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해 수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보낸 박영수 특별검사가 자칭 수산업자라는 이로부터 포르쉐 차량을 렌트(?) 했다는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특검으로 임명된 지 4년 7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이다.
경찰이 박영수 특별검사가 소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상 공직자에 해당하는지 국민권익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이 ‘공직자’가 아니라면 좀 우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절차상, 법적 실효성 유지를 위해 국민권익위에 물어본 것이겠지만 당연히 수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설사 경찰 수사가 이뤄진다고 해도 처벌이야 미미할 것이다. 렌트비를 늦게 줬다고 하더라도 준 것이 사실이라면 대가성 있는 것도 아닌 듯하고 그에게 무슨 엄한 처벌을 줄 수 있겠는가. 그에게는 이미 ‘불명예’라는 지울 수 없는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공무원이냐 아니냐를 따질수록 구차하게 보이고 명예는 더욱 떨어질 것이고 우리나라 법조인 전체는 희화화될 것이다.
특검이란 자리는 그만큼 정의를 심판한다는 법조인 전체를 상징하는 자리 아닌가. 특검도 보통 특검이 아니지 않은가. 사인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법적 처벌에선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국민들에게 준 깊은 실망감은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사회적 통념상 ‘공인’은 정치인, 법조인, 공무원, 성직자, 언론인, 대학교수, 교사, 경찰관 등이다.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현직에 있을 때나 그 직업을 떠난 뒤에도 공적인 일이나 봉사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들이 공인다운 일을 하지 않으면 일반인들보다 더 심한 멸시를 받는다. 그 멸시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조롱과 비웃음을 산다.
부자의 경우에도 그의 부가 수백 억 원 이상이 될 정도로 많아지면 공인이 된다. 의사들도 당연히 공인에 속한다. 인기가 높은 연예인도 공인이고, 은퇴해도 그는 공인으로 인식된다. 공인 반열에 오른 부자는 일정한 기부를 해야지 내가 노력해 번 돈이라고 자기만을 위해서 쓰면 욕을 먹는다.
인기 있던 연예인이 나중에 연예 직업이 아닌 일에 종사하면 그의 팬들은 무척 실망한다. 인기란 물거품과 같다고 여겨 나중을 대비해 사업에 손을 대는 일이 있다. 거의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한 꼴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는 돈이 한 참 벌릴 때 아껴서 쓰고 부업을 안 하는 것이 좋다.
그럴 시간 있으면 자기 직업의 공력에 더욱 충실히 하고 체력관리를 철저히 한다. 그리하여 은퇴 후에도 다른 시업을 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직업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물론 법조인, 정치인, 공무원, 대학교수 중에서도 특히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품위에 맞는 일을 해야 하고, 현직에 있을 때 그런 준비를 해야 한다.
남들이 쉽게 가지기 힘든 권력과 부와 명예, 인기를 한때나마라도 가지면 공인이 된다고 본다. 공인의 범위가 너무 넓게 보는 것 아닌가라고 할지 모르나 이 기준에 해당된다고 하면 ‘공인으로서 처신’을 하는 게 화를 피하고 만사형통이라 생각된다.
필자는 예전에 대기업 로비로 활동하다 전직했던 사람으로부터 로비 비화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로비 수법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이들의 로비에 넘어가지 않을 공직자들은 참 드물겠다는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나라 권력기관 사람들은 의외로 순진하고 로비에 ‘무방비’한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처음에 단단히 방어하다가도 그 틈새를 노리고 은밀하게 고리를 걸면 넘어간다. 일단 금품이든 뭐든 받았다 하면 그때는 로비스트의 노예가 돼 버린다. 공무원 신입교육이나 공직자 보수 교육을 할 때 공무원 윤리 과목만 할 게 아니라 사례 중심의 부패 및 청탁 방지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의 부패가 예전에 비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은 법률집행기관(law enforcement)에는 잔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률이 분명하지 않고 미비점이 많아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른 말로 하면 법조인만 깨끗해진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고 법률 집행이 공정하게 이뤄지고 법률이 시의적절히 수정돼야 하는 일도 병행돼야 한다고 본다. 인간과 집단의 양심과 윤리의식에만 기대서는 부패가 없어지지 않고 제도와 문화를 동시에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박영수 특검 사건을 보는 공인들은 그를 반면교사를 삼아 자기 직업의 윤리에 충실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언론인들도 경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