 등 전 방위적으로 우리나라도 반도체 주권을 강화할 필요 하다고 본다. 또한 각 경제권이 반도체 주권 차원으로 제조역량을 늘리면 앞서 언급한 대로 반도체 공급 과잉이 장기적으로 전개 될 상황도 상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반도체 기술과 제조의 ‘범용화’ 현상을 예상해볼 수 있다.

 

지금은 반도체 기술이 가장 핫한 기술이지만 곧 전개될 AI를 활용한 자율 자동차와 로봇 등 본격적인 AI 제품 시대가 열릴 경우, 반도체는 하나의 범용 부품으로 내재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반도체 경쟁이 아니라 AI 로봇 기술과 제품의 경쟁 시대가 열린다는 얘기다. 삼성과 LG, 현대차가 수년 전부터 발 빠르게 이 분야에서 투자를 하고 시제품을 내놓고 있 는 것은 바람직하다. 


애플은 이전에는 반도체 설계회사의 칩을 가져다 썼으나 작년부터 자체 반도체 칩을 사용한 맥북을 출시한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자체 칩을 설계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구글과 아마존, 메타도 자체 칩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도체 설계회사인 인텔과 AMD, 퀄컴의 설 땅이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대중국 수출규체가 결과적으로 빅테크 기업들도 공급 안정성을 위해 자체 칩 개발에 나섬에 따라 반도체 제조 시장이 예측불허의 지경으로 전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다보스 언급, 올바른 스탠스 잡은 듯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달 19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3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중국 친화적인 발언을 연이어 내놓았다. 윤 대통령은 클라우스 슈밥 WEF 회장과의 대담에서 슈 밥 회장이 ‘가치공유 측면에서 한국의 중국·일본과의 관 계에 대해 말해 달라'고 묻자 “중국은 우리와 다른 점이 좀 있지만 한국과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이 우리와 체제가 다르거나 보편적 가치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는 국가들과의 관계를 배제하고 차단하는 그런 방식으 로 운영될 것이 아니라 더 포용적이고, 더 융합적인 그런 방식 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합리적으로 취할 수 있는 태세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중국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국경을 맞대고 있고 상호 무역의존도가 매우 큰 국가가 신중한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전쟁과 미-중 대결이 상호의존성 때문에 오래갈 수가 없다. 타이완 위기가 고조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했음에도 유럽과 미국이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고, 미국이 아프간을 황급히 떠나는 모습을 보고 충분히 승산을 보고 감행한 것이다.

 

이에 비해 타이완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중국군의 군사력이 대폭 증강된 상황이므로 자칫 타이완의 무력 충돌을 중, 미, 일 삼국 전쟁으로 확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전쟁이란 이처럼 군사력이 대등하고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되면 일어날 확률은 극히 낮아진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에 대해서도 “지정학적인 갈등과 또 다양한 원인들로 해서 반도체 공급망이 블록화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 면도 있지만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지 여러 나라들과 협력 사업을 더 강화하고, 그렇게 해서 공급망이 원활하게 복원되고, 국제 사회의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사실 한국 반도체는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 문에 미국의 수출 규제 조치로 이미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반중국 동맹에 동참하라고 하면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한국 반도체는 메모리 중심인데, 미국과 일본, 중국도 모두 메모리 제조기업들이 있으므로  대중국 규제 조치에 실효가 없다. 한국은 신중 모드가 합리적인 듯하다.

 

MeCONOMY magazion February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